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이학주 '메이저리그 입성 화룡점정 찍겠다'(인터뷰)

[안양=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야수에게는 흔히 다섯 가지 항목이 요구된다. 정교한 타격, 파워, 빠른 발, 강한 어깨, 넓은 수비범위. 이른바 5툴(5-Tool)이다. 이학주는 조건을 두루 갖춘 유망주다. 충암고 3학년이던 2008년 3월 일찌감치 시카고 컵스와 계약금 115만 달러에 입단 계약을 맺고 메이저리그 입성을 준비했다. 국내 유격수의 메이저리그 진출은 그가 유일하다. 미국으로 건너간 지 어느덧 3년. 이학주는 아직 꿈의 무대를 밟지 못했다. 그렇다고 성과가 없는 건 아니다. 지난해를 시작으로 2년 연속 올스타 퓨처스게임 명단에 선발됐고 올해 탬파베이 레이스 하이 싱글 A 샬럿 스톤크랩스 내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탬파베이 구단에서 수여하는 ‘마이너리그 최고 수비상’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지난 10월 구단이 발표한 유망주 랭킹에서 이름은 2위까지 치솟았다.이학주를 바라보는 현지 매체들의 눈은 기대에 부풀어 있다. 마이너리그 볼은 “연일 불방망이를 뽐내는 선수”라며 “일반적인 발전 이상을 해낼 것”이라고 앞날을 예견했다. 스카우팅 북도 “발놀림이 좋고 어깨가 강하다. 미래 탬파베이의 주전 유격수로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고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이학주는 청신호를 밝히는 요소를 하나 더 갖췄다. 특유 고집이다. 이는 야구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만 살펴봐도 잘 알 수 있다. 광명 하안북초등학교 2학년이던 1998년 그는 책상 앞에 앉아 연필을 들었다. “반에서 10등 안에 들면 야구하는 걸 허락하마”라고 못을 박은 아버지 이중헌 씨의 조건을 채우기 위해서였다. 이학주는 학교수업이 끝나면 방에 틀어박혀 책과 씨름했다. 집중이 되지 않을 때는 방에 붙어있는 박찬호 브로마이드를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한 달 뒤 아버지는 수업을 마치고 쏜살같이 달려온 아들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10등도 아니고 5등을 했더라고요. 더 이상 반대할 수가 없었죠.”
고집을 엿볼 수 있는 사례는 하나 더 있다. 충암고 3학년이던 2008년 이학주는 교내에서 실시한 영어평가대회에서 동상을 수상했다. 충암고 야구부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당시 아버지 이중헌 씨는 “메이저리그 계약보다 더 믿기지 않는 일”이라며 “미국에 가면 바로 원어민 실력이 될 것 같다”고 흐뭇해했다. 4년이 흘렀지만 황소와 같은 고집은 여전하다. 이학주는 “내년 메이저리그 입성이라는 목표에 반드시 화룡점정을 찍겠다”라고 밝혔다. 고대하는 꿈은 과연 이뤄질 수 있을까. 이학주와의 솔직한 인터뷰를 통해 그 가능성을 점검해봤다. 다음은 이학주와의 일문일답스포츠투데이(이하 스투) 메이저리그에 도전한지 3년이 흘렀다.이학주(이하 이) 지난해보단 편안한 마음으로 한국에 돌아왔다. 현재 푹 쉬며 몸을 만들고 있다.스투 올 시즌을 탬파베이 레이스 산하 하이 싱글 A 샬럿 스톤크랩스에서 시작했다. 97경기에서 타율 3할1푼8리 4홈런 23타점 28도루를 기록했는데. 이 솔직히 더 잘할 수 있었다. 상승곡선을 꾸준하게 그렸는데 8월 이후 체력 면에서 다소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겨울 한국에서 너무 열심히 준비했던 것이 독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내년에는 시작과 끝에서 모두 웃고 싶다. 스투 올해 가장 큰 아쉬움이 있다면. 이 8월 10일 승격한 더블 A 몽고메리 비스킷스에서의 부진이다. 스투 24경기에서 타율 1할9푼 1홈런 7타점의 다소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는데. 이 처음 3경기까지는 괜찮았다. 문제를 보인 건 그 다음부터였다. 방망이를 제대로 돌릴 수가 없었다. 체력이 떨어져 힘을 싣는데 적잖게 애를 먹었다. 몸이 자꾸 앞으로 쏠려 변화구를 대처하는데 서툴렀던 것 같다. 개인적인 욕심도 너무 컸고. 하이 싱글 A에서 올 시즌을 시작할 때 더블 A로 빨리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결과가 생각보다 좋지 않아 안타깝다. 