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범수기자
사진제공 : 청와대
지난 19일 오후 박 대통령은 과천에 있었다. 미래창조과학부 현판 제막식에서 "축하합니다. 난산이었어요"라고 말해 좌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 행사에는 30여명이 참가했지만 박 대통령이 "눈치채 줬으면…" 했을 법한 변화를 알아챈 사람은 없었다. 뒤늦게 청와대 블로그를 관리하는 직원이 대통령을 대신해 말을 전했다. 이 날 박 대통령이 착용한 브로치(사진)는 한 시민이 대통령에게 전해달라며 청와대로 보낸 선물 중 하나였다. 블로그는 "소박하고도 마음과 정성이 가득 담긴 선물에 대통령께서 많이 고마워하고 계시다는 것을 전해드립니다. 선물 가운데 브로치는 대통령께서 직접 착용하기도 했는데요"라고 썼다. 박 대통령이 마트에서 4000원짜리 지갑을 들고 있는 사진을 청와대가 공개한 것도 비슷한 취지였는지 모른다.시민이 보내준 선물을 대통령이 직접 언급하거나 사용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꽤 좋은 홍보 전략이다. 한 시민이 보내준 곰인형을 박 대통령이 직접 찍어 트위터에 올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엔 누군가 보낸 사군자 십자수를 대통령이 잘 간직하고 있다고 블로그는 전했다. 이런 저런 사례를 보면 '친근한 이미지로 변하자'는 참모들의 조언을 박 대통령이 실행에 옮기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이미지 전환뿐 아니라 '민생경제'도 염두에 둔 것이란다. 박 대통령은 24일 언론사 편집ㆍ보도국장 오찬에서 "남대문시장에서 액세서리 구입한 거라고 해서 굉장히 성황을 이뤘다 그래요. 그런 게 액세서리 산업을 성장시키고 한복을 입는 게 도움 된다면 기쁜 일이고 더 노력할 의향 있습니다"라고 말했다.이런 노력은 '썰렁개그'를 작렬하거나 연예인, 영화 장면 등을 자주 언급하는 방식으로도 표현된다. 이달 초 청와대 어린이 기자단 재창간 축하메시지에서 박 대통령은 "영화 해리포터를 보면 주인공 소년이 마법학교로 가기 위해 벽을 뚫고 승강장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른들에게는 그냥 하나의 벽이지만 어린이들에게는 다른 세상으로 가는 출구가 열리는 것입니다"라고 썼다. 22일 빌 게이츠와 만남에서 게이츠 회장이 시애틀에 있는 재단을 방문해 달라고 초청하자 "시애틀 하면 'sleepless night'가 연상이 됩니다"라는 농담을 던졌다.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1993년)'을 말한 것이다. 창조경제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가수 싸이와 개그콘서트팀을 여러 차례 언급한 일도 잘 알려져 있다.가장 최근 버전의 썰렁개그는 언론사 편집ㆍ보도국장 오찬에서 소개됐다. 박 대통령은 "제가 언론과 관련된 유머 하나를 발견했습니다"라며 말을 시작했는데, 참모가 골라줬든 아니든 '불통 이미지'를 깨기 위해 박 대통령이 시간을 투자하며 애쓰고 있음은 확실한 것 같다.불통하지 않고 소통할 것이며 국민과 함께 호흡하고 느낌을 공유하는 그런 대통령을 누가 마다하랴. 돌이켜보면 지난 두 달간 박 대통령이 양보한 것은 하나도 없지만, 협박성 '대국민담화'를 보며 70년대 리더십을 떠올린 많은 사람들의 우려를 조금 누그러뜨린 것도 분명하다.하지만 왜 그 이상은 없을까. 4일 충남도청 개소식에 참가했을 때 청와대는 "민생, 현장 위주의 행보가 시작된 것"이라 의미를 부여했지만 이 말은 곧 무색해졌다. 대북 이슈도 소강상태로 접어들었건만 박 대통령은 22일째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창조경제 대표기업에도, 교육현장에도, 시장통에서도 그를 만날 수 없다. 그의 농담이 비현실적으로 들리는 건 청와대 저 깊은 곳에서 비서실 간부나 국회의원, 빌 게이츠와 나누는 것이기 때문은 아닐까. 박 대통령은 정말 변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여기까지가 원래 그였을까.신범수 기자 answe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