[초동여담]'짐'과 '조짐'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옛날에 황제나 임금들은 자신을 '짐(朕)'이라고 불렀다. '짐'은 '조짐'에 쓰이는 그 '짐'인데, 조짐이 어떤 일이 생길 기미를 말하는 것처럼 왕이란 분명하지 않고 흐릿한 존재, 어떤 일의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그 배후에 있는 듯 없는 듯 하는 존재여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엔 겸손의 의미도 있지만 더 깊은 뜻이 있다. 왕이란 어떤 일의 표면에 머물지 않으면서 지엽과 말단과 세부가 아닌 대강과 본질과 총체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여기에는 옛 군주의 덕목을 넘어서 다른 이를 다스리거나 가르치거나 이끄는 이의 할 일이 뭔가를 또한 얘기해 주는 대목이 있다. 즉 왕이나 교사나 지도자들의 중요한 직분은 일이 벌어지는 현장 뒤에서 지켜보고 흐름을 살펴 그 일이 제대로 이뤄지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는 데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보이는 현상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흐름을 읽는 것이며, 다른 이들을 인도하되 억지로 이끌지는 않는 것이며, 나아가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을 열어주되 성급하게 목표를 들이대며 몰아붙이지는 않는 것이다. 요컨대 결과가 아닌 원인을 보는 것이다.이런 역할에 충실하게 되면 겉으로는 하는 일이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러나 실은 잠시도 쉴 틈이 없다. 그 지위와 권한에 맞는 역량과 안목을 기르기 위해 부단히 애써야 하므로 한가할 수가 없다. 다만 말단과 세부에 지나치게 매이지 않으므로 한가해 보일 뿐이다. 이를 테면 엄청난 근면과 몰입으로 오히려 한가해지게 되는 것이다.거꾸로 결과에 갇혀 있는 경우는 바빠진다. 이런 이들은 손발이 매우 분주하다, 그러나 머리는 한가하기 그지없다. 눈과 귀는 놀리면서 입은 바빠진다. 그럴수록 언사는 더욱 과격해진다. 원인을 보지 못하고 결과만을 바라니 그가 점점 더 의존하는 것은 서투른 의사와 같은 강력한 약물처방이다. 약이 독해지듯 말이 거칠어진다. 결과는 더욱 악화될 뿐이고 약에 대한, 거친 언사에 대한 내성만 커질 뿐이다. 예컨대 지금 우리 사회에서 '규제'를 놓고 나오는 언사가 과격해지고 있는 것이나 '안전' 문제를 군대식 돌격작전으로 풀려고 하는 데서 이런 징후를 보는 듯하다. 종횡으로 얽혀 있는 3차원적 문제들을 1차원적인 피아 대결로 접근해서 적군을 없애듯 사형대에 올려 '처단'하려는 것인데, 이런 식으로 우리 사회의 복잡다단한 문제들을 풀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한 '조짐'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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