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선아 “캐릭터를 생각하면 손놀림부터 달라지기 시작한다”
<div class="blockquote">김선아는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배우다. 영화 <위대한 유산>의 미영과 MBC <내 이름은 김삼순>의 김삼순, SBS <시티홀> 신미래는 다른 배우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김선아에 의해 완성된 캐릭터였다. 특유의 거침없이 내뱉는 듯한 목소리와 현실과 헷갈릴 정도의 자연스러운 연기는 다른 배우들 사이에서 김선아의 개성을 뚜렷하게 드러냈지만 스스로에겐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주기 힘든 단점이 되기도 했다. 한동안 ‘노처녀’와 코믹 연기의 아이콘이 되기도 했던 김선아가 지난 11일 시한부 인생을 연기한 SBS <여인의 향기>를 마쳤다. 소리치고 화내기보다 끝없이 속으로 감내하며 눈물로 표현된 이연재는 전형적인 이야기 속에서도 현실에 밀착된 캐릭터가 됐고 회사에 사표를 집어 던지고 남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흔한 장면조차 몰입하게 만들었다. 연기 할 때마다 “정말 몰라서” 계속 연기 수업을 받고, “지금처럼 꾸준히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으로 한 단계씩 나아가는 배우 김선아를 만났다.
잠도 못 자면서 <여인의 향기>를 촬영했다고 들었다. 드라마 끝낸 소감이 어떤가.김선아: 끝난 느낌이 전혀 나지 않는다. 사실 시원한 것보다 아쉬움이 더 크다. 처음부터 이동도 많았고 정신없이 촬영을 해서 스태프, 배우들과 회식 한 번 제대로 못 먹고 끝났다. 뭔지 잘 모르겠는데 그냥 조금 더 다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크다. <H3>““나는 지금 7개월 하고 이틀 째 살고 있다”란 말이 소름끼쳐 이 작품을 선택했다”</H3>
시한부 선고를 받았던 이연재는 죽지도, 치유되지도 않은 채 끝났다. 결말은 마음에 드나. 김선아: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예쁘고 좋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사실 결말을 알고 시작했다. <여인의 향기> 자체가 희망을 주자는 절대적인 의지가 있는 작품이었는데 이걸 끝까지 지켜주신 감독님, 작가님이 대단하다. 요즘 특히 드라마는 흔들리지 않고 그렇게 끝까지 가기 어렵지 않은가. 암환자 연기는 색다른 경험이었을 것 같다. 쉽게 경험해 볼 수도 없고 단순히 상상만 해도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김선아: 힘들 거라 예상은 했는데 한 것보다 더 많이 아팠다. 항상 엄마들이 아플 때 가슴 치는 것처럼 가슴 한 구석이 늘 아팠다. 워낙 이연재가 마음부터 몸까지 아픈 게 공존한 캐릭터니까. 1회부터 16회까지 매 신마다 감정신이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방송 전 이연재는 여행사 말단 직원에 노처녀로 소개됐다. 시작할 때 MBC <내 이름은 김삼순>의 김삼순처럼 보일까 부담스럽지는 않았나. 김선아: 사실 대본도 보지 않은 상황에서 “나는 지금 7개월 하고 이틀 째 살고 있다”는 작가님 말을 듣는 순간 소름이 끼쳐 이 작품을 하게 됐다. 모든 사람들이 처음에 “왜 또 노처녀에 ‘뽀글머리’, 안경이냐”라며 걱정했지만 이연재를 표현하기에 꼭 필요한 설정이었다. 이연재는 이미 암 선고 받을 것을 알고 있었고 돈 버느라 시간도 없고, 렌즈 낄 시간에 회사를 가기 때문에 안경을 쓸 수밖에 없다. 부스스한 머리나 비 올 때 뜬 헤어스타일도 암 환자라 함부로 퍼머를 하거나 드라이를 하며 건들지 않았다. 예쁘게 보이고 싶어 중간에 스타일을 바꿀까 생각도 했지만 암 환자 분들은 머리 하나 하나가 다 중요하기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끝을 향해가는 삶을 해쳐 나가는 한 여자 이야기를 다룬 이 드라마와 그 쪽에 초점이 맞춰질 거라 확신한 감독님을 믿었다.
