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희 “생긴 거나 사고하는 게 달라도 그게 나인 거니까”

<div class="blockquote">영화 <화차>의 수은주를 올리는 가장 뜨거운 이름은 김민희다. 살기 위해서, 행복해지고 싶어서 에서 허우적거리는 경선(김민희). 이 가련한 여자는 약혼자 문호(이선균)나 전직 형사 종근(조성하)의 추적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소환된다. 감정을 차곡차곡 쌓을 새 없이 회상의 파편으로 존재하는 김민희는, 그러나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존재감을 가진다. 덕분에 세간에서는 그녀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지만 쉽게 부서질 말의 성찬을 거두고 영화 안으로 들어가면 한 명의 배우가 만들어낸 놀라운 순간들과 만나게 된다. 연민과 공포의 감정을 동시에 자아내는 옹송그린 어깨에서, 일상과 지옥을 오가는 피로한 눈에서 어느덧 훌쩍 넓어진 배우의 스펙트럼이 펼쳐진다. 기절하는 것도 모르고 찍었던 펜션 신은 오랫동안 회자될 것이고, 종종 지적되곤 했던 발성의 핸디캡조차 캐릭터의 육성으로 가져온 다수의 신들은 김민희의 성숙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 것이다. 이제 막 심장이 터질 듯한 전력질주를 마치고 돌아온 김민희와 마주 앉았다.
영화가 공개된 후 지금까지 ‘김민희의 재발견’, ‘제 2의 전도연’ 등 연기에 대한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김민희: 원래 칭찬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갑자기 이렇게 많은 칭찬을 받으니까 어리둥절하고 여러 가지 마음이 생긴다. 너무 칭찬받을 때 생기는 두려움이랄까. 친구한테 받는 칭찬이나 감독님한테 촬영하면서 받는 칭찬과는 느낌이 다르니까. 당연히 기분이 좋은데 그것에 대한 보답을 해드려야 하는 부담감도 생긴다. ‘지옥으로 가는 불수레’를 탈 수밖에 없었던 역의 무게와 다르게 김민희의 몸은 어떤 영화에서보다 가벼워보였다. 차경선이라는 인물을 완전히 장악해서 편하게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있는 것 같았다.김민희: 이번엔 진짜 편했다. 원래 연기할 때 주변 환경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데 감독님도 그렇고, 모든 게 너무 편했다. 그래서 연기도 편하게 할 수 있었는데 그게 다 묻어나오는 것 같다. 싫은 게 있으면 얼굴에 확 티가 나고, 좋으면 또 그걸 감추지 못하는 스타일이다. 감독님도 느끼셨는지 “너는 사람을 참 잘 만나야겠다”고 하시더라. 아무리 역할이 어둡다하더라도 촬영장에 가면 즐거운 마음이 컸다. <H3>“영화할 때는 같이 모여서 뭔가를 만들고 있다는 그 기분이 좋다”</H3>
즐거웠다는 소감이 의외다. 경선은 안타까움과 절망이 뒤섞인 영화의 정서를 만드는 인물인데 ‘캐릭터’에서 ‘나’로 돌아오는 길이 힘들지 않았나보다.김민희: 신기하게도 재미있을 수 있더라. 모든 배우가 스타일이 다 다른데, 나는 배역에 오래 갇혀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타입은 아니다. 빠질 땐 쏙 잘 빠지고, 들어갈 땐 쏙 잘 들어가는 거 같다. (웃음) 펜션 신을 찍을 때도 발목이 퉁퉁 붓고, 너무 힘들어서 기절할 정도였는데 한의원에 침 맞으러 가서는 또 웃고 장난쳤다. 감정이 세고 힘든 신을 찍고 나서 빨리 빠져나올 수 있는 건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걸 다 보여주었고, 결과에 만족했기 때문이다. 아쉬움이 남으면 나도 계속 생각이 나서 못 빠져나오는데 <화차> 같은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다. 