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호 발사 성공' 이끈 김승조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아시아경제 노미란 기자]우주 밖에는 외계 생명체도, 미지의 세상도 없다. 오로지 빛과 어둠이 끝없이 펼쳐진, 그래서 시간마저 멈춰선 공허함 속의 영원한 유영 뿐. 죽음보다 잔인한 고독에 몸서리치는 나약한 인간, 스톤 박사(샌드라 블록). 삶의 끝자락에 내몰렸던 스톤 박사가 극적으로 생환해 지구 중력을 느끼며 땅을 어루만지는 장면에서, 그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40년 넘게 우주를 지켜봐온 과학자의 남다른 감회였으리라. 화제작 그래비티는 김승조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에게 그렇게 각별하게 다가왔다. 김 원장이 기억하는 또 다른 장면은 미국인인 스톤 박사가 중국 우주정거장으로 피신하는 순간이다. 중국 미국·러시아에 이어 세계 세번째로 유인우주선을 발사했다. 김 원장은 "중국 정부가 지속적인 투자로 미국과 러시아에 버금가는 발사체 강국으로 성장한 것처럼 우리도 우주 항공 부문에 보다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며 "2020년경 우리의 달 탐사선을 우리 발사체로 쏘아올린다면 대한민국의 우주 역사도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지난 1989년 설립된 국가항공우주기술 중심 연구기관이다. 다목적실용위성 개발, 선진국 수준의 위성기술 확보, 나로우주센터 건립과 국내 첫 우주발사체인 나로호 개발 등 다양한 우주 개척을 시도하고 있다. 한국형헬기사업과 스마트무인기 사업을 통한 항공기술 발전에도 기여한다. ◆한국형발사체 개발사업, "전망 있다" = 2011년 6월 취임한 김 원장은 숱한 도전 끝에 지난 1월 나로호(KSLV-1) 발사 성공의 감격을 맛봤다. 그러면서 한국형 발사체 상업화에 더욱 매달리고 있다. 한국형발사체 사업은 위성을 우주로 쏘아올리는 데 필수 장치인 발사체에 대한 독자 기술을 확보하는 게 목적이다. 박근혜정부가 사업 완성 시점을 2021년에서 2020년으로 앞당기면서 김 위원장의 어깨도 무거워졌다. 그는 "오는 2040년까지 100여기의 국내위성 발사가 예상되는 등 위성수요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며 "우리 위성을 우리가 원하는 시기에 발사해 활용하려면 우리만의 발사체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발사체 기술 축적이 우리 우주기술의 독립성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지난 8월 다목적 위성 아리랑 5호가 러시아 내부 사정으로 발사가 2년 넘게 미뤄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발사체가 없다면 타국의 발사체를 이용할 수밖에 없어 우리나라 우주계획이 다른 나라에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축적된 발사체 엔진 기술을 토대로 한국형발사체 후속 모델(KSLV-III, KSLV-IV)을 개발한다면 그토록 염원하는 발사체 상업화도 제 궤도에 오르는 것이다. 가설계가 끝나 연소실 시험, 엔진시험, 단 시험, 시험발사 등을 거쳐 2018년과 2019년에 75t급 엔진 4기를 하나로 묶어 300t급 엔진 연소시험을 진행하는 계획도 갖고 있다. 그는 "순수 우리 기술로 달을 탐사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얼마 전 대한항공이 상업화 사업 포기를 선언하면서 민간 참여가 일부 좌절됐지만, 독립 채산형 구조로 출범시켰던 한국형발사체 개발사업단을 항우연으로 원위치시키며 효율성을 꾀하고 있다. ◆우리나라 위성 부문 위상 높아 = 현재 지구를 돌고 있는 위성은 약 3000개. 그 중에서 민간위성을 제외하고 우리나라가 운영 중인 위성은 아리랑 2, 3, 5호와 천리안위성, 과학기술위성2호 등 5개다. 김 원장은 "아리랑 5호는 기상조건에 상관없이 지구 관측이 가능해 백두산의 화산활동, 해양유류사고와 같은 자연재해를 관측하는 기술에서 한 단계 진일보한 발전을 이끌어냈다"며 "천리안 위성 역시 기상정보와 한반도 주변 해양환경정보를 제공하며 국민 실생활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밝혔다. 지금보다 더욱 다양한 기능의 위성을 하루 빨리 늘려야 하는 것은 그의 숙제다. 계획된 개발 일정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아리랑 3A호가 내년 하반기 발사를 목표로 위성 조립과 시험 과정이 진행 중이고, 2017년과 2018년 발사되는 정지궤도복합위성은 기상, 환경, 해양 분야의 관측을 보다 정교하게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는 "아리랑 5호와 같은 영상레이더(SAR)를 탑재한 아리랑 6호가 2019년 발사를 목표로 개발이 시작됐다"고 덧붙였다. 항우연의 또 다른 핵심 사업인 항공분야에서는 스마트무인기를 강조했다. 스마트무인기 개발로 한국은 세계 2번째 틸트로터 항공기 기술을 보유하게 됐다. 그는 "최근 스마트무인기 기술을 산업체에 기술 이전하고, 실용화를 진행 중인데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고속-수직 이착륙 무인기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차기 사업도 준비 중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의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특히 달 탐사 프로젝트에서 긴밀히 협력 중이다. 김 원장은 "달 탐사를 통해서 우리 국민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줄 수 있고 우리 발사체 기술력을 세계로 인정받아 세계 발사 서비스 시장에 진출하는 계기로 삼는 등 상용화로 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승조 원장은 타고난 '과학도'다. 1969년 서울대학교 항공공학과에 입학한 후 미국 텍사스 대학원에서 항공우주공학 박사 학위를 받으며 줄곧 항공우주분야를 걷고 있다. 과학도 특유의 호기심과 탐구력은 기발한 결과물을 여럿 만들어냈다. 86년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로 재임할 당시 10여년의 연구 끝에 상하좌우 이동이 가능한 사이클로콥터를 개발했다. 2002년에는 세계 랭킹 56위의 계산 능력을 가진 수퍼컴퓨터를 만들었다. 2002년과 2006년에는 아리랑 3호와 아이랑 5호 위성 기획에도 참여했다. 우주 도전은 방대한 예산과 시간이 필요한 만큼 단기적인 전략보다는 장기적인 로드맵이 중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언제가 대한민국의 우주정거장이 광활한 우주 탐사의 전진기지가 될 것이라는 희망이 그의 환한 표정에서 오롯이 묻어났다.노미란 기자 asiaroh@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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