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물 짙게 든 얼굴이 아름답지 않으뇨/빨간 정 무르녹는 마음이 아름답지 않으뇨/단풍 든 시절은 새빨간 웃음을 웃고 새빨간 말을 지줄댄다/어데 청춘을 보낸 서러움이 있느뇨/어데 노사(老死)를 앞둘 두려움이 있느뇨/재화가 한끝 풍성하야 시월 햇살이 무색하다/사랑에 한창 익어서 실찐 띠몸이 불탄다/영화의 자랑이 한창 현란해서 청청 한울이 눈부셔 한다/시월 시절은 단풍이 얼굴이요, 또 마음인데 시월단풍도 높다란 낭떠러지에 두서너 나무 깨웃듬이 외로이 서서 한들거리는 것이 기로다/시월 단풍은 아름다우나 사랑하기를 삼갈 것이니 울어서도 다 하지 못한/독한 원한이 빨간 자주(紫朱)로 지지우리지 않느뇨백석의 '단풍'■ 단풍을 보면 습관처럼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꽃이 붉은 것이라면 벌나비를 유혹하려는 목적이라도 있는 것인데, 넌 무엇을 위해 그리 고와지는 것이냐. 소용없는 아름다움처럼 보이기에, 그 불타는 정념의 외양이 안쓰럽고 무모해보인다. 이제 늦가을쯤 되어가는 삶이, 잃어버린 청춘과 닥쳐오는 죽음 따윈 아랑곳 않고 도도히 피워올리는 붉음. 이 여인을 너무 사랑해선 안되겠구나. 홀로 너무 많이 울어 배어나온 원한의 빛깔에, 더불어 물들까 두렵다. 재화는 재능을 말하고 영화는 꽃의 빛깔을 의미하며, 실찐 띠몸은 실(實)하게 자란 길다랗고 얇은 잎의 몸을 가리킨다. 청청 한울은 푸르고푸른 하늘이고 깨웃듬이는 애교있게 약간 기울어진 모양이다. 지지우리는 것은 '지지우다('지지다'의 북쪽 사투리)'에서 온 것 같은데 확실하지 않다. 사랑의 원한이 붉은 빛으로 잎을 굽고 지지는 것이 아닌가.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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