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영식 기자] 하루에만 외환시장에 4조6000억엔(약 64조6500억원)을 쏟아 부었는데도 ‘약발’이 5일을 넘기지 못했다. ‘요지부동’인 엔 강세를 꺾기 위해 고심하던 일본 정부가 24일 새로운 엔고(高)방어 대책을 내놓았다. 외환시장에 엔화를 팔고 달러를 사들이는 ‘시장개입’ 대신 일본 기업들의 해외시장 진출과 투자를 활성화하는 데 돈을 풀겠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효과를 볼 수 있을까. 전문가들의 의견은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란 쪽에 모아지고 있다. 엔 강세의 근본 동력은 미국·유럽 등 해외 경제의 불안요인이기에 어떤 대책을 내놓아도 한계라는 분석이다. ◆ 기업에 대출자금 1000억달러 푼다 =노다 요시히코 일본 재무상은 24일 엔화가치 강세를 저지하기 위해 1000억달러(약 7조7000억엔) 규모를 융자하는 ‘엔고대응특별기금’을 설립하는 한편 은행들의 외환거래 포지션 공개 등 시장 모니터링도 강화하겠다는 내용의 긴급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가 보유중인 외환자금특별회계 자금을 재원으로 일본국제협력은행(JBIC)을 통해 기업들에게 시장 조달금리보다 낮게 대출자금을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1년간 한시적으로 시행되며, JBIC도 별도로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1500억엔 규모를 출자한다. 일본 기업들의 해외 인수합병(M&A)이나 자원·에너지 확보, 즉 해외 자산 매입을 촉진함으로써 민간 엔 자금을 외화로 전환하고 이를 통해 엔화 약세를 이끌어내겠다는 전략이다. 또 해외 자산이 증가하면 장기적인 기업 수익성 제고와 국부 증대 효과까지 노릴 수 있다.또 재무성은 외환시장의 급격한 변동을 줄이고 투기성 움직임을 견제하기 위해 30여 개 시중 은행들이 9월 말까지 트레이더들의 외환보유 및 거래현황을 보고하도록 결정했다. 노다 재무상은 “일방적인 엔고가 지속됨에 따라 대응책을 강구했으며 이번 긴급대응 패키지는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대책을 총동원한 것”이라고 말했다. ◆ 외환시장 개입만으로는 ‘역부족’ = 미국 국가신용등급 강등과 유로존 재정위기 확산 등으로 세계금융시장 안전자산 수요가 집중되면서 엔화는 최근 5개월 동안 지속적인 강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19일에는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75.95엔대까지 떨어져 사상 최저 기록을 새로 썼다.노다 재무상을 비롯한 일본 정책 관계자들은 이달 들어 거의 매일 ‘외환시장 개입 불사’ 발언을 쏟아내면서 시장을 견제했지만, 너무 잦은 발언에 식상해진 외환시장 투자자들의 의견은 오히려 ‘일본 정부가 실질적인 개입 능력이 있는지 의문스럽다’는 냉소로 기울었다. 이는 일본 정부도 외환시장 개입이 큰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케다 유노스케 노무라증권 외환투자전략책임은 “지금까지 단발성 외환시장 개입이 엔화 강세의 흐름을 바꾼 적은 한번도 없었다”면서 “지난해 9월의 단독개입, 올해 3월 대지진 사태 당시 선진7개국(G7)과의 공동개입, 하루 개입으로는 사상최대 규모인 이달 4일 단독개입까지 세 차례 단행됐지만 각각 3주, 4개월, 그리고 4일만에 효과가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 엔고 잡힐까.. 반응은 ‘회의적’ =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일본 재무성의 이번 긴급대책에 대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더 창의적인’ 접근법을 채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시장 관계자들의 의견은 당장의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쪽에 모아졌다. 니시오카 준코 RBS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지금까지 임기응변에 머무른 것에 비해 자금규모는 크지만 1년 안에 미국 등 세계경제가 정상화될 수 있을 지 의문스럽다”면서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노우에 테츠야 노무라종합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외환시장 개입만으로는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다른 차원의 정책 여지를 보였다는 점에서 진전된 의미가 있다”면서 “구체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시장의 불안감은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궁극적으로 JBIC의 일본판 ‘국부펀드’화에 더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현재 JBIC는 다른 나라의 국부펀드와 달리 해외 직접 투자를 결정할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외환보유고 일부를 JBIC를 통해 운용해 일본 기업들의 해외투자를 지원한다는 방안은 이미 올해 초부터 거론된 내용이다. 그 동안 국부펀드 형태로 정부자산을 투자하자는 방안에 대해 재무성은 위험이 크다며 반대해 왔다. 그러나 이번 발표에 따라 엔고를 역이용한 해외 투자에 역량이 집중되면 일본판 국부펀드의 등장에도 힘이 실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김영식 기자 grad@<ⓒ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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