물론 흔들릴 정도는 아니다. 조금만 더 힘을 발휘하면 메이저리그 입성이라는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스투 시즌 중반까지만 해도 메이저리그 승격을 점치는 관계자들이 많았는데. 이 솔직히 기대하지 않았다. 스스로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모든 선수들이 메이저리그를 꿈꾸고 그곳에서 잘하고 싶어 한다. 그렇게 되려면 부진한 성적이 아닌 좋은 평가를 받으며 메이저리그를 올라가야 한다. 한 번 올라갈 때 자리를 잡아놓아야 하니까. 그 시점을 내년으로 내다보고 있다. 반드시 좋은 성적을 남겨 기회를 만들겠다. 스투 하이 싱글 A와 더블 A의 리그 실력 차가 크다고 느꼈나.이 그렇지 않다. 타자, 투수 모두 수준이 비슷했다. 결국은 생각의 차이인 듯 하다. 한 단계 높은 무대에 올랐다는 관념이 압박으로 느껴질 수 있는 것 같다. 스투 무엇보다 투수들의 기량이 적잖게 다를 것 같은데. 이 더블 A 투수들의 변화구 구사 비율이 20%가량 높았던 것 같다. 공 끝의 움직임도 더 날카로웠고. 싱글 A에서 쉽게 때렸던 변화구를 더블 A에서 공략하지 못할 때가 여러 번 있었다. 스투 탬파베이 소속으로 뛴 첫 해였다. 코치진과의 소통에 문제가 없었나.이 이적 뒤 처음 훈련을 하는데 아무도 조언을 해주지 않아 답답했다. 그런데 그 찰나에 아지 티몬스 타격코치가 다가와 말을 건넸다. 스스로 깨우쳐보라고. 그는 이곳은 다른 사람이 눈을 뜨게 해주는 곳이 아니니 스스로 부딪혀보라고 했다. 그 말은 들은 뒤부터 스윙 한 번에 많이 신경을 기울였다. 시즌을 마치고 나니 티몬스 코치의 조언이 많이 떠올랐다. 그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의 말보다 스스로를 믿고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지도자다. 내가 타격 부진에 시달릴 때 어떻게 극복하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 시즌을 마쳤을 때 잘했다며 칭찬해줬는데 내가 생각보다 그의 교육 방침을 잘 따라간 것 같아 흐뭇하다.
스투 티몬스 코치는 현역시절 일본 주니치 드래곤스에서 이종범(KIA)과 함께 뛰었다. 이 그 때문인지 한국 출신 선수들을 무척 좋아했다. 나와 (강)경덕이 형에게 매일 장난을 치며 많은 신경을 써줬다. 그는 그라운드에서 이종범 선배의 얘기를 매일 같이 꺼냈다. 일본에서 정말 잘했던 친구였다며 한국에서 정말 전설적인 선수로 통하느냐고 여러 차례 물어봤다. 스투 티몬스 코치가 시즌을 마치고 해준 조언이 있다면. 이 더블 A에서 남긴 성적이 별로인 것 같아 마음이 불안하다고 토로한 적이 있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내년에는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어깨를 두들겨줬다. 그게 전부다. 스투 지난 10월 탬파베이 구단이 발표한 유망주 랭킹에서 2위로 한 계단를 상승했다. 이 내가 잘해서 오른 게 아니다. 선두를 달리던 외야수 데스먼드 제닝스가 메이저리그로 올라가며 후보에서 빠졌다. 3개월 이상을 메이저리그에서 보내면 후보에서 자동으로 제외된다. 알고 보면 난 제자리걸음을 반복했다. 스투 올 시즌 성과가 없다고 여기는 건 지나친 겸손이다. 한 가지를 꼽는다면. 이 더블 A에서 보인 수비가 괜찮았던 것 같다. 타격 부진으로 수비에서라도 좋은 인상을 남기려고 했던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 사실 방망이가 좋지 않을 때 ‘더블 A에 내가 어떻게 올라왔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고민을 거듭해도 특별한 해결책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남들보다 한 발 더 뛰고 경기에 집중하는 것만이 답이었다. 스투 많은 관계자들이 189cm의 큰 키와 마른 체형을 두고 유격수보다 외야수가 더 어울린다고 말한다. 유격수를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 고집까진 아니다. 그냥 가장 잘 맞는 옷인 것 같다. 스투 유격수 포지션과의 첫 인연이 궁금하다. 이 양천중 2학년 때까지만 해도 투수와 외야수를 담당했다. 3학년에 오를 무렵 유격수 위치에서 다이빙 캐치를 하며 장난친 적이 있었는데 김병효 감독이 한 번 맡아보겠냐며 기회를 줬다. 그게 내야 수비를 맡게 된 계기가 됐다. 아버지는 투수나 외야수로 성장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하나라도 더 익히고 싶었고 이내 유격수가 잘 어울리는 포지션이란 걸 깨닫게 됐다.
