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말의 습격]가화만사성의 숨은 뜻(108)

가정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된다. 대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을 그렇게 푼다. 그러나 곰곰히 뜯어보면, 그런 추상적인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가화(家和)에 쓰인 화(和)는 벼(禾)와 입(口)을 합친 말이다. 벼는 끓이면 밥이 되는 우리의 기본음식이요, 입은 식구들을 그것을 먹으려고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벌린 신체의 일부이다. ? 화(和)는 그러니까 밥 먹는 일이며, 가화는 식구들끼리 둘러앉아 밥먹는 일이다. 다시 풀어보면, 가화만사성은 식구들이 함께 밥상에 앉아 밥을 먹으면 모든 일이 다 풀린다는 의미이다. 옛사람들이 밥먹는 일을 참 귀하고 아름답게 생각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지만, 삶의 절실하고 진실한 문제가 어디서부터 시작되고 풀리는지를 통찰한 것이기도 하다. ? 추사 김정희는 늙어서야 이 문제를 마음 깊이 깨닫고, 대팽두부과강채 고회부처아녀손 열 네 글자를 써서 남겼다. 가장 맛있는 음식은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린 기름진 밥상과 유흥이 아니라, 두부와 오이, 생강과 나물이며, 그것이 가장 맛있는 자리는, 부부와 아들딸, 손주가 함께 하는 식탁이라고, 소박하고 진솔한 뜻을 글씨로 남겼다. 추사의 말이 바로 가화만사성의 더할 나위 없는 주석이라 할 만하다. ? 제사는 귀신에게 경배하는 일이라 하며, 다른 신앙을 지닌 이들이 원시인 보듯 폄하하지만, 이는 그 의미를 겉으로만 보고 판단한 것일 수 있다. 제사는 오래된 우리의 습속이지만, 그것을 유학자들이 체계화하여 경건하게 만든 것이다. 유학이나 유교는 학문이나 가르침일 뿐, 종교가 아니다. 유교와 유학의 목표는 공자나 맹자처럼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일 뿐, 인간을 초월하여 저 홀로 구원받겠다는 것이 아니다. 무엇인가를 믿어야 하는 것도 아니며, 조상 귀신에게 아부하여 없는 복락을 가로채겠다는 야심도 아니다. ? 제사는 기본적으로 밥을 함께 나눠 먹는 일이다. 우리네의 대개의 모임들이 밥을 함께 먹는 일이듯이, 제사는 이 세상에 살다가 먼저 돌아간 사람과 함께 밥을 먹는다는 취지를 리추얼화한 것이다. 즉 고인과 살아있는 후인이 밥상을 함께 하는 것이다. 물론 산 사람처럼 나란히 먹을 수는 없으니 돌아간 선배가 뜨고간 밥술을 살아있는 후배가 이어서 뜨는 형식이다. 제사상에 올려지는 음식은 이 지구에 존재했던 앞사람과 뒷사람이 나눠먹는 것이다. 이것을 우린 제사라고 부른다. ? 왜 나눠먹는가. 우리를 존재하게 해준 사람들이고 우리를 이만큼까지 오게 해준 사람들이기에 고맙기 때문이다. 유교에서 지내는 가장 중요한 제사는 신이나 왕에게 지내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은 없다. 오직 큰 가르침을 남긴 스승(공자와 맹자같은 성인(聖人)을 기린다)과 우리를 처음 출발하게 한 종조(宗祖)이다. 그들은 신이 아니라, 하늘의 뜻을 받아 우러렀던 귀한 분이다. 유학은 가르침과 존재 전체에 대한 고마움을 제사라는 형식에 담아놓았을 뿐이다. 고마운 옛사람과 밥 한끼 같이 먹으며, 그간의 안부를 묻고 살아가는 일의 옷깃을 한번 다시 여미는 계기를 만드는 일이다. 산 사람을 대접하듯, 이미 돌아간 사람을 대접하는 근원적인 사모이다. ? 가화만사성은 제사 속에도 숨어있다. 함께 밥 먹는 일은 식구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하고, 오해와 서먹했던 관계들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든다. 옛사람과 함께 밥을 먹으며 그분들이 살면서 깨닫고 느꼈던 것들, 그분들이 말했던 가르침들, 그분들이 생을 살면서 교사로 혹은 반면교사로 가르쳤던 다양한 행동과 운명들을 곱씹고 음미함으로써, 세상의 많은 일이 부드러워지고 순조로워질 수 있다는 교훈이다. 함께 밥먹는 일의 힘. 그게 제사의 오래된 통찰과 지혜이다. 돌아간 사람에 대해 이토록 예의를 유지하는 뜻은 살아있는 일의 품격을 높이기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죽지만 그냥 죽는 것은 아니며 뒷사람에게 뜻을 남기고 지혜를 남기는 것이다. ? ?죽음을 존중하는 일은, 삶을 더욱 가치있게 하는 일이라고 옛사람들은 굳게 믿었다. 그래서 삶도 죽음도 외롭지 않다. 달도 좋고 밤바람도 좋은 한가위를 맞아, 조상에게 이런 생을 살게해준 일을 떠올리고 그해의 수확 중에서 가장 곱고 맛난 것을 나누는 일, 그게 오늘 당신이 하신 차례(茶禮)의 적선(積善)이다.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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