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감사원이 모뉴엘 사기대출에 대해 이미 수개월 전에 관련 은행들에게 경고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들은 감사원 지적을 받고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피해 규모를 키웠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4일 감사원과 금융권에 따르면 감사원은 지난해 9월부터 두 달 간 수출입은행ㆍ기업은행ㆍ무역보험공사ㆍ산업은행ㆍ한국은행ㆍ정책금융공사 등 정책금융기관 6곳을 대상으로 수출입 관련 금융지원 실태에 대해 감사를 벌였고, 이를 통해 분석ㆍ점검한 30여건의 감사 결과를 지난 5월 해당 기관에 통보했다. 특히 기업은행,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등 모뉴엘의 사기대출에 속아 넘어간 정책금융기관들이 대부분 감사원으로부터 지적을 받았다.
▲감사원이 지난해 정책금융기관 6곳을 대상으로 벌인 감사 보고서. 이 보고서는 지난 5월 각 피감기관에 통보됐다.
감사 결과에 따르면, 기업은행은 2012년 5월부터 그해 12월까지 모 수출업체의 수출채권 420건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관련 서류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893만달러(약 98억원)의 손실을 떠안는 등 허술한 업무 처리로 총 1200만달러(132억원)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출채권 매입은 모뉴엘이 사기대출에 악용한 '오픈 어카운트(open accountㆍOA)' 방식으로 이뤄졌다. 실제 수출을 하지 않은 기업이 허위로 만든 수출채권을 매입했다가 해당 기업이 부도처리되자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은 것이다. 감사원은 해당 직원의 징계와 함께 OA방식의 수출채권 매입시 확인 업무를 철저히 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기업은행의 채권매입 시스템은 그 뒤로도 전혀 바뀌지 않았고, 부도 위기에 직면해 있는 모뉴엘의 대출 잔액 1508억원을 떠안고 있는 상황에 처했다. 은행별 모뉴엘 여신 중 가장 많은 금액이다.이번 모뉴엘 사태의 핵심인 무역보험공사의 수출신용보증제도는 허술하다는 지적과 함께 관련 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감사 결과도 있었다. 감사원은 수출신용보증제도가 수출기업과 수출채권 매입은행의 이용 편의를 위해 너무 간소화돼 자칫 공사와 은행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은행의 수출거래와 수출채권의 진정성을 확인할 최소한의 주의의무와 함께 수출대금의 입금ㆍ결제 관리 책임을 부여할 방안을 마련하라고 공사에 당부했다. 무역보험공사는 이미 2012년 3월과 지난해 1월 수출신용보증제와 관련한 보증사고가 발생해 270만달러(30억원)를 대위변제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역보험공사 또한 감사원의 지적에 아랑곳하지 않다가 모뉴엘 사태를 맞았다. 모뉴엘에 담보없이 신용만으로 1000억원 넘는 대출을 해 준 수출입은행 또한 2011년 모 업체의 허위 수출채권을 믿고 돈을 빌려줬다가 44억원을 떼여 감사원으로부터 지적을 받았다. 이에 감사원은 허위 수출채권을 매입하는 일이 없도록 구매주문서와 수출신고필증에 대한 확인 업무를 철저히 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수출입은행 역시 이를 무시했다.이처럼 감사원이 모뉴엘에 대출을 해 준 정책금융기관들에게 관련 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사전 경고메시지를 수 차례 보냈지만, 이들 기관은 '감사원의 경고'를 묵살하다 사태를 더욱 키웠다는 지적이다. 금융권의 한 인사는 "감사원의 지적 사항을 무시한 채 그때만 넘기면된다는 무사안일주의가 화를 키운 꼴이 됐다"며 "안일한 대출관행과 수출 금융에 대한 제도적 맹점이 개선되지 않는 한 제2, 제3의 모뉴엘 사태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고형광 기자 kohk0101@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금융부 고형광 기자 kohk0101@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