스투 자신의 어떤 점이 유격수와 어울린다고 생각하나. 이 빠른 발과 강한 어깨다. 두 가지 장점이 있어 다른 유격수들이 놓치는 타구까지 잡아낼 수 있는 것 같다. 물론 이 때문에 실책을 많이 기록하지만(웃음). 정확한 송구능력만 더해진다면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스투 올해 탬파베이 구단에서 수여하는 ‘마이너리그 최고 수비상’의 주인공이 됐다. 샬럿 스톤크랩스 최우수선수(MVP)에도 함께 선정됐고. 이 실책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장면들이 인정을 받은 것 같다. 아까도 언급했지만 에러를 많이 저지르는 편이다. 보완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유격수들이 백핸드로 잡고 던지지 않는 타구를 항상 1루로 던지는 까닭이다. 동작을 간결하게 하기 위해 빨리 움직이다보니 그간 실수를 적잖게 저질렀다. 적극적인 수비 자세를 후회한 적은 없다. 실책을 18개로 지난 시즌(34개)보다 절반 가까이 줄였다. 수치는 규정타석을 채운 싱글 A 전체 유격수 가운데 두 번째로 적었고. 실수를 거의 저지르지 않을 때까지 동작을 계속 보완해나갈 계획이다. 스투 시카고 컵스에서 탬파베이로 이적한 점도 수비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것 같은데. 이 그렇다. 시카고에선 타격 연습을 많이 시켰다. 템파베이는 기본기를 중시하는 분위기고. 스프링캠프에서 코치들이 수비 훈련을 많이 요구했다. 확실히 방망이를 잡는 횟수가 이전보다 적었던 것 같다. 뒤돌아보면 많은 걸 배울 수 있던 시간이었다. 스투 코치들이 어떤 조언을 가장 많이 해주었나. 이 편안하게 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특히 야수 코치들이 몸이 아무리 날렵해도 서두르면 실책을 저지를 수밖에 없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래서 발 빠른 타자나 주자가 나와도 차분하게 상황을 풀어가려고 노력했다.스투 시카고에서 이대은과 함께 생활했다. 탬파베이로 떠나는 발걸음이 무거웠을 것 같은데. 이 이적 소식이 전해진 뒤 전화가 걸려올 줄 알았는데 안 오더라. 이해했다. 그간 휴대폰으로 전화를 거는 모습을 보지 못했으니까. 걸려오는 전화만 받는 형이다(웃음).
