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저詩]강은교 '그 담쟁이가 말했다'

나는 담쟁이입니다. 기어오르는 것이 나의 일이지요. 나의 목표는 세상에서 가장 길며 튼튼한 담쟁이 줄기를 이루는 것입니다. 옆 벽에도 담쟁이 동무 잎들이 기어오르고 있었지만 내가 더 길고 아름답습니다. 내 잎들은 부챗살 모양입니다. 오늘도 그 사람이 보러 왔습니다. 나는 힘차게 벽을 기어 올라갔습니다. 그 사람은 한참 동안이나 나를 바라보다가 벽의 어깨를 한 번 쓰다듬고는 떠나갔습니다. 나는 부챗살로 벽을 기어 올라갔습니다. 주홍빛 아침 해가 내 꿈밭 위에서 허리를 펼 때까지. 아아, 세상에서 가장 눈부신 담쟁이 줄기가 될 때까지. 있는 힘을 다해. ■ 당신을 넘어가고 싶어요. 사랑이란 벽이예요, 갈증이예요. 거짓말 하지 마세요. 제발 거짓말 하지 마세요. 당신의 광배(光背)를 향한 그리움. 이 미친 엿보기도 사랑의 일부라고 얘기해주세요. 당신이면 충분했는데, 당신이 보내준 햇살이면 됐는데, 사랑은 그 이상이라고 생각했어요. 미안해요. 당신에다 못을 박은 내 홀드와 스탠스, 아팠죠? 당신 넘어보니, 당신 만한 건 없네요.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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