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음모론’, 불쏘시개 자청한 검찰·경찰

눈에 불을 켜고 유병언 찾았으나 수사공조는 대충?…순천경찰서장 경질했지만 의문은 여전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변사체로 발견된 사람은 정말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73)이 맞는 것일까. 경찰은 6월12일 전남 순천 송치재 휴게소 인근에서 발견된 변사체는 유 전 회장이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DNA 조사결과와 지문 감식 결과까지 제시했다. 그러나 그럴 리 없다는 의혹의 시선도 이어지고 있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21일 “유병언 시신 바꿔치기 가능성은 없다”고 해명했다. ‘시신 바꿔치기’라는 발상은 음모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일반적으로 음모론은 제기한 쪽이 부담을 지게 마련이다.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나면 무책임한 의혹 제기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합리적 의문’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유병언 변사체를 둘러싼 의혹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경찰과 검찰 발표는 논리를 갖춘 것처럼 보인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DNA 조사결과와 지문 감식 결과는 무시할 수 없는 증거다.
그럼에도 의문이 계속되는 것은 검찰과 경찰의 발표에 허점이 있기 때문이다. 변사체가 발견된 시점은 6월12일이다. 검찰과 경찰은 '유병언 검거지연' 때문에 곤혹스런 처지에 놓인 상황이었다. 조직의 사활을 걸고 '유병언 흔적 찾기'에 나섰던 시점이다. 수사당국이 눈을 부릅뜨고 수색작업에 나섰던 송치재 휴게소 인근에서 변사체가 나왔다. 휴게소와 변사체가 발견된 곳은 2.5km의 거리로 일반인도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다. 송치재 휴게소 인근에서 변사체가 나왔다면 당연히 유 전 회장과의 관련성을 의심하는 게 기본 수순이다. 심지어 현장에서 발견된 가방에는 구원파와 연관이 있는 제조회사의 스쿠알렌 병도 담겨 있었다. 가방의 안쪽에는 유병언이 쓴 책 제목과 같은 ‘꿈같은 사랑’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경찰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대수롭지 않게 처리했다. 우형호 순천경찰서장은 “구원파 계열사가 제조한 스쿠알렌 병, 천 가방에 씌어 있는 유병언씨 책 제목 등을 당시에는 몰랐다”고 말했다.이성호 경찰청장은 22일 기자간담회에서 “초동수사에서 실수가 있었다”고 말했다. 우형호 순천서장은 경질됐다. 경질이 됐다고 근본적인 의문이 풀린 것은 아니다. 경찰의 행동은 단순한 실수로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경찰 수사 지휘 책임을 맡은 검찰도 마찬가지다. 검찰 역시 처음에는 일반 변사사건으로 판단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21일 저녁이 돼서야 변사체의 주인공이 유 전 회장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변사체와 유 전 회장과의 관련성을 문의하고 결과를 받는 과정에서 검찰은 이를 몰랐고 결과가 나올 시점에서야 알았다는 얘기다. 이는 정보를 중시하는 수사기관의 특성과는 동떨어진 모습이다. 석연치 않은 상황은 음모론에 힘을 실어주는 요인이다. 이와 관련 유 전 회장이 5공화국 시절부터 여권의 자금줄 역할을 했다는 의혹이 다시 관심의 초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수사당국이 어떤 발표를 한다고 해도 의혹의 불씨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불신을 자초한 수사당국의 모습이 음모론의 든든한 진원지가 되고 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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