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詩]배용제의 '그녀' 중에서

거리에서 한 여자가 스쳐간다/불현듯 아주 낯익은, 뒤돌아본다/그녀는 나와 상관없는 거리로 멀어진다/도무지 생각나지 않는,/철 지난 외투 주머니에서 발견된 메모지처럼 그녀는//기억의 지느러미를 흔들고 거슬러 오르면/전생의 내 누이,/그보다 몇 겁 전생에서/나는 작은 바위였고 그녀는 귀퉁이로 피어난/들풀이었는지 모른다(......)■ 새벽에 문득 잠이 깨서 네이버에서 옛 메일을 훑어본다. 2년 전에 받았던 알쏭달쏭한 십여통의 편지가 눈에 띈다. 20년 전에 알던 사람이라는 L. 매일같이 오는 메일을 보면서도 그때 나는 무엇엔가 마음이 바빠 그를 주목할 여유가 없었다. 이제야 찬찬히 글들을 읽어본다. 내게 편지를 한 뒤 답장과 관심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러나 응답이 없었기에, 그는 마음이 상한 채 가만히 인연을 다시 접은 것 같다. 내 글을 읽고는 감회를 적기도 하고 자신의 블로그에 방문해주지 않은 것에 대해 섭섭함을 피력하기도 했다. 마지막 편지에는 '이별'이라는 제목으로, 약간 비장한 통보를 하고 있다. 소리없이 피었다 진 달맞이꽃 하나에도, 마음을 흔드는 여운이 있다. 어느 날 그가 추천했던 시인의 블로그에 들러 음악을 실컷 듣고 온다. 창밖은 아직 어둡다.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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