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여담]침묵하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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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아비규환이다. 한 남자가 누군가를 목 졸라 죽이려 하고 있다. 대낮 시내 중심가 빌딩에서 벌어진 섬뜩한 상황이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사건을 목격한 이들은 소스라치게 놀란다. 어느 여성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고, 말끔한 양복의 신사는 슬금슬금 뒷걸음질로 사라진다. 살인을 막겠다며 위험을 무릎쓰고 달려든 청년들도 있다. 중년 여성은 911에 신고를 하고, 어떤 남성은 소화기를 뿌려 사태를 진정시키려 애쓴다. 그 와중에 스마트폰으로 촬영을 하는 사람도. 지난해 제작된 '엘리베이터 살인실험'이라는 제목의 몰래카메라다. 같은 해 개봉한 '퍼펙트(원제는 데드맨다운)'의 바이럴 마케팅으로 촬영한 것인데 피험자들은 연출된 상황을 '사실'로 믿고 본능대로 반응했다. 그 다양한 반응이 공감을 이끌어낸 것일까. 몰래카메라 영상은 유튜브에 등록된 지 4일 만에 299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만약 당신이라면 저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몰래카메라인 것을 모르는 상태에서) 피해자를 돕기 위해 나섰을까, 아니면 놀라서 달아났을까, 혹은 나몰라라 외면했을까? 여기 11분짜리 중국 단편영화 하나가 좀 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지난 2001년 제58회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거머쥔 '버스44'다. 내용은 이렇다. 젊은 여자 기사가 운전하는 시골 버스에 한 남자가 타고, 다음 정거장에서 두 명의 남자가 탑승한다. 두 명의 남자는 강도로 돌변해 승객들의 돈을 빼앗고, 여기사를 끌어내 성폭행하려 한다. 승객 모두 외면하는 사이, 앞서 탄 남자가 기사를 도우려다 상처만 입고 쓰러진다. 처참한 몰골로 돌아온 여기사는 웬일인지 상처 입은 남자를 남겨둔 채 버스를 출발시킨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이 영화는 후반부가 충격적이다. 홀로 남은 남자는 겨우 다른 차를 얻어 타지만 얼마 못가 참혹한 사고 현장을 목격한다. 자신을 버리고 출발했던 버스가 절벽 아래로 떨어져 승객 모두 사망한 것이다. 그 순간 남자의 얼굴에 의미심장한 표정이 클로즈업 되면서 영화는 끝난다. 여기사가 강도의 만행에 침묵한 승객들과 함께 자살했음을 암시하면서. 몰래카메라에 이어 버스44는 우리에게 '침묵'의 실체를 폭로한다. 타인의 불행에 침묵하는 것은 곧 '악의 편'임을. 사회 정의의 가장 큰 적은 '악' 자체가 아니라 그 악에 침묵하는 다수(多數)라는, 끔찍한 경고인 것이다. 만약 우리가 저 버스에 탔다면? 침묵할 것인지, 침묵을 깰 것인지 답은 각자의 몫이다. 이정일 산업2부장 jaylee@asiae.co.kr<후소(後笑)><ⓒ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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