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나영 기자]재계 총수로선 이례적으로 한화 김승연 회장이 실형을 선고받은 가운데 '화이트칼라범죄'에 대한 처벌강도를 더 높여야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국민 법 감정과 따로 노는 양형을 바로 잡고자 전국 법관들이 머리를 맞댄 자리에서다.31일 부산지방법원 주최로 '제1회 2012년 전국 형사법관포럼'이 열렸다. 전국 38명의 형사담당 법관이 한 자리에 모여 '형사재판에 대한 사회적 평가와 바람직한 형사재판'에 대한 대화가 오갔다.부산지법 박형준 부장판사가 ▲성범죄 ▲기업인, 공무원 등 화이트칼라 범죄 ▲식품범죄 ▲불법 대부업자 ▲음주폭력 등 5개 항목에 대한 양형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을 발표하며 대화의 물꼬를 텄다. 박 부장판사의 발표에 이어 장장 4시간에 걸친 토론이 진행됐다. 서로 마주보고 둘러앉은 법관들은 특히 화이트칼라 범죄와 성범죄의 양형 문제에 관심을 쏟았다. 박 부장판사는 "주요 기업인에 대한 경제범죄의 경우 집행유예의 비율이 상당히 높다"며 "이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사법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소위 10대 재벌그룹의 회장들에 대한 사건에 있어서 대부분 집행유예가 선고됐고, 국민들 사이에 기업인은 징역3년에 집행유예 5년이 '정찰제 판결'이라는 조롱마저 나오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토론이 끝난 후 서울지법 이원범 부장판사는 "과거 재벌 총수들에 대한 양형은 경제 근대화를 겪는 과정에서 발생된 문제들로 설명될 수 있는 부분이 있었지만 이제 그 단계를 넘어섰다"며 "이제는 기업 총수가 저지르는 범행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양형에 고려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고 말했다. 주가조작 등 상당수 경제사범에 대해 집행유예판결이 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도 뒤따랐다. 불공정거래행위는 투자자에게 막대한 손해를 입혀 시장의 근간을 뒤흔드는 범죄임에도 솜방망이 처벌이 이어졌다는 지적이다.성폭력범죄에 대한 양형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법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성범죄에 대한 집행유예 판결 비율은 전년보다 오히려 높아졌다. 법관들은 '피해자와의 합의'를 집행유예의 결정적 사유로 고려하는 것은 극히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대를 나타냈다. 피해자 측과의 합의를 위해 공판기일을 연기할 경우 자칫 피해자 측이 지속적인 합의 종용에 시달리는 추가피해를 야기한다는 우려가 나왔다. 부산지법의 경우 '도가니사건'을 계기로 피해자가 미성년자인 경우, 피해자 본인과 법정대리인이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철저히 확인하는 방안을 시행하고 있다.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온전히 민사절차에만 맡기는 게 바람직한지에 대한 문제제기도 나왔다. 현재 성폭력범죄 피해자에 대한 구조와 지원제도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법원은 법관의 재량에만 맡겨왔던 양형에 일정 제한을 가하기 위해 2007년 4월부터 점차적으로 각 범죄군에 대한 양형기준을 제시해왔다. 이후 양형기준은 법률상 강제력은 없으나 법관들의 자발적 준수로 기대이상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평가와 동시에 법관들이 양형기준이라는 지붕 밑에서 여론과 비판의 비(雨)를 피하고 있다는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이날 부산지법 법원장은 재판결과에 불만을 품은 피고인이 판사를 직접 공격했던 사건을 언급하며 법관들에게 사법부 스스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당부했다. 법원은 올해를 시작으로 향후 매년 전국 각 법원이 돌아가며 형사법관 포럼을 개최해 양형에 대한 법관들의 눈높이를 맞춰나갈 계획이다. 박나영 기자 bohena@<ⓒ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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