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블로그]여성CEO에 야박한 투자금융

[아시아경제 조태진 기자]"신용대출이 가능한 일반기업보다 부채비율이 낮은데 남편 명의의 자산을 담보로 요구하는 게 말이 되느냐." 이달 초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여성친화금융 생태계 조성을 위한 연구' 학술세미나에 참석한 모 중소기업 여성 최고경영자(CEO)의 푸념이다.  그는 "지난해 부채비율이 40% 정도다. 국내 중소제조업 평균치인 155%의 삼분의 일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며 "매출 대비 순이익률도 네 배 가까이 많은데 자금 조달 창구 문턱이 지나치게 높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재무안정성 등 기업의 펀더멘털을 제쳐둘 정도로 여성에 대한 편견이 금융권에 만연되어 있다며 행사 내내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이날 행사는 여성의 창의성과 소프트파워를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연결시키고 궁극적으로 한국경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여성 친화금융의 생태계 조성이 필수적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마련됐다. 김형태 자본시장연구원장은 "여성은 일반 창업이나 벤처, 소호창업을 할 경우 같은 조건의 남성 창업자보다 상대적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많다"며 "정부의 각종 지원자금이나 창업금융, 신용보증 시스템 등이 남성이 주로 창업하는 기계나 전자 등 하드 테크놀로지에 맞춰져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여성경제인협회에 따르면 지난 2009년 현재 여성이 창업했거나 CEO를 역임하는 기업은 122만 여개로 전체 중소기업의 37.1%를 차지했다. 하지만 상장의 문을 통과해 다양한 자금조달을 꾀할 수 있는 회사로 따지면 사정은 확 달라진다. 실제로 국내 상장기업 1787개사 가운데 여성 CEO가 활동하는 상장사는 단 13곳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는 가업을 승계한 경우가 상당해 자수성가로 시장 진입에 성공한 CEO는 손에 꼽을 정도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기업공개 작업을 주관하는 증권사들이 여성 CEO를 꺼려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상장 이후 유상증자 등 외부 투자자의 돈을 끌어들이기가 쉽지 않은 부분도 있다"고 귀띔했다. 상당수 여성 CEO들이 패션, 애니메이션, 캐릭터, 소프트웨어 등 무형 콘텐츠 부문 창업에 쏠려있는 것도 금융지원 울타리에서 벗어나게 하는 요인이다. 국내에서 유망 산업으로 분류되는 기술 벤처분야에서의 여성 창업자는 4.7%에 불과하다는 보고서도 있다. 전문가들은 지난 99년 제정된 '여성기업 지원에 관한 법률'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차은영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여성의 경우 라이프 스타일 만족도에 중점을 둔 생계형 창업 사례가 대부분으로 기존 기업의 대출 조건과 다른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며 "미국의 여성 전용 사전승인대출 프로그램과 같은 별도 플랫폼이 강구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여성 경제활동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이들의 기여도는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지표가 되고 있다. 경제활동 중심에 많은 여성이 있게 하고 성공한 여성 벤처기업가들이 속속 양산되어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주창하고 있는 '창조 경제'와도 맥락이 닿아 있는 부분이다. 정부 대책을 요구하는 이날 행사장의 '작은 목소리'가 의미있게 다가오는 이유다. 조태진 기자 tjjo@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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