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한나의 캐디편지] '제가 술꾼이라고요?'

몇 해전 이맘때입니다.저희 팀원들과 연말에 회식도 하고 송년회에 신년회까지 겹쳤죠. 그때만 해도 20대인 저는 음주가무를 조금은(?) 즐겼던 탓에 저녁 시간 주량을 넘어선 음주를 하고 바로 다음날 일찍 근무를 하게 됐습니다. 오전에 출근을 하니 온 몸에서 여전히 술 냄새가 심하게 나는 듯 했습니다. 동료 캐디에게 물었습니다. "나 술 냄새 많이 나는 거 같은데 어쩌지?"그러자 동료 캐디가 "아침에 너무 추워서 정종 한잔 마시고 나왔다고 말씀드려"라고 핑계거리를 만들어줬습니다.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게 나눈 대화가 결국은 화근이 됐습니다. 고객을 만나 인사하고 다 같이 카트에 앉는 순간 고객님이 "술을 도대체 얼마나 많이 마신거야, 술 냄새나서 못 살겠네"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저는 그 순간 뜨끔해서 "고객님, 아침에 너무 추워서 정종 한잔 마시고 나왔어요. 죄송해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고객께서는 깜짝 놀라시더니 "아니 김사장 술 냄새 난다고 얘기한 건데?"라고 하십니다.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가만히나 있지 왜 쓸데없는 말은 꺼냈을까요. 그 다음이 더 큰 문제입니다. 고객께서는 "언니가 술꾼인가보네"라면서 그늘집에서 음료수 대신 정종을 들고 나옵니다. 그리고 자신이 회원인 골프장에 가면 담당 캐디가 과음한 다음날에는 직접 카트 운전도 하고 클럽도 챙긴다는 말씀도 곁들였습니다.시간이 흐르자 아예 "피곤하면 카트에서 한 숨 자라"는 농담도 나옵니다. 너무 창피해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언니는 아침부터 정종 마시는 진정한 술꾼"이라며 18홀 내내 정종을 권하던, 친구같이 편했던 고객과의 라운드. 해마다 겨울이 오고 정종만 보면 생각나는 아련한 추억입니다.스카이72 캐디 goldhanna@hanmail.net<ⓒ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골프팀 손은정 기자 ejson@ⓒ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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