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영식 기자]“샤프가 무너지면 다음은 어디 차례인가.” 세계 가전제품 시장을 주름잡으며 일본의 수출 경제를 반석 위에 올려 놓았던 ‘전자왕국’의 신화는 이제 옛이야기가 됐다. 전자업체들의 몰락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제 시장의 관심은 또 어느 곳이 무너질 것이냐에 쏠렸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은 애플의 시가총액이 6580억달러를 넘고 삼성전자가 1720억달러까지 커졌지만 소니·파나소닉·샤프는 모두 합해도 540억달러 정도에 불과할 뿐이라고 보도했다. 일본 전자업체들의 최전성기 매출 총합이 네덜란드 경제 규모에 맞먹는 총 6000억달러에 이르던 것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다.한 업계 관계자는 “일본 전자업체들이 세계적 흐름에 뒤쳐진 댓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고 말했다. 선두 자리에서 안주한 나머지 세계 시장은 물론 국내 시장 소비자들의 요구를 읽어내는 것조차 실패했다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엔화가치가 상승세를 보이면서 수출경쟁력이 약화되고 유럽 위기 심화에 따른 수요 감소까지 닥친 것도 일본 전자기업들을 위기로 몰아넣었다.전자업계의 부진은 수출 감소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일본 무역적자는 4조4101억엔으로 사상 최대 규모였다. 20일 발표된 8월 수출은 3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고 무역수지 적자도 7541억엔(약 10조7440억원)으로 두 달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이로써 일본의 무역수지는 최근 12개월 동안 9번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일본 최대 TV·디스플레이 제조사인 샤프는 올해로 창사 100주년을 맞았지만 공교롭게도 파산 직전까지 몰리며 설립 이후 최악의 시련을 겪고 있다. 8000명을 감원하는 등 인력감축에도 모자라 직원 봉급과 상여금 등을 큰 폭으로 삭감해야 한다.최근에는 자금 조달통로가 막혀 본사 건물까지 담보로 잡힐 지경에 이르렀다. 샤프의 주거래은행인 미쓰비시UFJ와 미즈호은행은 지난달 31일 오사카의 샤프 본사와 주력 가메야마(龜山) 공장의 토지와 건물에 총 1500억엔(약 2조1500억원) 규모의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샤프 정도의 대기업이면 회사채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도 있고 은행 융자도 신용으로 가능했지만 부채규모가 1조2500억엔이 넘을 정도로 불어나면서 담보 없이는 자금도 대지 못하게 됐다. 주가는 올해 들어 73% 급전직하했다. 4년 연속 적자에 시달리는 소니, 지난해 전례없는 회계부정 파문을 겪은 올림푸스 등 대표적 기업들 역시 손실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정보통신(IT)산업 컨설턴트인 게르하르트 파솔은 “일본 전자기업들의 엔지니어링 능력이나 혁신적인 면이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시대에 맞는 비즈니스 모델로 완전히 재구조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마루야마 야스유키 요미우리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한때 일본 기업들의 경쟁력 원천으로 칭송받던 ‘카이젠(改善, 점진적인 개선으로 혁신을 추구한다는 의미)’과 같은 일본식 경영모델이 한계에 부딪혔다”고 분석했다. 더 가혹한 지적도 나온다. 윌리엄 H. 사이토 IT전문애널리스트는 “샤프, NEC, 파나소닉 등은 모두 똑같은 덪에 걸려 있다”면서 “이들의 기업문화는 오늘날 요구되는 혁신에 걸맞지 않고 새로운 시장이나 제품을 만들어 내지도 못하면서 아시아 신흥시장에서 쉽게 과실을 따는 데만 골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김영식 기자 grad@<ⓒ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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