자랑이 아니고 (웃음) 스스로 만족을 많이 한 작업이었다. 영화를 본 많은 이들이 펜션에서 피 범벅이 되어서 두려움과 광기 사이를 오가던 경선의 모습을 가장 인상 깊은 장면으로 꼽았다. 변영주 감독이 직접 카메라를 잡고 촬영을 했는데 부담되진 않았나. 김민희: 카메라를 두 대로 간다는 건 굉장한 배려라서 감독님께 우선 고마웠다. 똑같이 연기해도 한 번에 끝나는 게 아닌데 나의 수고를 덜어주는 거니까. 아까는 즐거웠다고 했는데 얘기하다보니까 마냥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웃음) 그 신에 대해서 걱정이 너무 많아서 전날 한숨도 못 잤다. 어떻게 찍힐까, 난 어떻게 해야 되지, 막연한 걱정뿐이었다. 그러다보니까 촬영장에 가서 기분도 안 좋고, 옷까지 벗어야 하니까 불편했다. 리허설 때 감독님께서 “옷 입고 할까” 하시는데 그냥 하자고 했다. 벗은 것에 편안함을 느껴야 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더라. 그렇게 리허설을 하고, 점점 시간이 지나고, 촬영에 집중하다보니까 또 보통의 즐거운 분위기로 돌아가더라. 이렇게도 해볼까, 저렇게도 해볼까 신이 났다. 신이 났다는 건 즐거워서 하하호호 웃었다기보다는 그런 연기를 하는 것 자체가 재미있었다는 거다. 용산역 신도 그렇고 펜션 신도 그렇고 그런 감정 신을 찍고 나서는 내가 표현력이 짧아서 그런지 몰라도 항상 재밌고 즐겁다고 얘기한다. 연기자로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넘어가서 연기를 하는 것에 대해서 성취감이나 쾌감을 느끼는데, 그게 재밌다. 그러면 연기하는 동안에는 내가 어떤 식으로 그 인물을 표현 하고 있는지 의식하지 못하겠다.김민희: <화차>는 특히나 더 그랬다. <모비딕>에서 화장실 신 같은 경우는 계획된 신이었다. 내가 술 취한 걸 여기서 이런 행동으로 표현해서 보여드려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거의 모든 신들이 계획된 게 하나도 없었다. 펜션 신에서도 내가 여기서 이렇게 피를 토하고, 몇 걸음 기어가서 다리를 한 번 바꿔주고... 이런 생각할 틈이 없었다. 그냥 촬영에 들어갈 때는 ‘내 정신을 끄자’ 하고 시작했다. 그러면 어느 순간 내 몸이 연기를 해준 것 같다. 너무 다행인 건 경선 안으로 많이 들어갔고 집중이 잘 됐다는 거다. 그게 안됐으면 옷을 벗고 있는 게 창피했을 거고, 고통스러웠을 텐데 그렇지 않았던 것이 스스로한테 다행이었다. 내가 곧 캐릭터가 되는 집중력은 사실 어느 정도는 타고나는 것일 텐데, 작품을 할수록 그 능력이 향상되기도 하나. 김민희: 내가 얼마만큼의 집중력을 갖고 있는 지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연기를 할 때 편안해지면 확실히 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현장에선 나를 지켜보는 사람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사람들이 편해지면 연기할 때 그 자리를 내가 장악할 수 있고, 그 순간 집중력이 굉장히 강해진다. 나는 상황에서 오는 것들이 많다. 주변이 불편하거나 눈치가 보인다거나 하면 집중하지 못하고. 그래서 이번에 우리 스태프들한테 고마웠다. 연기를 할 때마다 주변 상황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이 불안하지는 않나. 언제, 어떤 상황이 주어질지 배우로서는 예측하기가 힘든데.김민희: 그렇기 때문에 항상 촬영할 때 감독님이나 상대배우 뿐만 아니라 스태프들과도 편해지려고 노력한다. 내가 더 다가가고 늘 같이 있으려고 한다. 혼자서 유난 떨고 있는 것보다는 함께 있는 게 좋다. 점점 영화작업 하면서 우리가 같이 모여서 뭔가를 만들고 있다는 그 기분이 좋다. 슛 들어간다고 거울 한 번 보고 나오는 게 아니라 그냥 밖에 계속 있었다. 내가 나오지 않을 때도 사람들하고 얘기하고 친해지는 게 좋으니까. <H3>“여성적인 느낌의 역할은 <화차>가 처음”</H3>
