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지난 24일 안전행정부는 '이상한' 보도 자료 한 건을 냈다. 내용은 각 시ㆍ군ㆍ구에 인ㆍ허가 전담 부서를 설치해 기업민원을 한 번에 해결한다는 것이다. 특이한 것은 난데없이 '상습적인 폭언ㆍ폭행 민원인에 대한 체계적 대응'이라는 내용이 끼어 있다는 점이다. 안행부는 민원을 좀더 빨리ㆍ효율적으로 해결해주겠다는 보도자료를 내면서 뜬금없이 평소 공무원들이 민원인을 상대하면서 당해 온 상습적인 폭언ㆍ폭행 등에 대해서도 앞으로 '봐주지' 않고 강력 대응하겠다는 내용을 첨가한 것이다. 게다가 보도자료에 첨부된 '관련 자료'는 이미 지난해 8월 행정안전부 시절 발표됐던 내용이었다. 이처럼 '특이한' 보도자료를 접한 기자들의 머릿 속엔 '라면 상무' 사건이 바로 떠올랐다. 최근 미국행 대한항공기에 탑승했던 모 대기업의 임원이 "라면이 맛이 없다"는 이유로 승무원을 폭행하고 막말을 내뱉어 물의를 빚은 바로 그 사건 말이다. 이로 인해 언론과 시민들 사이에선 우리나라 국민들의 항공기 승무원 등 '감정 노동자'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경향에 대해 강한 문제 의식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안전행정부로선 '라면 상무' 사건은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었다. 최근 같은 식구인 사회복지직 공무원 등 민원인 상대 공무원들이 '감정 노동자'로서 과다한 격무와 민원인들에 의한 스트레스ㆍ열악한 처우 등으로 잇따라 자살해 안 그래도 보호 대책을 내놔야 할 상황이었는데, 결정적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이다. 안행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상습적인 폭언ㆍ폭행 민원인에 대한 '체계적 대응'을 선언했다. 앞으로는 '민원인'이라고 봐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폭언ㆍ폭행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기관들에 청원경찰 등 안전요원을 배치하기로 했다. 앞으로 또 폭언ㆍ폭행을 당한 피해 공무원들에게 육체 및 심리 치료를 지원해주는 한편 인사상 불이익도 주지 않기로 했다. 그동안은 '어떤 이유로던' 민원인과 다툼을 벌인 공무원들에게는 감사 및 징계 등의 조치가 은연 중에 뒤따랐던 것이 사실이었는데, 이를 금지하겠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길래 안행부가 이렇게 '라면 상무' 사건을 은근히 반기면서 공무원들이 '절대 갑'으로 모셔야 할 민원인들에게 감히 이같은 '반기'를 들었을까?최근 사회복지직들의 잇딴 자살 이전에 공무원들에 대한 민원인들의 폭행 등이 문제가 된 것은 지난해 상반기였다. 지난해 4월4일 성남시 사회복지 공무원이 민원인이 휘두른 흉기에 얼굴 등을 크게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와 관련한 언론보도도 잇따랐다. 이전에도 문제는 종종 발생했다. 2008년 12월엔 동해시 주민센터 공무원이 민원인에 의해 피살됐고, 2011년 12월엔 성남 수정구청 방화소동 사건이, 2012년 1월엔 광주 광산구에서 민원인 흉기난동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따라 다수의 민원인이 민원 처리를 방해받고, 민원서비스의 질 저하, 행정력 낭비, 공무원의 육체적ㆍ정신적 피해 등이 발생한다는 우려가 나왔고, CCTV 등 안전장치 설치, 악성민원인 대응매뉴얼 제작ㆍ보급, 경찰과 공조 및 폭행민원인 처벌 등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결국 지난해 1월 김황식 국무총리가 국무회의에서 철저한 대책 마련을 지시하기에 이르렀다. 행안부는 이에 실태 파악 및 대책 마련을 위해 지난해 6~7월 일반 국민 및 공무원 대상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충격적인 조사 결과가 도출됐다. 응답한 공무원 중 93%가 지난 1년간 폭언을 당한 적이 있고, 13%는 폭행 피해를 경험했다. 특히 여성 공무원의 58%가 성희롱ㆍ성적비하를 당한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돼 충격을 줬다. 안행부는 '라면 상무' 사건 덕에 감정노동자들을 배려해야 한다는 사회적 문제의식이 높아지는 틈을 타 평소 때라면 '언감생심' 하기 어려웠던 평소 자신들의 민원을 대놓고 해소하게 된 계기를 만든 셈이다. 한편 지난해 설문조사 결과 폭력의 원인에 대해선 일반 국민과 공무원들 사이에 인식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것은 주목할 만한 사안이다. 국민들은 불친절 등 공무원이 원인을 제공했다는 사람이 30%로 가장 많았다. 반면 공무원들은 약한 처벌(45%) 때문이라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김봉수 기자 bskim@<ⓒ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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