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에게 구두친서를 보낸 가운데 친서의 의도와 이에 따른 금강산관광 재개문제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 제1위원장이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빈소에서 남측 인사의 조문을 받기는 했지만, 남쪽에 직접 친서를 전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북한 조선중앙통신은 4일 김 제1위원장이 3일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의 10주기를 맞아 정 전 회장을 추모하는 구두친서를 원동연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을 통해 현 회장에게 전달했다고 전했다. 통신은 김 제1위원장이 구두친서에서 "정몽헌 선생은 민족화해와 협력의 길을 개척하고 북남관계 발전과 조국통일 성업을 위해 큰일을 했다"라며 "그의 명복을 기원하며 현 회장을 비롯한 선생의 가족과 현대그룹의 모든 일이 잘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통신은 이날 금강산에서 진행된 정 전 회장의 10주기 추모식 소식도 비교적 자세하게 보도했다. 이날 추모식에는 북측에서 원 부위원장과 함께 황호영 금강산국제관광특구지도국 국장을 비롯한 관계일꾼들이 참가했으며,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명의의 화환과 꽃다발이 진정됐다고 통신은 전했다. 통신은 또 현대그룹 관계자들이 "정주영, 정몽헌 선생들이 바라던 민족의 화해와 협력의 큰 뜻을 이루며 금강산 관광의 조속한 재개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할 결의를 표명했다"라고 덧붙였다.김 제1위원장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에게 구두친서를 전달한 것은 김정은 체제의 대남정책 방향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친서의 현안은 '현대그룹의 모든 일이 잘되길 바란다'는 내용이었지만 남북관계에 대한 함축적 의미를 담았다는 것이다.이를 통해 통해 김정일 위원장 시절 맺어진 현대그룹과 관계를 지속해 가면서 금강산 관광사업 등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김일성 주석과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인연을 김정일 위원장과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 및 현 회장이 바통을 이어받은 만큼 김 제1위원장도 이를 잇겠다는 뜻을 밝혔다는 분석이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이번 구두친서 전달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현대그룹과 합의한 사업들을 유훈으로 받들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며 "현대그룹과 해온 그동안의 협력사업을 계속하겠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북한은 지난 6월 조국평화통일위원회 특별담화문에서 남북 당국간 회담을 제안하면서 개성공단 정상화뿐 아니라 금강산 관광 재개도 의제로 못박았다. 또 개성공단 실무회담이 열리는 와중에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회담과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 접촉을 제안하는 등 현대그룹이 해온 금강산 관광 재개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북한이 개성공단 실무회담에서 합의서 초안을 여러 차례 수정하면서 정상 가동에 적극성을 보인 것도 꽉 막힌 남북관계를 풀어보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볼 수 있다.금강산광광이 다시 재개된다면 5년만이다. 금강산관광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8년 11월18일 뱃길을 통해 처음 시작됐다. 하지만 2008년 7월11일 관광객 박왕자 씨가 북한군 초병의 총에 맞아 사망하고 현재까지 5년가까이 중단된 상태다.이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9년 8월 방북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직접 만나 관광객의 신변안전 보장 등에 대해 구두로 '약속'하는 등 금강산관광재개에 대해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이에 실무회담이 열렸지만 우리 정부에서 제시한 '진상규명', '재발방지책 마련', '신변안전보장을 위한 제도적 장치 완비' 등 3대 선결과제에 합의를 보지 못하면서 무산됐다. 북한이 실무회담이 무산되자 2010년 3월 금강산에 있는 남측 부동산에 대한 조사를 벌였고, 4월에는 정부 자산인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와 소방서, 한국관광공사 소유의 문화회관과 온천장, 면세점, 현대아산과 협력업체의 부동산을 동결ㆍ몰수하고 관리인원을 추방했다.2011년에 들어서서 북한은 독자적으로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였다. 4월에는 현대와 기존에 합의했던 금강산 관광의 독점권 효력을 취소한다고 발표했고, 6월에는 남한을 포함한 외국에서 금강산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한 금강산국제관광특구법(특구법)을 발표했다. 그러나 북한의 생각대로 금강산 국제관광이 활성화되지는 못했다. 2011년 8월 재일동포 북송수단으로 유명했던 만경봉호를 활용해 나진과 금강산을 오가는 해상관광을 시범적으로 벌였지만, 시설 노후화 등으로 같은 10월까지 4차례에 걸쳐 중국인400여 명이 관광하는 데 그쳤다. 북한은 올 2월 싱가포르의 대형 유람선 '황성호'를 도입해 지난달 나선-금강산 국제관광을 시작했지만, 성과는 신통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우리측 피해는 심각했다. 금강산 관광사업은 2008년 박왕자씨 피살 사건으로 중단될 때까지 순수투자액 3593억원과 금강산 호텔 등 숙박시설, 골프장ㆍ리조트 등 총 2263억원을 투자, 매출손실까지 감안한 4년간 피해액이 2조원에 달해 그동안 북한에 투자한 모든 사업의 피해액만도 10조원으로 추산된다.그러나 북한이 독자적인 국제관광을 추진하기 위해 만든 특구법이 금강산 관광 재개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은 지난 1998년 현대그룹과 금강산 관광 사업에 합의하면서 '50년 독점 개발권'을 현대에 부여했지만 2011년 6월 발표한 특구법에서는 현대에 줬던 개발ㆍ관광사업 독점권을 박탈하고 건물이나 관광 수익에 대한 납세의무를 부과해 개발권과 독점권, 면세권 등을 침해했다. 이에 따라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는 과정에서 북한이 정부 및 현대와 합의했던 기존 합의서의 효력을 부활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여기에 남북관계를 풀려면 당국간 관계 복원이 우선인 만큼 현재 교착국면에 있는 개성공단 실무회담부터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개성공단 정상화가 가동중단의 책임과 재발방지 약속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어 이 문제의 해법부터 마련해야 금강산 관광사업 등 다른 사업에 대한 논의로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현정은 회장에게 구두친서를 보내는 등 남북관계를 풀려고 여러 노력을 하고는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며 "결국 당국간 관계에서 출구를 마련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양낙규 기자 if@<ⓒ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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