스투 그래서 직접 전화를 걸었나. 이 그렇다. 처지가 비슷하다보니 서로 위로를 많이 해줬다. 대은이 형이 탬파베이에 가서 꼭 성공하라고 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조금만 더 고생해서 메이저리그에서 만나자고 했다. 미국에서 슬플 때나 힘들 때 늘 함께 했던 형이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성민규 시카고 코치님과 셋이 함께 살았는데 대은이 형은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마치고 재활을 하던 중이었다. 나 역시 같은 수술을 받은 상태라서 뭔가 통하는 게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첫 만남에서 눈을 마주치기 어려울 만큼의 강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함께 재활훈련을 한 뒤에야 겨우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대은이 형은 참 좋은 선배다. 그간 한 번도 다툰 적이 없었다. 그만큼 배려심이 남다르다. 성 코치님은 그런 우리를 아들처럼 대해줬다. 낯선 미국 땅에서 외로움을 견딜 수 있던 이유다. 처음 이적 소식을 접했을 때 그들과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아쉬웠는지 모른다. 스투 탬파베이 이적 뒤 이대은과 한 차례 맞대결을 벌였는데. 이 대은이 형이 선발로 등판한 경기에 1번 유격수로 출전한 적이 있다. 전날 대은이 형은 호텔로 찾아와 몸 쪽으로 직구를 하나 던져주겠다고 했다. 기대를 하고 타석에 섰는데 초구에 이상한 체인지업이 들어왔다. 당황스런 표정으로 마운드를 바라보니 대은이형은 글러브로 얼굴을 가린 채 웃고 있었다. 그래서 바로 체인지업을 노렸더니 이번에는 몸 쪽으로 직구가 들어왔다. 타이밍을 완전히 빼앗긴 나는 결국 삼진을 물러났다. 그래도 억울하진 않다. 다음 타석에서 희생플라이를 쳐 3루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였으니까(웃음). 스투 현재 소속 팀인 더블 A 비스킷스의 홈구장은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에 위치해 있다. 이 처음 도시를 방문하고 깜짝 놀랐다. 야구장에서 용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백인을 한 명도 구경할 수 없었다. 이는 다운타운을 나가도 마찬가지였다. 알고 보니 몽고메리는 흑인들이 주로 모여 사는 도시였다. 처음 만난 구단 관계자가 조심하라며 주의를 줬다. 늦은 저녁은 위험할 수 있으니 바깥출입을 삼가라고. 마약 복용자일 수 있으니 모르는 사람과도 함부로 대화를 나누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경기를 마치면 늘 일찍 귀가했다. 오후 10시가 지나면 아예 바깥을 나가지 않았다. 관계자의 말을 실행에 옮길 수밖에 없었다. 내가 오기 2주 전 빌 모로니 투수코치가 총상을 당했기 때문이다.스투 어떤 사고였는지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 이 모로니 코치가 내게 직접 말해줬다. 경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흑인 2명이 불쑥 나타나 돈을 요구했다더라. 모로니 코치는 돈이 없다고 말한 뒤 자가용의 문을 닫으려고 했는데 그 순간 ‘빵’ 소리와 함께 흑인들이 권총을 쐈다고 했다. 결국 모로니 코치는 무릎에 총상을 입었고 며칠간 병원 신세를 졌다. 섬뜩한 사례 탓에 몽고메리에서 많은 추억을 만들지 못했다. 집과 야구장을 오고가는 게 일상의 전부였다.
