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의 이른 봄날 콩을 심었네비바람 불어 꼬투리 얽어져 우수수한 다발 콩대를 허무하게 거둬보니가마솥 채울 게 없구나매요신의 '시골집(田家)'■ 송나라 매요신(1002-1060)은 크게 출세한 바는 없었지만 빼어난 시인이었다. 흉년을 겪는 시골집을 소박하고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지만 짧은 말 속에 억장이 무너지는 심경이 꾹꾹 눌려 담겨져 있다. 빈 껍질들만 가득한 콩대를 베어온 것은 혹시나 남은 콩이 있을까 하는 답답한 마음이다. 그런데 솥이 이 농민의 마음처럼 텅 비었다. 천년 전에도 인간사는 이리도 녹록치 않았다. 시인 자신의 스토리이기도 할 것이고 가엾은 이웃의 모습일 수도 있다. 갑자기 K형 생각이 난다. 늘 부지런하고 낙천적이고 잔꾀 부릴 줄 모르는 분인데도, 평생 몸과 마음을 바친 노동의 대가는 널린 부채 뿐이다. 세상사를 눈치 좋게 경영하지 못한 그의 실책을 탓하여야 하겠으나, 내겐 그의 콩대 위에 들이닥친 비바람이 더 야속하다. 가진 것이 없는 이가 곧이곧대로 살면서 제대로 돈을 벌기엔 너무 힘겨운 나라이다. 정치가 그 심술바람에 역성을 들 것인가, 그걸 덜어줄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은, 저 시골집의 생사를 판가름 내는 일이 아닌가.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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