<H3>“‘이연재답게’ 연기하기 위해 모든 디테일을 준비했다”</H3>말했듯이 드라마를 보고 나니 이연재는 이전에 했던 캐릭터와는 많이 달랐다. 소리를 지르기보다 속으로 견디는 인물이었다. 김선아: 이전 캐릭터가 말을 먼저 했다면 이연재는 눈치를 먼저 본다. 처음 시놉시스를 받고 “이 사람은 이렇게 살았을 거야, 행동은 이럴 거야”를 생각하면 손놀림부터 달라지기 시작한다. 보통 그 사람이 되어간다고 하지 않나. 이연재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무도 모르게 뒤에서 화분에 물을 주는 사람이다. 어렸을 땐 채은석(엄기준)이 기억하는 것처럼 밝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언제부터인가 말도 많이 하지 않고 입도 크게 벌리지 않는, 소심한 사람이 된 거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목부터 수그러지고 회사 사람들 앞에서는 주눅 들고 눈치 보며 한 템포 늦게 말을 하는 게 되는 거다. 그런 이연재가 유일하게 바뀐 순간이 아픈 걸 다 잊어버린 오키나와 여행 때다. 그 때는 목소리가 한 톤 높아진다. 그런 디테일 때문에 이연재를 연기하는 게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번 작품에서 ‘김삼순’ 특유의 목소리 톤인 크게 말하면서도 귀여운 듯한 느낌도 많이 나지 않은 것 같다. 김선아: 이연재는 오물조물하며 한 템포 늦게 말하는 말투 때문에 조금 모자란 듯한 느낌이 있다. 처음에 나도 굉장히 답답할 때가 있었다.(웃음) 하지만 예전처럼 했으면 회사에 사표 던질 때의 그 카타르시스는 없었을 거다. 그 장면 연기할 때 대사보다 호흡이 먼저 나왔다. 그 신 찍기 전에 그렇게 크게 말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어서 말을 막 하고 싶은데 그게 안 되니까 자연스레 손까지 떨리는 거다. 나도 그랬는데 이연재는 얼마나 떨렸을까. 십 년 동안 누구 앞에서 큰소리 안 하던 사람이 갑자기 뛰쳐나가서 그런 말을 한 게 쉽지 않았을 거다. 아무리 배우라 해도 그렇게 톤을 바꾸기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김선아: <시티홀>에서 신미래 연기할 때는 오히려 오버하며 말하는 게 굉장히 힘들었다. ‘신미래 자뻑병’이라고도 불렸는데(웃음) 대본을 보면 오버스럽게 말해야 하는데 크게 동작하면서 말하기가 정말 성격과 맞지 않아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 결국 그 때 김은숙 작가님이 현장에 오셔 설명을 해주셨다. 왜 여기서 신미래가 이렇게 말을 하고 조국(차승원) 다음 이런 리액션을 해야 하는지 차근차근 알려주셨다. “이렇게 신미래가 해야 나중에 시장이 됐을 때 자연스럽다”라는 설명을 들으니까 알겠더라. 이연재는 우는 연기나 탱고처럼 말 아닌 것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게 중요한 캐릭터이기도 했다.김선아: 이연재가 화분을 깨고 버킷 리스트를 찢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데 그 장면 찍기 전부터 엄청나게 울었다. 그 신부터 3시간 정도 찍었는데 감독님이 ‘컷’ 신호를 주셔도 계속 울었고 중간에 잠시 기억이 없다.(웃음) 화분을 깨고 어떻게 밖에 나갔는지 기억이 안나서 나중에 스태프에게 물어볼 정도로 울었다.또 탱고는 이연재가 절망의 낭떠러지에 있을 때 구해준 나무 가지 같다고 생각했다. 오키나와에서 임세경(서효림)에게 나쁜 말 듣고 강지욱(이동욱)과도 멀어지고, 잠시 잊었던 병도 되새기면서 절망에 빠졌는데 눈앞에 행복한 노부부가 보이는 거다. 자신은 꿈꿀 수도, 가질 수도 없는 모습을 보고 탱고를 추면서 희망을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디테일에 굉장히 신경을 쓴 것 같은데 오히려 연기할 때 디테일을 생각하면 부자연스러워 지지는 않나. 김선아: 작품 들어가기 전에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막상 촬영할 때는 머리를 비우는 편이다. 생각을 많이 하면 복잡해지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연기를 하기보다 그 때 그 때의 느낌과 감정대로 한다. 그래서 그런 디테일들은 캐릭터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이연재답게’ 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 촬영 시작하면 대본을 많이 보지 않는다. 대본이 나오면 처음부터 집중해서 쭉 읽는다. 집중해서 읽으면 머릿속에 느낌이 딱 들어오면 그 느낌대로 한다. 그래서 촬영하기 전에 몸가짐부터 준비해서 들어가는 것 같다. 정치적인 단어를 정확하게 전달해야 했던 <시티홀>과 달리 생활에 밀접한 캐릭터는 머리를 비웠다. 와 닿지 않으면 말이 잘 나오지도 않는다.