스투 몽고메리 인근에는 현대, KIA 자동차 미국 생산 공장이 위치해 있다. 당신을 응원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는 한국인이 적잖게 있었을 것 같은데.이 공장이 경기장에서 차로 1시간 반가량 떨어져 있다. 다소 거리가 먼 탓인지 찾아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올 시즌 응원하러 온 한국인을 다섯 번 정도 봤다. 한 명만 찾아와줘도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른다. 그들에게 꼭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스투 그간 경험한 탬파베이와 시카고는 어떻게 달랐나. 이 탬파베이는 성적이 좋은 팀다웠다. 비록 마이너리그였지만 시즌 내내 좋은 분위기를 유지했다. 가장 큰 차이는 코치들의 훈련방식인 것 같다. 시카고 코치들은 같은 출신 선수에게만 신경을 기울였다. 남미 출신 코치들은 남미 선수들만 가르치고 미국 출신들은 미국 선수들만 쳐다보는 식이다. 나 같은 한국인을 상대해주는 일은 거의 드물었다. 그래서 성민규 코치님이 중간에서 고생을 많이 했다. 대은이 형이나 내게 기술을 전수해주지 않아 코치들에게 화를 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솔직히 탬파베이로 건너갈 때 걱정을 많이 했다. 시카고에서는 성민규 코치님이라도 계셨는데 그곳에는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던 까닭이다. 그런데 기우였다. 모든 코치들이 내게 관심을 갖고 잘 가르쳐줬다. ‘왜 이렇게 잘해주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시즌이 끝날 무렵 걱정을 하던 성 코치님에게 전화를 걸어 농담으로 말했다. “코치님보다 다들 잘해주시는데요”라고(웃음).스투 성민규 코치에 대한 그리움이 짙은 것 같다. 이 미국에서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으니까. 힘들 때마다 성 코치님은 항상 힘이 돼줬다. 미국 진출을 선언하고 가장 잘한 일은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빨리 받은 것이다. 이는 성 코치님 덕이었다. 팔이 아프다는 걸 알고 바로 수술할 것을 권유했다. 당시 나는 싫다며 완강하게 버텼다. 하지만 여권까지 빼앗겨 어쩔 수 없이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결과적으로 일찍 받은 수술은 약이 됐다. 야구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성 코치님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아마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투 지금도 연락을 자주 주고받나.이 물론이다. 항상 “잘하고 있어. 더 잘하려고 하지 말고 지금처럼만 해”라고 말한다. 솔직히 너무 고맙다. 이제는 다른 구단 선수인데도 매일 개인 기록을 체크해준다. 가령 삼진을 당하면 그날 저녁 어김없이 전화가 걸려온다. 바로 문제점을 지적해주는데 너무 정확해서 가끔은 무섭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만큼 나에 대해 잘 아는 분이다.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꼭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고 싶다.
스투 탬파베이에서는 누구와 자주 어울리나. 이 2루수를 보는 타일러 볼트닉과 친하게 지낸다. 하이 싱글 A에서부터 함께 뛰었는데 가장 대화를 많이 나눈다. 탬파베이로 팀을 옮긴 뒤 가장 먼저 말을 건넨 선수도 그였다.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함께 내야를 잘 지켜보자고 했다. 볼트닉은 조만간 메이저리그로 승격될 것 같다. 실력이 무척 좋다. 원정경기에서 함께 방을 쓰는 (강)경덕이 형도 빼놓을 수 없다. 첫 인상은 다소 무서웠는데 알고 보니 무척 착한 선배였다. 시카고를 떠날 때 혼자라는 생각에 걱정이 많았는데 막상 부딪혀보니 오히려 지금이 더 편한 것 같다. 스투 9월 27일 트로피카나 필드에서 두 개의 상을 받을 때 조 매든 탬파베이 감독이 무슨 이야기를 해주던가. 이 수상을 축하한다며 열심히 해서 꼭 트로피카나 필드에서 보자고 했다. 나는 고맙다라고 했고(웃음). 시상식 전 아버지가 “See you next year(내년에 보자)”라는 말을 꼭 하라고 했는데 경황이 없어 그만 잊고 말았다. 그게 너무 아쉽다. 스투 최근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몸을 단련하고 있는데.이 본격적인 운동은 12월 중순부터 시작할 계획이다. 모교인 충암고나 양천중을 찾아 배트를 휘두를 생각이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미국으로 일찍 건너갈 수도 있고.스투 충암고 후배인 문성현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함께 소화하고 있다. 선배로써 따로 조언을 해주나.이 오히려 받아야 할 입장인 것 같다. 넥센에서 주축 투수로 활약하고 있으니까(웃음). 미국에서 한국야구를 하이라이트를 통해 자주 보는데 실력이 부쩍 늘었더라. 몸만 상하지 않으면 더 좋은 투수로 거듭날 것 같다. (잠시 말을 멈춘 뒤)시간이 참 빨리 흐르는 것 같다. 고교 시절 성현이에게 마사지를 받던 게 어제 같은데(웃음).
