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연기자
송명견 동덕여대 명예교수
[송명견 동덕여대 명예교수]옷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해의 크레타 문명은 풀리지 않는 경이로움이다. 다 알다시피 크레타는 지중해 동부의 에게 해 남쪽 끝에 그냥 떠있는 섬일 뿐이었다. 우리나라 제주도 면적의 4배 남짓한 면적에 인구 50만이 터를 잡고 있다. 서기 1900년 영국의 고고학자 Arther Evans가 섬의 중심부에서 크노소스 궁을 찾아내고, 그 궁전에서 무려 기원전 1500여년 이전의 찬란한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을 때 사람들은 경악했다. 크노소스 궁전은 크기가 다른 수백 개의 방과 완벽한 하수로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특히 벽화와 여러 개의 terracotta(흙을 구어 만든 작은 인형)들은 크레타인들의 의생활 수준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웅변해주고 있었다. 고대 이집트가 세계를 지배하는 찬란한 문화를 이뤄내고 있을 때, 그들의 옷이란 고작 한 장의 천을 몸에 적당히 감아 입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 무렵 크레타인들이 입던 옷은 달랐다. 현재의 유명 스타들이 레드 카펫을 밟을 때나 입고 뽐낼 것 같은 옷을 입었다. 가는 허리에 힙은 꼭 끼이면서 아래로 넓게 퍼지는 종모양(bell shape)의 스커트와, 풍만한 젖가슴을 완전히 노출 시키는 꼭 끼이는 눈부신 상의를 입었다. 상의의 봉제 기술도 그렇지만 스커트는 3개층에서 12개층까지의 층층이 스커트(tiered skirt)로, 고도의 봉제기술로만 가능한 옷이었다. 각 층은 크기와 색, 그리고 주름 같은 바느질 기법을 달리 하면서도 적절한 비례로 완벽한 멋을 만들어 내고 있다.어떤 테라코타는 각층의 주름이 사선으로 중앙에 모이도록 된 것들도 있어서, 고도의 바느질 기술을 보여준다. 스커트 위에 입은 상의도 몸에 꼭 맞도록 재단해 만들어졌으며, 젖가슴 밑에서 떠받쳐 가슴을 더욱 풍만하게 보이도록 했고, 선이나 무늬가 장식되기도 했다. 오늘날처럼 금속 바늘이나 가위 같은 봉제 도구가 발달해 있지 않았을 시대에 어떻게 이렇게 훌륭한 의생활이 가능 했는지 풀리지 않는 신비일 뿐이다. 특별히 눈에 띄는 대목은 뱀이 허리를 감고 있는 듯한 벨트를 여인들이 두르고 있는 점이다. 어떤 학자는 크레타인들이 6~7세가 되면 허리에 금속 벨트를 하고 납 뗌 같은 것으로 고정해 성인이 되어도 12인치를 넘지 못하게 한 것 같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렇게 가는 허리를 뱀이 감고 있는 듯한 퉁퉁한 벨트를 한 테라코타가 대부분이다. 관심을 끄는 것은 살아 꿈틀거리고 있는 뱀을 양손에 쥐고 있는 '뱀의 여신상'이다. 아름다운 옷과 완벽한 몸매의 여인의 손에 왜 뱀이 들려 있을까. 물가에서 시작된 고대문명은 습지에 사는 생물들과 생사를 함께 했을 것이다. 그것들 가운데 독이 있는 뱀은 그들의 생명을 빼앗는 무서운 존재이기도 했을 것이다. 뱀은 독이 없어도, 보는 것만으로도 혐오스러운 동물이다. 그러함에도 우리의 민속신앙에서는 퇴치 대상인 동시에 수호신으로 섬겨지기도 했고, 지역에 따라 농사와 재산의 신으로 대접받았는가 하면, 풍요와 다산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고대 크레타인들도 우리처럼 그런 생각을 하며 뱀을 지녔는지 모른다.<ⓒ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