<H3>“아프면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H3>‘이연재스럽게’ 연기하며 몰입한 만큼 캐릭터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울 것 같다. 김선아: 지금도 정리 못하고 있다. 한 작품 끝나면 좀 힘들어 하는 편이다. 바보 같을 수 있지만 밖에도 잘 안 나가서 작품 끝나고 혼자 있는 시간이 가장 힘들기도, 편하기도 하다.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만나서 너무 반갑기는 해도 오랜만에 동창을 만난 것처럼 계속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는 기분이 든다. 촬영하면서 우리끼리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시즌 2를 한다면 강지욱은 “12년이 지났다. 그녀는 아직도 살아 있다”고 하고 이연재는 “이 남자, 아직도 일을 한다. 내가 먹여 살린다” 식으로 하는 거다.(웃음) 처음에 이연재가 답답하기도 했다고 했는데 이번 연기를 통해 개인적인 성격이 달라진 게 있나. 김선아: 원래 연재와 성격이 비슷하다. 나, 약간 답답하다.(웃음) 생각해보면 친구들과 수다는 잘 떨지만 결정적인 말을 못했던 사람이었다. 동생이랑 싸우면 3일 동안 말 안 하다가 편지만 쓱 줬다. 살면서 화를 막 내거나 소리를 지를 일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 영화 <위대한 유산>을 하는데 소리 지르는 신이 너무 많은 거다.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혼자 땀을 막 흘렸다. 그 때부터 연기 수업에서 소리 지르는 특훈을 하면서 많이 좋아졌고 욕도 배웠다. 김삼순도 연기 수업 안 받았다면 못했을 거다.연기 수업을 계속 받는다고 하면 의아해 하는 사람도 있겠다. 김선아: 왜 하냐고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모르니까” 하는 거다. 대사를 외우는 공부가 아니라 기초를 쌓고 있다. 사실 처음부터 연기를 전공으로 하지 않아서 더 이를 악물고 지금까지 온 게 있는데 이번 역할 해보니 또 어렵더라. 그래서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열심히 하니까 “김삼순과 똑같다” 등 예전에 많이 나온 말들도 없어진 것 같다. 또 십 년 가까이 하는 선생님이 항상 모니터 해주시고 이번에 칭찬 많이 해주셔서 너무 힘이 됐다. 이번 작품을 통해 새롭게 느낀 연기의 매력이 있을까. 김선아: 이렇게까지 아플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아프면서도 행복할 수 있구나, 이게 내 삶일 수 있다는 게 너무 진심으로 와 닿아서 이번 작품이 남달랐다. 이렇게 3개월 내내 명치가 아팠던 적은 처음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렇게 좋은 작품 만날 수 있어 특별히 얽매여 있을 필요가 없다고 느꼈고 작품을 자주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인기를 떠나 인간으로서 성숙해져 가는 것 같아서 더 좋다. 그 바람처럼 드라마 끝나고 김주혁과 함께한 영화 <투혼>이 바로 개봉하게 됐다.김선아: 빨리 다른 작품 들어가는 게 나한테는 좋은 약일 수도 있고 배우들에게도 그런 것 같다. <투혼> 찍을 때도 너무 고생을 많이 했는데 <여인의 향기> 탱고 준비하면서 많이 좋아진 것 같다. <여인의 향기> 제작발표회 때 “시한부 인생을 산다면 미친 사랑을 하고 싶다”고 했다. 특별히 ‘미친 사랑’을 꼽은 이유가 있나.김선아: 정말 순수한 사랑을 하고 싶다. 사춘기 이후로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아서. 밀고 당기고 서로 재고 하는 거 말고 정말 순수하게 많은 생각 없이 같이 있으면 서로 애교도 부리고 그러면서 살고 싶다. 좋은 사람을 만나서 가정을 꾸리는 것도 중요한 것 같고 이연재 버킷 리스트처럼 사랑하는 사람 품에서 생을 마감하면 행복할 것 같다. 15년 넘게 연기 생활을 하고 있다. 배우 김선아로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나. 김선아: 큰 목표가 있다기보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꾸준히 열심히 하고 싶다. 나름대로 초심을 잃지 않고 꾸준히 해왔다고 생각하는데 어느 순간에 사람은 귀찮아질 수 있고 잠시 정신을 놓을 수 있지 않나.(웃음) 그런 거 없이 앞으로도 그냥 꾸준히, 열심히 하고 싶다.사진제공. 킹콩 엔터테인먼트10 아시아 글. 한여울 기자 sixteen@<ⓒ즐거움의 공장 "10 아시아" (10.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데일리팀 글. 한여울 기자 sixteen@ⓒ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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