스투 고교시절 함께 뛰었던 안치홍(KIA), 오지환(LG), 김상수(삼성) 등은 프로무대에서 자리를 잡았다. 그들을 보며 미국 진출을 후회한 적은 없나. 이 1, 2년 전만 해도 있었다. 타지에서 야구를 하는 게 너무 힘들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어느 정도 미국야구에 적응이 됐다. 치홍이나 상수, 지환이의 활약은 충분히 내게 자극을 준다. 아버지와 거실에 앉아 프로야구 시청을 하는 자리가 눈치 보일 정도다. 보이지 않는 침묵 속에 내가 “아빠, 조금만 기다려줘요”라고 말하면 아버지는 늘 같은 말씀을 하신다. “그런 놈이 지금 한가롭게 TV나 보고 있냐”라고.스투 상대해보고 싶은 한국 프로야구 투수가 있다면. 이 오승환(삼성) 선배의 공을 때려보고 싶다. 볼이 정말 죽이더라. 직구로 윽박지르는데 공이 끝에서 떠오르니까 타자들이 알고도 못 치는 것 같다. 스투 본인이 오승환과 상대한다면 어떻게 대처할 것 같나.이 시선을 조금 위에 두고 타격할 것 같다. 올라오는 타이밍에 배트를 내리찍듯 휘두르면 승산이 조금 있을 것 같다. 꼭 한 번 대결해보고 싶다. 메이저리그에서 오승환 선배와 같은 공은 본 적이 없다.스투 오승환 외에 메이저리그에 진출해도 성공할 것 같은 선수들을 꼽는다면. 이 윤석민(KIA) 선배다. 준 플레이오프에서 던지는 걸 보며 타고난 승부사라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슬라이더가 예술이더라. 왼손 타자가 알고도 치지 못할 만큼 각이 예리했다. 정대현 선배도 충분히 메이저리그 타자들을 제압할 것 같다. 볼이 무척 지저분하더라. 투구 폼까지 예사롭지 않아 충분히 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대호 선배도 빼놓을 수 없다. 거포인데 맞추는 능력이 상당해보였다. 메이저리그와 같이 직구 승부를 많이 펼치는 곳이라면 충분히 20개 이상의 홈런을 칠 수 있을 것 같다.
스투 메이저리그 입성을 노리고 있는 본인은 어떠한가. 이 처음 미국에 진출할 때 메이저리그 승격까지 3년을 내다봤다. 그런데 어느덧 4년차를 앞두고 있다. 아직 무대를 밟진 못했지만 그간 많은 경험을 쌓았다. 얻은 교훈도 많고. 애초 생각했던 계산은 어긋났지만 대략 잘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메이저리그 도전을 후회하지 않는다. 나 자신이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스투 미국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한 것 같다. 이 최근 한국으로 돌아와 만났던 사람들이 모두 비슷한 말을 해줬다. 사람이 되어서 돌아왔다고. 미국에 진출한 지 2년이 지났을 때만 해도 무척 힘들었다. 늘 외로웠던 것 같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많이 울기도 했다. 그걸 참고 이겨냈더니 성격이 자연스럽게 변한 것 같다. 이제는 부모님도 비슷한 말을 해주신다. 어른이 됐다고. 그런 칭찬을 들을 때마다 무척 뿌듯하다. 스투 가장 많이 변한 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이 미국 진출 전까지만 해도 나만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다른 사람들을 챙길 줄 아는 성숙한 사고가 생긴 것 같다. 부쩍 늘어난 야구실력도 빼놓을 수 없다. 혼자 지내는데다 주위 환경이 낯설다보니 모든 스트레스를 야구로만 풀어야 했다. 매 훈련 때마다 집중력을 발휘한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스투 야구인생에서 내년이 가장 중요한 시점이 될 것 같다. 이 나 역시 같은 생각이다. 그래서 배트를 여느 때보다 일찍 잡을 생각이다. 매 시즌이 중요하겠지만 내년에 승격되지 못하면 마이너리그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날 것 같다. 그래서 내년은 내게 위기이자 기회다. 스투 메이저리그에 입성하려면 2008년 전체 1순위로 탬파베이에 입단한 팀 베컴을 넘어서야 하는데.이 솔직히 베컴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의 실력을 잘 알고 있다. 최고대우를 받으며 입단했지만 내가 더 잘할 수 있다고 믿는다. 사실 내가 넘어서야 할 선수는 그가 아닌 리드 브리그낙이다. 올 시즌 타율이 1할9푼3리에 그쳤지만 수비 하나로 주전 유격수 자리를 지켰다. 그래서 일부 선수들에게 ‘매든 감독의 아들’이라고 불리지만. 차분하게 시즌을 준비해 정정당당하게만 맞붙는다면 충분히 두 선수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스투 이전 인터뷰에서 메이저리그 승격의 관건으로 체인지업 공략을 꼽았다. 