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력제품 시장외면 최악 현실.. 고강도 구조조정
멕 휘트먼 HP 최고경영자<br />
(자료사진 : 블룸버그)
[아시아경제 김영식 기자]2012년 10월3일, 세계적 컴퓨터제조사 휴렛패커드(HP)의 멕 휘트먼 최고경영자(CEO)가 월스트리트의 주요 증권사 애널리스트들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휘트먼 CEO는 “HP의 2013년 순익이 예상치를 밑돌 것이며, 빠른 ‘턴어라운드(실적반등)’을 기대하지 말라”고 대놓고 밝혔다. 이날 HP의 주가는 9년만의 최저치로 급락했다.미국에서 발간되는 경제전문지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는 위기의 ‘HP호’를 구하려 고군분투 중인 휘트먼 CEO에 대해 최근 소개했다. 지난 2011년 9월, HP 이사였던 휘트먼은 11개월만에 불명예 퇴진한 레오 아포테커 전 CEO의 뒤를 이어 ‘구원투수’로 임명됐다. 프린스턴대학과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을 나온 그는 P&G, 베인앤컴퍼니, 하스브로 등을 거쳐 전자상거래기업 이베이의 CEO로 10년간 일하며 비약적으로 성장시킨 경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능력을 인정받는 휘트먼 CEO에게도 HP를 회생시키는 것은 너무 버거운 일이다.한때 미 기업계에서 손꼽히는 ‘블루칩’ 기업이었던 HP는 지금도 여전히 세계 컴퓨터 시장의 최대 거물급 업체지만, 너무 큰 덩치 때문에 멸종 위기를 맞은 공룡처럼 갖가지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HP는 지난해 3분기 세계 최대 컴퓨터제조업체 자리를 중국의 레노버에게 내주는 ‘굴욕’을 맛봤고, 4분기에는 68억5000만달러에 이르는 사상 최악의 손실을 냈다. 2011년 아포테커 전임 CEO 때 인수한 영국 솔루션기업 오토노미에서 회계부정 사실이 발각돼 88억달러의 감손비용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2010년 이후 시가총액은 680억달러나 줄어들었고, 주가는 70%나 떨어졌다.
지금까지 휘트먼 CEO가 맛본 최대의 실패는 지난 2010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 출마에서 패배를 맛본 경험이었다. 14억달러가 넘는 개인재산 중 10분의 1인 1억4300만달러를 선거비용으로 쏟아 부었지만, 선거 과정에서 멕시코 출신 전 가정부로부터 부당해고와 임금체불을 이유로 소송을 당하며 치명타를 입었고 결국 12.3%포인트 득표율 차로 완패했다. 하지만 HP의 CEO가 처한 현실은 더 큰 고난을 예고하고 있다. HP의 가장 중요한 주력제품인 PC와 프린터를 사람들이 더 이상 사지 않는다. 스마트폰·태블릿으로 시장의 흐름이 완전히 바뀐 가운데 HP가 내놓은 제품은 경쟁력을 인정받지 못했고, 주력인 PC를 어떻게 새롭게 내놓느냐는 전략도 실패했다. 위기 타개책으로 실시한 인수합병(M&A) 역시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주가급락과 배당금 감소에 주주들의 압박도 연일 높아지고 있다. 이같은 환경에서는 CEO가 제대로 자신의 경영방침을 밀고나갈 수조차 없었고, HP의 CEO 자리는 불과 2년 반 만에 네 번이나 바뀌었다.업계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시대에 뒤처지고 있는 PC·서버·프린터 등 사업부문에 과감히 ‘메스’를 들이대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지금 HP의 최대 ‘돈줄’이기도 하다. PC사업부문을 정리하고 소프트웨어로 전략을 전환하려 한 아포테커 전임 CEO가 주주와 이사회의 거센 반발에 부딪힌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휘트먼은 일단 PC사업부문의 분사 등을 취소하고 내부 사업구조 개혁·인력감축 등에 나서고 있지만, 상황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전임 CEO들과 달리 HP의 현금자산까지 고갈된 상황에서 M&A란 도박을 더 할 여력도 없고, 능력있는 인재들은 모두 빠져나갔다. 최악의 경우 사업부 분리는 피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업계에서는 HP의 데이터센터 사업부문과 PC·프린터 사업부문이 분리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HP는 일단 향후 수 년간 비용절감을 실시하는 한편 하드웨어와 클라우드 소프트웨어 등 가능한 자원을 모두 동원해 시장에서 통할 만한 높은 보안성을 갖춘 스마트 컴퓨팅 시스템으로 승부한다는 계획이다.휘트먼 CEO가 과연 HP를 살릴 수 있겠느냐는 비관적인 전망은 연일 커지고 있다. 그가 만일 이같은 악조건을 이겨내고 HP를 되살린다면 휘트먼은 GE를 되살린 잭 웰치에 버금가는 미 기업사의 전설로 등극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기적’이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김영식 기자 grad@<ⓒ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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