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선배가 문득 떠오른 것은 지독한 숙취와 쓰라린 상실감 때문이었다. 술이 낳은 잔혹사랄까. 오랜 친분을 쌓은 재계 원로와의 반가운 저녁 술자리가 발단이었다. 평소 입이 무거운 그분이 그날은 달랐다. 잔을 마다하지 않더니 급기야 말문의 자물쇠를 풀고 말았다. 취중에 털어놓는 게 비화요, 들려주는 게 특종이었다. 옳거니, 하면서도 내 몸뚱이는 대한민국 서울시 종로 어느 식당에 있지만 정신은 이미 태양계를 벗어나 안드로메다(폭음의 종착역)를 향하는 중이었다. 그 순간 가까스로 꺼내든 것이 스마트폰이요, 힘겹게 해낸 일이 '녹음' 버튼을 누르는 것이었다. 모 그룹 회장의 사생활, 어느 대기업 사장이 물러난 사연, 내로라하는 기업 오너가의 범상치 않은 가족사….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저 믿음직한 스마트폰에 저장되고 있다는 안도감과 함께 술잔은 다시 돌고 돌고 돌고. 마침내 안드로메다와 접속. 다음 날 숙취가 대수랴. 나에겐 승자의 전리품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삶은 참으로 얄궂다. 개봉박두의 설렘으로 스마트폰의 재생 버튼을 눌렀더니 틱 틱 틱, 기계음만 들려오는 게 아닌가. 어라? 어제 그 생생했던 대화는 어디로 갔지. 아무리 뒤져도 녹음 파일을 찾을 수는 없었다. 갑작스러운 당혹감에 밀려오는 상실감, 파도처럼 다시 넘실대는 숙취(추측건대 녹음을 '확인'한답시고 버튼을 몇 차례 누른 게 화근이었나 보다). 그 순간 떠오른 것이 A 선배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술만 마시면 주정이 심했던 그가 입버릇처럼 내뱉는 말이 '술자리 취재'였다. 진짜 특종은 술자리에서 나온다고. 스마트폰이 흔치않았던 시절, A 선배가 술자리에서 자주 애용한 것은 휴지였다. 취재원이 취중에 기삿거리를 흘리면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등 육하원칙을 곱씹다가 화장실로 직행, 휴지에 받아적고는 주머니에 집어넣는 것이었다. 하지만 선배가 술자리 특종을 실제로 터트린 기억은 별로 없다. 다음 날 술이 깨면 '특종 휴지'가 마법처럼 사라져버렸다는 귀신 곡할 소리만 늘어놓기 일쑤였다. 너무 취해 쓰레기인 줄 알고 어딘가에 쑤셔 박았거나 코를 풀어 길바닥에 던져버렸을 것이라면서. 간혹 주머니에 남아 있더라도 술 취한 글씨를 술 깬 눈이 어찌 알아본단 말인가. 그때의 휴지가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바뀌었지만 술자리 취재는 예나 지금이나 예측불허에 난공불락이다. 남는 것이라곤 지독한 숙취와 쓰라린 상실감뿐.<후소(後笑)><ⓒ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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