평소에도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미야베 미유키의 원작 소설은 읽어 보았나.김민희: 출연을 확정하고 감독님이 주셔서 읽어봤다. 시나리오를 먼저 읽고 책을 읽은 건데 재미있었지만 영화와는 느낌이 좀 달랐다. 원작이 더 남성적이라면 영화는 좀 더 감성적이고 여성적으로 느껴졌다. 원작 소설을 읽고 나면 아무 생각 없이 함부로 긁는 카드에 대해서 진지하게 각성하게 된다. (웃음)김민희: 그럼, 카드 값 조심해야 한다. 나는 돈도 잘 못 버는데. (웃음) 그거 진짜 조심해야 된다. 아껴서 잘 써야 되고. 특히 요즘엔 아무것도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다 사치하는 것 같고. 돈 잘 모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서 가끔 지름신이 올 때도 꾹 참는다. 여자들은 다 똑같은 것 같다. (웃음) 경선은 다른 사람들의 기억을 통해 등장한다. 문호처럼 감정을 차근히 쌓아올리는 시간을 갖지 못한다. 어떤 상황에 처한 순간의 모습으로만 등장하는데 그 때 그 때 감정선을 맞춰가는 건 연기적인 테크닉이 필요했을 것 같다. 몰입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부분인데.김민희: 그 부분에서 걱정을 했다. 감독님께 “이게 감정이 연결이 되겠어요? 이렇게 계속 달라지는데?” 그러니까 감독님이 “민희야, 넌 잘하고 있고 그거는 문호랑 종근이가 메워주는 거야.” 그 얘길 듣고는 너무 안심했다. 아, 나는 그 때 감정에만 충실하면 되는구나. 근데 영화를 보니까 정말 그 부분을 문호의 감정과 종근의 추적으로 다 메워진 거 같더라. 과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가 느껴진다. 현장에서 감독이 오케이하면 모니터도 보지 않을 정도였다고 하더라. 김민희: 감독님은 굉장히 고마우신 분이다. 나란 이미지를 좋아해주셨다. 배우로서 표현할 수 있는 기회 주신 거다. 그 기회가 없으면 배우들은 무언가를 갖고 있어도 보여드릴 수도 없는 건데. 남들이 생각하는 이미지가 아닌 “민희 씨는 다른 이미지가 있어”라고 딱 집어서 말씀해주시는 걸 듣고 ‘아, 이 감독님이 날 관찰 하시고, 거기서 다른 걸 찾아내시는구나’ 했다. 나도 몰랐던 느낌 같은 걸 찾아주시는 것에 대해서 처음부터 믿음이 갔고, 작업하면서부턴 신뢰를 넘어서 좋아했다. (웃음) 그런데 질투나게도 나한테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배우한테 그러셨다. 조, 단역 분들까지도 세세하게 챙기시고 어떻게 하면 이 배우의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까 관찰하시더라. 아마 우리 연기자들은 다 감독님 팬일 거다. 감독한테 받는 관심을 배우는 사랑이라고 느끼고, 연기하면서는 그게 필요하니까. 그렇다면 그 이전에 남들이 생각하는 김민희의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 김민희: 나한테 들어오는 시나리오는 딱 정해져 있었다. <뜨거운 것이 좋아>의 아미도 그렇고, <모비딕>의 성효관도 그렇고 자기주장이 강한 이미지? <여배우들>은 좀 덜했지만 어쨌든 거기서도 내가 맡은 역할은 분명히 있었다. 20대의 발랄함과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역할. 화보 촬영 현장에서 거침없이 표현하는 젊은 여배우. ‘왜 항상 자기주장이 강하고 어찌 보면 보이시한 느낌의 역할만 들어오나, 난 다른 건 죽어도 못하겠다’ 했다. 모든 감독님들께서 나를 이런 캐릭터로만 보시니까 이 박힌 이미지를 깨기는 쉽지 않겠다 싶었다. 여성적인 느낌의 역할은 <화차>에서 처음 해보는 것 같다. <H3>“배우가 가진 얼굴, 다 다른 목소리, 발성 그 모든 것이 소중하다”</H3>
