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촌 장례식장 가보니…'경찰-조직원' 어색한 동거

칠성파·양은이파 조직원 등 첫 날 500~600명 조문…'태평성대라 물의 빚을 일 없다'

[아시아경제 박나영 기자] 5일 오후 서울 송파구 풍납동 현대아산병원 장례식장은 입구부터 검은색 정장을 차려입은 건장한 조직원들과 두 세 명 씩 짝을 이뤄 순찰을 돌고 있는 경찰들로 북적였다. 이 곳 장례식장 2층에는 5일 새벽 숨진 폭력조직 '범서방파'의 두목 김태촌(64)씨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조직원과 경찰, 서로 달갑지 않은 사이였지만 이 날 만큼은 '두 조직'간 어색한 동거가 계속됐다. ◆칠성파·양은이파 조직원 등 첫 날 500~600명 조문김태촌 씨의 빈소 입구에는 검은색 정장을 입은 조직원들 10여명이 2열로 나란히 서 조문객을 맞았다. 장례식장 건물 밖과 1층 로비에는 복장을 착용하고 둘씩 짝지어 다니는 경찰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빈소가 있는 2층 복도에도 짧은 머리의 사복경찰들이 빈소 분위기를 살피며 묘한 긴장감을 연출했다. 빈소가 차려진 지 10시간 가량이 지났지만 조문객들의 줄은 끊이지 않았다. 인근 지하철역과 장례식장을 오가며 운행하는 한 택시기사는 "조문객이 많은지 오후 늦게까지 장례식장 인근 도로를 승용차들이 가득 메웠다"며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온 모양이다"라고 궁금해 했다. 빈소 앞은 엘리베이터 입구부터 기업, 교회, 연예인, 체육 관련 협회 등 생전에 김 씨와 인연을 맺었던 곳에서 온 화환 70여개가 겹겹이 둘러쳐 있었다. 입구에서 대기하던 조직원들은 사진기자가 조문객들을 촬영 하려하자 "신분이 노출된다"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가벼운 실랑이가 있었지만 본인들의 허락 아래 뒷모습을 촬영하는 정도로 마무리 하기도 했다. 빈소를 지키던 한 40대 조직원은 "지금까지 500~600명이 조문을 다녀갔다"며 "칠성파, 양은이파 등 30여개 조직의 조직원들도 다녀갔다"고 귀띔했다. 조문객 중에는 사회에서 만나 그와 절친했다는 야구해설위원 하일성 씨도 눈에 띄었다.
◆"지금은 태평성대라서 싸울 일이 없다"우발 사태를 대비에 장례식장에 배치된 경찰들에 대해 40대 조직원은 "기우"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파(派)가 달라도 기본적인 예의는 있다"며 "장례식장에서 물의를 빚어질 일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우리들이) 20대였다면 험악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지만 이제는 (나도)마흔이 넘었고 세월이 이렇게 흘렀는데 우리가 무슨 일을 벌이겠냐"고 덧붙였다. 김 씨 생전 그를 두목으로 모셨다는 한 조직원은 "(김태촌이) 죽기 전 재단 만들어 학원폭력 예방하고 싶다고 했다"며 "1년간 투병하면서 청소년 범죄예방을 위해 재단을 만들어 사회질서 확립을 위해 힘쓰고 싶다는 말을 많이 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조직원은 김 씨에 대해 "존경하는 분이고 남자로서 짧고 굵은 인생을 살았다"며 심정을 밝혔다. 교회 봉사활동을 하며 김 씨를 처음 만났다는 임희걸(44·광고업)씨는 "나쁜 일을 했더라도 인생 말미에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고 그쪽 길을 걷는 사람들을 계몽하려 한 점도 평가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임 씨는 또 "(김 씨가 봉사활동을 시작한 2005년 이후) 목사님들도 어두운 길을 걷는 사람들을 변화시키려는 모델로서 김 씨를 많이 도왔다"고 말했다. 빈소 앞 화환 중에는 조용기, 이택기 목사의 이름도 보였다. 임씨는 또 "김 씨가 죽기 전 조양은, 이동재 씨와도 자주 연락했다"며 "이젠 사회 어두운 면을 우리 스스로 반성하고 변화시키자는 쪽으로 의기투합했다"고 말했다. ◆80년대 전국 3대 조직, '범서방파' 이끌어김 씨는 80년대 조양은의 '양은이파', 이동재의 'OB파'와 함께 전국 3대 폭력조직이었던 '범서방파'를 이끌었다. 1975년 전남 광주의 폭력조직인 서방파의 행동대장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김 씨는 1977년 서울로 무대를 옮겨 활동했다.그는 인천 뉴송도 호텔 나이트클럽 사장 흉기 폭행사건으로 징역 10년, 1992년 범서방파를 결성한 혐의로 다시 징역 10년을 선고 받는 등 긴 수감생활을 했다. 2007년에는 배우 권상우 씨에게 일본 팬미팅 행사를 강요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유죄를 받았지만 항소 끝에 2심에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또 지난해에는 한 기업인의 의뢰를 받고 모 기업 대표에게 사업투자금 25억원을 돌려 달라고 협박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기도 했다. 김 씨는 갑상샘 치료를 위해 2011년 12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 입원했으며 지난해 3월부터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다 이날 오전 0시 42분쯤 폐혈증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숨졌다. 장례는 4일장으로 치러지며 시신은 8일 전남 광주에서 화장한 뒤 전남 담양 군립묘원에 안장될 예정이다.박나영 기자 bohena@<ⓒ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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