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들의 사생활-2장 혜경이 45

“불 끄고 와....?”“응.”혜경이 일어나 불을 끄고 이불 속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고양이처럼 하림의 품에 폭 들어와 안겼다. 하림은 혜경의 풍성한 머리칼에 코를 묻고 컹컹거리며 강아지처럼 냄새를 맡았다. 혜경이 먼저 하림의 입술을 찾았다. 혜경의 입술이 조금 전보다 훨씬 뜨거워져 있었다. 하림은 목마른 사슴처럼 혜경의 입술을 열어 그 안에 가득 고인 따뜻한 샘물을 들이켰다. 혜경이 가볍게 신음소리를 내었다. 하림은 성급하게 혜경의 옷을 벗기려고 했다. 하지만 혜경은 가볍게 하림을 밀쳐내고 먼저 자기 옷을 벗은 다음, 하림의 윗옷과 바지를 벗겨주었다. 금세 둘 다 팬티 바람이 되었다. 그날따라 혜경이 더 적극적이었다. 하림은 그녀가 이끄는 대로 얌전히 송아지처럼 따라갔다.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혜경의 몸은 일제히 세포마다 불을 밝히고 하림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림의 몸 역시 불덩어리처럼 달구어졌다. 처음엔 그녀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지만 곧 하림이 고삐를 잡았다. 그는 거칠게 그녀의 숲을 헤치고 들어가 달을 찾았다. 황금색의 빛나는 달이 검은 숲 뒤로 지나갔다.순간, 하림의 머리속으로 번개가 뇌성이 울렸다. 얌전한 송아지는 어느새 푸른 초원에서 태어난 야생마처럼 변하였다. 자신의 내부 깊은 곳에서 잠자고 있던 짐승의 본성이 깨어나 힘차게 포효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더 이상 아무런 것도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태초의 싱싱한 욕망만이 갓 잡아올린 물고기처럼 파닥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귀에서 웅웅, 천둥 치는 소리가 들렸다.하림은 혜경 몸속으로 힘차게 자맥질해 들어갔다. 곧 푸른 초원이 나타났다. 초원은 부드럽고 아침이슬처럼 황홀한 빛에 젖어 있었다. 어느새 이마에 땀이 배였다. 그러나 초원 위를 달리는 야생마의 질주는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가 없었다. 바람이 씽씽 귓바퀴를 잘라먹으며 스쳐갔다. “아....!”혜경의 입술에서 달고 깊은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곱슬머릴 양태수의 그림자가 비쳤다. 그의 오토바이 꽁무니에 매달린 채 달리던 혜경의 모습도 떠올랐다. 자기와 혜경 사이에 언제나 그가 있었다. 언제나 보이지 않는 벽처럼 있었다. 그녀는 아직도 그를, 그러니까 은하 아빠를, 사랑한다고 했다. 그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 그저 세상에 적응하지 못했던 불쌍한 사람일 뿐이라고 했다. 불쌍하다는 말은 그를 사랑한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뿐이었다. 그러니까 그녀의 첫사랑은 여전히 하림이 아니라 양태수였을 것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폭풍처럼 이 초원 위를 달렸을 그를 생각하며 하림은 질투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나쁜 놈, 개새끼.... 하림은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그의 그림자를 향해 분노와 저주를 퍼부었다. 그럴수록 더욱 단단히 성난 야생마의 갈퀴를 틀어쥐고 배에 박차를 가하였다. 히힝! 말이 고통스럽게 울었다.태초엔, 아직 빛과 어둠이 나누어지기 전인 아득한 옛날엔, 모든 것이 하나였고, 한 몸이었을 것이다. 너와 나의 구분이 없었으며, 이것과 저것의 분별 또한 없었을 것이다. 대립과 투쟁도 없었으며, 사랑도 증오도, 어쩌면 그리움도 필요 없었을지 모른다. 비등점을 향해 힘차게 달리고 달리던 야생마가 마침내 초원의 끝에 이르렀다. 발굽에 채인 하얀 메뚜기 떼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혜경의 몸이 한차례 푸르르 전율을 하다가 깊게 가라앉았다. 파도가 잦아들자 죽음보다 깊은 정적이 찾아왔다. 하림은 혜경의 가슴에 가만히 얼굴을 묻고 심장의 뛰는 소리를 들었다. 검은 숲 뒤로 지나가던 황금빛 달만 유유히 제 걸음을 옮기고 있을 뿐이었다.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김영현 기자 ⓒ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