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서]위기의 한국 자본시장, 미래를 묻는다

홍은주 한양사이버대 경제금융학 교수

한국 자본시장이 위기다. 증권가는 "수십 년 동안 겪었던 어려움 가운데 최대 위기"라고 입을 모은다. 우선 마음 놓고 투자할 만한 기업의 주식이나 채권이 마땅치가 않다. 성적 좋은 기업은 미래가치가 이미 현재 주가에 다 반영되어 자본차익보다는 배당에 기대는 채권성 주식으로 변했고 새롭게 투자할 만한 가능성 있는 산업이나 유망기업들이 도무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금리문제 때문에 채권 발행도 시원찮고 조만간 현실화할 것이 분명한 미국의 출구전략 때문에 돈이 언제 한국시장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갈지 몰라 시장은 계속 불안하다. 주식매매 회전율이 급락하여 증권사 수수료 수입도 시원찮다.  국내가 어려우면 해외로라도 나가야 하는데 그쪽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현저하게 낮아지고 유럽의 재정위기가 여전하며 전 세계적 불황 때문에 자원에 대한 수요가 급감하면서 에너지나 부존자원 강국으로 각광을 받았던 러시아와 브라질 등이 휘청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같은 어려움이 한동안 참아 내면 저절로 극복되는 단기적 현상이 아니라 중장기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우선 거시적으로 경제성장의 둔화가 오랫동안 계속되어 일본식 장기불황에 접어들었는데 이를 타개할 만한 대응수단이 없다.  베이비부머 세대 수백만 명이 무더기로 은퇴하면서 몇 년 이내에 본격적으로 국민연금 수령기에 접어드는 인구학적 트렌드 역시 큰 부담요인이다. 그동안 이들이 꼬박꼬박 낸 국민연금으로 주식과 채권매입이 늘어나 자본시장이 커지고 발달해 왔지만 거꾸로 이들이 무더기로 연금을 타게 되면 자본시장이 급속도로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수영장 속의 고래'로 불리는 국민연금이 지속적으로 연금을 지급하기 위해 대량으로 증권을 팔기 시작하면 그 충격은 생각보다 훨씬 커질 수 있다.  최근에는 자본시장에 대한 규제까지 급격히 강화되고 있다. 자본시장법에 명시된 소비자보호 규정에 더해 금융소비자보호법이 따로 만들어지고 금융감독원과 유사한 성격의 강력한 금융소비자보호기구가 추진되고 있다.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월가나 금융산업이 일반 소비자를 수탈하는 '범죄산업(sin industry)'인 것처럼 손가락질받게 되자 미국과 영국, 캐나다, 호주 등은 금융산업을 규제하는 온갖 법과 규제, 기구를 경쟁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는데 한국도 글로벌 금융규제 추세를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같은 규제라도 금융산업별로 받게 될 충격은 다르다. 은행의 경우 대출이라는 단순업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추가규제를 받는다고 해도 별 문제가 아니지만 '위험을 감수하는 투자'와 창의적 금융기법 개발이 필요한 자본시장은 급속도로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고위험-고수익 투자는 싹이 트기도 전에 고사하고, 천문학적 비용을 치러 가면서 선진국에서 배웠던 첨단 금융기법들은 다른 나라 금융시장에 진출해 사용해 보지도 못하고 사장될 것이다.  자본시장은 정보비대칭 상황에서 자금이 효율적으로 재분배되도록 하며 기업정보 탐색과 공시 기능을 통해 우량기업과 부실기업을 가려내고 실물부분의 구조조정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그 자체로 부가가치가 높고 고용유발 효과도 크다. 자본시장이 발전하지 못한 나라가 선진국이 된 사례는 없다고 잘라 말할 수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금융시장에 대한 적정 규제의 수준과 범위를 결정함과 동시에 위기에 처한 자본시장의 올바른 발전방향을 고민해야 한다. 금융에 대한 실물우위라는 과거 패러다임에 사로잡혀 자본시장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진짜 창의경제가 작동하는 산업을 고사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홍은주 한양사이버대 경제금융학 교수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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