보완이 잘 이뤄지고 있나. 이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 더 노력해야 한다. 하이 싱글 A와 더블 A의 가장 큰 차이를 투수들의 코너웍이라고 생각한다. 무대가 업그레이드될수록 볼 끝 움직임이 좋은 투수들을 많이 만난다. 이번 겨울 이 점을 집중적으로 보완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다. 스투 빠른 공에 대한 공략은 어떠한가. 이 어떤 공이 날아와도 쳐낼 수 있다. 마이너리그에서는 시속 100마일 이상을 던지는 투수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제는 적응이 돼 102마일의 직구도 무난하게 때려낸다. 스투 롤 모델에 가까운 유격수가 여전히 호세 레이예스(뉴욕 메츠)인가.이 그렇다. 데릭 지터(뉴욕 양키스)처럼 편안하게 경기를 운영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수비, 타격 면 등을 고려하면 아직은 레이예스와 같은 유형이 가장 어울리는 것 같다. 스투 올해 2년 연속 마이너리그 올스타 퓨처스게임 월드 팀에 선정됐다. 이 유망주로만 머무는 것 같아 솔직히 썩 기분이 좋진 않았다. (추)신수 형도 그랬다더라. 퓨처스게임에 세 번째 출전할 때 무척 더러운 기분을 느꼈다고. 내년에도 라인업에 선발되면 3년 연속이 된다. 꼭 퓨처스게임이 아닌 메이저리그에서 기량을 펼쳐보고 싶다. 스투 시카고에서 함께 경쟁했던 스탈린 카스트로가 2년 연속 3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하며 메이저리그에서 자리를 잡았다.이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신형을 끌고 마이너리그로 놀러온 적이 있는데 목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웃음). 함께 게으름을 피우다 코치들에게 걸려 혼났을 때가 어제 같은데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 여전히 그와 친하게 지내고 있다. 좋은 실력을 갖춘 만큼 잘 풀린 것 같아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흐뭇하다. 페이스 북을 통해 연락을 해오는데 일부러 답장을 해주지 않고 있다. 메이저리그에 올라가면 해줄까 생각하고 있다(웃음).
스투 이전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 나가지 못하면 그만둘 생각으로 하라”고 밝힌 적이 있다. 이 그렇게 이야기한 적이 없다. 당시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태극마크를 달고 싶으면 죽을 각오로 하라고 했다”라고 말했는데 내용이 과장돼 보도됐다. 그걸 보시고 아버지가 얼마나 답답해하셨는지 모른다. 아들이 마치 금메달로 병역 의무를 해결하려는 것처럼 비춰졌으니 그럴 만도 했다. 스투 최근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고교선수들이 다시 늘고 있다. 그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이 자신 있는 선수만 와야 한다. 강한 정신력을 갖춰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니까. 그냥 도전을 할 생각이라면 한국에 남는 것이 낫다. 나는 슈퍼스타가 되고 싶은 꿈을 안고 미국 행 비행기에 올랐다. 아직 메이저리그를 밟진 못했지만 그 꿈을 위해 끊임없이 달릴 것이다. 그런 각오가 되어있다면 충분히 도전할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스투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메이저리그에 입성해야 할 것 같다. 이 물론이다. 내년에는 초반부터 좋은 활약을 펼쳐 꼭 좋은 소식을 들려드리겠다. 남들과의 경쟁을 의식하진 않을 것이다. 맡은 임무만 멋지게 해낸다면 좋은 결과는 자연스럽게 찾아올 것이다. 솔직히 느낌이 좋다. 2012시즌의 처음과 끝에서 모두 웃을 수 있을 것 같다. 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 leemean@스포츠투데이 정재훈 사진기자 roze@<ⓒ아시아경제 & 재밌는 뉴스, 즐거운 하루 "스포츠투데이(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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