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형 국민대 경영학 교수
시위를 이끄는 '리더그룹'도 없고, 뚜렷하게 정해진 목표도 없는, 그리고 구성원의 정치적 지향성이나 불만의 공통점을 찾기도 어려운, 특이한 시위가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시작은 미미했으며 장난스러움까지 담고 있었던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street)' 시위는 3주째에 이른 지난 주말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난달 30일에는 보스턴의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앞에서 '탐욕을 멈추라'는 모토를 내세우며 시위하던 시민들이 체포되었다. 다음 날인 1일에는 뉴욕 경찰이 브루클린 다리 위에서 700명이 넘는 시민을 체포함으로써 시위의 규모나 지속성이 심상치 않음을 보여주었다. 월가로 대표되는 금융권의 지나친 욕심을 규탄하던 소규모 시위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유가폭등 및 불충분한 건강보험제도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슈를 내세우는 대규모 시위로 발전했다.시위는 이제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미 시카고, LA, 시애틀 등에서도 '시카고를 점령하라' 등의 모토를 내세우는 시위대가 몸집을 불리고 있다. 이 지역 외에도 피츠버그, 샌프란시스코 등에서 '함께 점령하라(occupytogether.org)' 사이트를 통해 시위가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CNN에 따르면 이들 시위대는 다양한 인종,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다양한 이슈를 제기하고 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바로 '99%의 미국인은 나머지 1%의 부패와 탐욕을 더 이상은 참지 않겠다'는 것이란다. 부패와 탐욕을 저지르는 1%의 상징으로 미국 월가의 금융계가 지목되고 있다. 정부 재정지출의 수혜 대상이 고액 연봉을 받는 금융권에 집중되고 일반 서민에게는 전혀 미치지 못하는 것에 대한 항의도 밑바탕에 깔려 있다고 한다. '시장경제'에 가장 충실한 나라, 미국에서 이 같은 시위가 확산되는 것은 유럽에서 일어나는 시위와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복지'나 '사회주의를 가미한 자본주의' 등에 초점을 두었던 유럽에 비해 미국은 '시장의 효율성'과 '경쟁'에 더욱 무게중심을 두었고 지금까지 경제 강대국의 지위를 누렸다. 이 때문에 '시장경제를 효과적으로 실현하는 나라'로 평가받았으며 이들의 경제시스템과 규칙은 한때 전 세계의 '기준'으로 등극했다. 미국 시민들은 시장경제의 규칙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그동안 쌓였던 문제점이 한꺼번에 드러나면서 미국 경제시스템의 허점도 더욱 부각되기에 이르렀다. 특히 중산층이 몰락하고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미국에서도 시위가 대규모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효율성을 강조하는 시장경제 논리가 본분을 넘어 남용될 경우 오히려 시장경제를 위협하는 '치명타'가 될 수 있음을 또 한번 입증하는 사례다.이 과정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위력이다. 보스턴에서 시작돼 뉴욕의 월가를 강타하는 이 시위가 뚜렷한 리더나 단체가 없어도 유지되고 확산되는 것은 SNS 덕분이다. '침묵하는 다수'를 '목소리 내는 다수'로 만들어주는 막강한 '수단'이 생긴 것이다. 우리나라 사정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심화되기 시작한 사회 각 분야의 양극화는 이제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최근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경영,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 해소, 청년실업 해소를 위한 일자리 창출 등 기업을 둘러싼 이슈는 심각하고 근본적이다. 기업이 도맡아 해결할 수도, 그래서도 안 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외면해서는 더욱 안 될 상황이다. 기업의 역할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대다. 이은형 국민대 경영학 교수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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