또 김민희의 이미지를 떠올릴 때 패션이나 스타일을 빼놓을 수가 없다.김민희: 나한테 스타일은 그냥 기분이다. 항상 드레스업하고 화려한 건 아니다. 평소엔 오늘처럼 그냥 운동화에 스웨터, 거의 꾸미지 않는다. 가끔 멋 내고 싶은 기분이 들거나 특별한 날 기분을 바꾸고 싶을 때 옷장에서 예쁜 옷 꺼내서 입고. 어쨌든 옷을 입는다는 건 편한 게 제일 중요한 거니까. 날 좋아해주시는 분들도 나의 항상 헝클어져 있는 머리, 메이크업 안 한 얼굴 그런 것 때문인 것 같다. 가끔씩 멋 부리고 화보를 찍을 때 꾸며진 모습도 원래 안 꾸민 모습이 있어서 좋아해주시는 것 아닐까. 자연스러운 게 장점인 것 같다. (웃음) 여배우는 연기 외에 얼굴이나 스타일 혹은 살이 찌고, 빠지는 것 같은 외형적인 요소에 대해서도 늘 품평을 당한다. 그런 외부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느낄 때가 있나. 김민희: 나의 외모가 뛰어나다고 생각하거나 나르시즘에 빠진 건 아니지만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이 좋다. 꾸미지 않은 걸 좋아하는 것도 그래서고, 그래서 내 얼굴을 분석하기보다는 그냥 좋아한다. (웃음) 자신에 대한 그런 긍정이 데뷔 초부터 가능했나. 어린 나이에 연예계에 입문한 경우에는 마냥 자신을 긍정하기가 쉽지 않다. 언제든 주변에서 자신을 흔들려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김민희: 나도 처음부턴 그렇지 못했다. 갓 데뷔했을 때는 부러운 것도 많고, 나는 왜 이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그게 그냥 나란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금방 괜찮아졌다. 모든 사람이 A를 좋아하는데 나는 B가 좋을 수 있고, 그 B를 혼자 좋아하는 사람이 나인 거고. 그래서 나는 내 눈에 좋아 보이면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구하지 않는다. 대게 여자들은 쇼핑을 하러 가도 같이 간 사람들 의견을 많이 묻고 그러다보면 친구들이 다 비슷한 옷을 사곤 하는데 (웃음) 나는 내가 좋으면 그냥 사버린다. 다 일률적이고, 똑같은 것보다는 생긴 거나 사고하는 게 좀 달라도 그게 나인 거니까. 스스로 자신을 인정하는 것과 별개로 연기하면서 남들이 내리는 평가에 영향을 받기도 하나.김민희: 그런 것에 얽매이지 않는다. 옛날엔 그런 얘기도 들었다. 말이 느리고 말투가 좀 어눌하다 보니까 편한 사이에 있는 어떤 분이 “너는 말을 왜 그렇게 하냐”고 하시길래 “저도 연기하면 말 빠르거든요!” 하고 받아쳤다. (웃음) 내 얼굴에 대해 말한 것처럼 배우 하나하나가 가진 얼굴, 다 다른 목소리, 발성 그 모든 것이 소중한 것 같다. 우리나라 여배우들이 다 똑같이 발성 좋고 발음 전달이 다 잘되고 다 비슷한 목소리면 재미없지 않나. 얼굴도 그렇고. 어떤 방식이 나쁘고 잘못됐다는 건 없는 것 같다. 예쁘지 않은 것도 없고. 그렇기 때문에 내 스스로에게도 만족할 수 있는 거고. 그 사람의 고유한 것이 진짜 아름다움인 것 같다. 배우들은 특히 더 그런 것 같고. 우리가 좋아하는 배우들을 보면 다들 특별하다. 발성도 다 다르고 독특하고, 자신의 특성이 있고 그게 점점 쌓여서 그 배우를 표현해주는 것 같다. 그래서 어느 순간 발성에 대한 불안감이 없어졌다. 이건 내 것이고, 계속 이렇게 보여주다 보면 나란 배우는 이런 배우라는 걸 언젠가는 알아주시지 않을까. <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0 아시아 글. 이지혜 seven@10 아시아 사진. 채기원 ten@<ⓒ즐거움의 공장 "10 아시아" (10.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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