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수요시위 1000번째 기리는 평화비 세워져
[아시아경제 박은희 기자]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에 먼 외국으로 끌려가서 노예가 돼 허무하게 짓밟혔다. 일본 대사는 이 늙은이들이 다 죽기 전에 사죄하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85) 할머니의 1000번째 외침은 이처럼 처절하고 단호했다. 14일 낮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1000번째 수요집회에서 언제나 그랬듯 목청을 높인 김복동 할머니의 눈에 일본대사관은 꼭 철옹성 같았다. 김복동 할머니의 외침이 군중의 탄식과 뒤섞이던 중, 보라색 천에 덮여있던 동상 하나가 모습을 나타냈다. 의자에 다소곳하게 앉은 소녀를 형상화한 '평화비'였다. 평화비를 바라보는 김복동 할머니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영문도 모르고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가던 때, 김복동 할머니도 평화비의 주인공처럼 다소곳한 소녀였다. 박제돼버린 그의 청춘이, 그의 인생이 평화비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듯했다. 1992년 1월8일부터 시작된 수요집회가 20년 가까이 이어져 1000회를 맞았지만 일본의 자세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 이날 모습을 드러낸 평화비는 얼마남지 않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여생과 소망을 이어받아 수요집회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을 다짐하는 망부석이나 다름 없었다. 이날 수요집회에는 유난히 많은 여학생들이 모여들었다. 기자 옆에서 집회를 지켜보던 숙명여고 2학년 엄지현(17)양은 "할머니들이 겪으신 일을 전해들으니 '나영이 사건'이 떠오른다"고 했다. 역시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대사관 앞을 찾았다는 조영권(28ㆍ남)씨는 "오늘 야권 정치인 등 유명하신 분들이 많이 왔는데, 감정적인 호소만 할 것이 아니라 언제까지 무엇을 하겠다는 구체적인 얘기가 나와야 하는 게 아니냐"고 충고했다. 지현양과 같은 소녀였지만 실제 삶은 전혀 달랐고, 이제는 저 평화비에 마음을 묻은 채 몇 번의 '1000번째 수요집회'에 더 참여해야 할 지 모르는 김복동 할머니에게 우리 사회와 정치권이 해 줄 일은 너무도 분명해보였다. 평화비가 불쾌하다는 일본 아닌가. 할머니의 어릴 적 모습 그대로인 평화비는 언제 이뤄질 지 알 수 없는 일본의 사과를 염원하며 이날 내린 부슬비 속에 소리없이 울고 있었다.박은희 기자 lomoreal@<ⓒ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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