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詩]김병호의 '난생처음 봄'

풀 먹인 홑청 같은 봄날/베란다 볕 고른 편에/아이의 신발을 말리면/새로 돋은 연두빛 햇살들/자박자박 걸어 들어와/송사리떼처럼 출렁거린다//간지러웠을까통유리 이편에서 꽃잠을 자던 아이가/기지개를 켜자/내 엄지발가락 하나가 채 들어갈까 말까한/아이의 보행기 신발에/봄물이 진다한때 내 죄가 저리 가벼운 때가 있었다■ 저런 시절이 있었지만, 저런 풍경을 꼭 닮은 걸 보았지만, 이렇게 하늘거리는 언어로 생글거리는 빛으로 쓸 줄을 몰랐다. 목련 가득한 녹번동 시절, 배꽃이 지던 중계동 시절, 거기서 조금 더 밖으로 밀려났던 도봉산 회룡사역 부근 2월에 철모르는 진달래 피던 사하촌 시절로 옮겨다니면서, 세 번이나 보행기 신발에 애틋한 봄 그림자를 들였지만 살가운 기록도 없이 아이들을 키워버렸다. 아이의 아비가 되어, 처음 보고 처음 겪는 것들이 환장할 만큼 좋아서 이 기억을 어딘가에 채집해놓아야겠다는 생각조차 잊어버렸던 걸까. 아장아장 빵긋빵긋 조물조물 잼잼. 인간의 첫 행위들은 작고 조심스러웠다는 것을 떠올려주는 첩어들. 잠든 아이의 보행기 앞에 앉은 시인은 하늘 닮은 무구(無咎)를 이렇게 말한다. "한때 내 죄가 저리 가벼운 때가 있었다." 이 말 한 마디에 세상의 큰 그림자가 불쑥 다가와 앉는 느낌이다. 아이의 환함을 돋우려 한 말이었겠지만, 전경(全景)은 문득 낯설어져 있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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