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부단한 정부당국..혼란스런 시장
[아시아경제 이승종 기자] "이제라도 결론이 나와서 다행이지만 이번 영구채 논란을 7개월 동안이나 지지부진하게 끌어왔어야 했는지는 의문입니다."지난주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가 두산인프라코어 영구채를 자본으로 잠정 결론내린 후 시중의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마땅히 결론 내려줘야 하는 금융당국, 전문기관 등은 결정을 해외로 미뤘고, 시장은 혼란스러웠고, 피해는 투자자와 기업들의 몫이었다"고 지적했다. 두산인프라코어 영구채 논란이 겨우 마무리됐지만 업계의 시선은 싸늘하다. 국내 정부 기관들이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며 결정을 해외로 넘긴 사이 혼란을 겪은 시장의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다. 다른 기업들의 영구채에서 두산인프라코어처럼 특별한 개별 이슈가 발생했을 때 "또 다시 7개월을 기다려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논란은 지난해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산인프라코어는 해외서 5억달러 규모 영구채를 발행하며 국내 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영구채 발행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영구채는 만기를 계속 연장할 수 있어 실질적으로 만기가 없는 채권이다. 채권과 주식의 중간 성격을 띠고 있어 하이브리드(hybrid) 채권이라 불린다. 영구채는 회계상 자본으로 처리할 수 있어 부채비율이 높은 기업에 크게 매력적인 자금조달 수단이다. 문제는 두산인프라코어 영구채의 구조였다. 후순위성이 명시돼 있지 않고, 5년 후 5%에 달하는 추가 가산금리가 붙도록 돼 있어 "사실상 5년만기 회사채"라는 지적이 불거졌다. 자본이 아닌, 부채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두산인프라코어는 금융감독원에게서 "자본으로 인정된다"는 잠정의견을 받은 터였다. 금감원과 달리 금융위원회는 두산인프라코어 영구채를 자본으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놨다. 국내 신용평가사와 전문연구기관은 물론 시중 증권사 리서치센터까지 논란에 가세했다. 의견은 대부분 "두산인프라코어 영구채는 부채"라는 쪽이었다. 한 기업이 발행한 채권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를 두고 여의도 금융투자 업계 전체가 논란에 뛰어든 셈이다. 논란이 확산되자 금융위는 법적 해석권한이 있는 회계기준원에 판단을 맡겼다. 이에 회계기준원은 수차례 연석회의를 열어 논의를 거듭했지만 결론내지 못했다. 판단은 다시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로 넘어갔다. 이때부터는 IASB의 '입'만 바라보는 상황이 이어졌다. 영구채 논란을 다룰 IASB 산하 국제회계기준 해석위원회(IFRS IC)에는 한국 위원이 한 명도 없었다. 국내는 IABS의 처리 여부를 놓고 갈팡질팡하며 혼란을 겪었다. 회계기준원은 지난해 "연내로 결론이 나올 것"이라고 밝혔지만 결론은 해를 넘겨서도 지지부진했다. 상황이 이렇자 비슷한 시기 영구채 발행을 준비 중이던 대한항공, 현대상선 등 다른 기업들은 일제히 '일단 대기' 상태로 들어갔다. 대한항공은 영구채 대신 회사채로 자금을 조달했고, 다른 기업들은 증권사와 물밑에서 의견만 조율하며 상황을 살폈다. 두산인프라코어도 곤욕이었다. 시장에선 자신들의 영구채를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인데 누구도 결론을 내주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올초 두산인프라코어 관계자는 "어느 쪽이든 빨리 결론이 나왔으면 하는 게 우리 바람"이라며 지친 기색을 드러냈다. 드디어 지난주 IFRS IC는 정례 회의를 열고 두산인프라코어 영구채를 회계기준상 자본으로 잠정 결론지었다. 논란이 불거진 지 7개월 만이다. 최종 결론은 오는 9월 나올 예정이지만, 큰 상황 변화가 있지 않는 한 자본 결정이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IASB의 결론이 나오자 대한항공, SK텔레콤, 포스코 등 시중 기업들은 일제히 영구채 발행 계획을 밝히고 있다. 전문가들은 IASB의 의견은 '두산인프라코어 영구채'에 한정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향후 두산인프라코어 처럼 개별 논란이 불거질 경우 또 다시 비슷한 확인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한 업계 관계자는 "이번 IASB 결정은 두산인프라코어 영구채가 지닌 구조를 자본으로 볼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라며 "다른 기업에게서 특별한 영구채 이슈가 발생한다면 건 바이 건(case by case)으로 다시 평가해야 한다"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시장의 관행이나 특정한 조건이 영구채 만기의 영구성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면 자본이라 보긴 어렵다"며 "후순위성, 만기의 영구성, 조기상환 부담 여부 등에 대한 보다 실질적이고 명확한 판단기준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승종 기자 hanarum@<ⓒ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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