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들의 사생활-6장 봄비 내리는 아침 (108)

“근데 아까 그 영화에 나오는 마리오라는 사람, 실재로는 마씨모 트로시라는 이딸리아의 유명한 감독이자 배운데, 그 사람은 이 영화를 찍고나서 얼마 안 있어 진짜로 죽었어. 심장병으로.... ”“마리오라는 사람.... 어쩐지 하림 오빠 같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후후. 그럼 나보고 빨리 죽으란 말이냐?”하림이 가볍게 웃었다.“아니. 이야기를 하는 동안 하림 오빠의 눈이 어쩐지 마리오처럼 슬퍼보였어요.”“그래...?”하림은 외국인처럼 어깨를 한번 으쓱해보였다.“마리오는 너야. 하소연이.....! 나는 네루다고.... 알겠니? 시를 배우러 온 사람은 너니까.”“좋아요. 아무렴 어때요.”소연이 다시 소녀처럼 유쾌하게 웃으면서 말했다.“하지만 아까처럼 엄살을 피우면 안 돼. 가방끈이 짧아서 아무것도 모른다니 어쩌니, 하는 말 말이야. 그러면 다시 널 보지 않을 거니까.”주전자에 물이 끓는 걸 보며 하림이 의자에서 일어났다.“차 한잔 더 할래? 그나저나 고마워. 사실 난 단 거 무지 좋아하거든.”그러면서 소연이 가져온 과자 봉지를 뜯었다.“수업료라니까요. 후후.”“네 그 잘난 사촌언니가 나중에 알고 월급에서 깐다고 하면 어쩔려구?”“까라하죠, 뭐. 바라지도 않아요.”소연이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으면서 말했다. 어느새 다시 개나리처럼 젊은 이십대 초반의 여자아이로 돌아와 있었다.“알았어. 어쨌거나 읍내 나갈 때 말해. 같이 가서 교재나 좀 사게. 영어랑 국어만 잘 해도 어느 정도 대학은 들어갈 수 있어.”“진짜로 해주는 거죠?”소연이 여전히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럼.”하림은 컵에 펄펄 끓는 물을 붓고 일회용 녹차 티백을 하나 꺼내어 먼저 소연이 쪽 컵에 몇 번 담구었다 꺼낸 다음 자기 쪽 컵에다 넣었다. “알았어요. 근데 나 같은 애가 어떻게 시를 배워요? 마리오 같은 재능도 없는데....”소연이 자신없는 목소리로 말했다.“그야 피장파장이야. 알고 보면 나도 네루다가 아니라 별 볼 일 없는 대한민국 삼류시인에 불과하니까.”하림이 짐짓 소리내어 웃었다.“사실 좀 걱정은 돼. 다 큰 처녀가 혼자 사는 총각한테 들락거리는 게 소문이라도 나면 어쩌나 하고 말이야.”“피이. 걱정마요. 나처럼 못 생긴 애한테 신경 써줄 사람 아무도 없으니까. 밖에는 지금 봄비가 내리고 있을 것이었다. 봄비 내리고 있을 풍경을 상상하자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좋아. 이왕 온 김에 이제부터 우리 시 쓰는 연습이나 한번 해볼까?”하림이 말했다.“정말....?”소연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오진희 기자 valer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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