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최의민 만나다①]비겁하지 않은 변명

최의민(왼쪽), 최훈

[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최훈은 국내야구 웹 카툰의 창시자다. 일간스포츠 ‘하대리’로 데뷔, 2004년부터 ‘MLB카툰’을 통해 야구팬을 끌어 모았다. 현재는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프로야구 카툰’을 연재하고 있다. 그의 야구 카툰은 구단 마스코트를 귀엽게 변형시킨 캐릭터와 촌철살인의 대사로 대변된다. 많은 팬을 끌어 모은 원동력이다. 선수들마저 예의주시할 정도다. 최근 그에게는 보이지 않는 경쟁자가 생겼다. 2007년 ‘이블승엽’으로 데뷔, 2009년부터 포털사이트 네이트에 ‘불암콩콩코믹스’를 연재하는 최의민이다. 카툰에는 힘이 넘친다. 독특한 줄거리에 선수들의 특징을 과도하게 부각시킨 캐릭터를 더 했다. 플래시, 원색 터치 등의 독특한 실험은 덤. 어느덧 야구팬들은 손꼽아 그의 카툰을 기다린다. 이하 최훈·최의민과의 인터뷰스포츠투데이(이하 스투) 첫 만남이다. 서로의 첫 인상이 어떠한가. 최훈 생각보다 젊어서 놀랐다. 웹 카툰 하단 프로필에 새겨진 캐릭터와 많이 닮았다. 최의민 최대한 가깝게 그리려고 노력했다(웃음). 최훈 작가는 카툰 속 캐릭터와 닮지 않은 것 같다. 최훈 늙어서 그렇다. 살도 찌고(웃음). 프로야구는 어떻게 그리게 됐나. 꼭 만나면 물어보고 싶었다. 최의민 애초 다룰 생각은 없었다. 팬도 아니었고. 취업에 번번이 실패해 밖에 나갈 일이 없었다. 집에서 자장면을 시켜먹으며 자주 야구를 보게 됐다. 자연스럽게 생긴 관심으로 펜을 잡게 됐다. 스투 만화를 따로 공부한 적이 있나. 최의민 없다. 어렸을 때 낙서를 즐긴 게 전부다. 잘 그리진 못했다. 재미있게 표현한다는 말만 들었다. 디시 인사이드를 통해 처음 작품을 내놓았는데 반응이 괜찮았다. 좋게 봐준 지인의 소개로 포털사이트에 연재를 하게 됐다.

최훈

최훈 그림 속 캐릭터들이 꽤 매력적이다. 최의민 군 전역 뒤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그림 연습이었다. 사진 위에 기름종이를 얹고 비슷하게 표현하려 애썼다. 반복을 거듭한 끝에 지금의 스타일을 얻게 됐다.최훈 대학 전공은 무엇인가. 최의민 컴퓨터응용학과로 대학에 진학했는데 바로 중도 하차했다. 뭘 응용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더라(웃음). 학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방에 위치해 통학에만 두 시간이 걸렸다. 입학한 지 3주 내에 자퇴를 신청하면 등록금 회수가 가능해 서둘러 서류를 제출하고 군에 입대했다. 최훈 나는 영어였다. 대학 졸업 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가 터졌다. 학점까지 낮아 취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만화로 눈을 돌린 건 1997년 준비한 소설 '아이 이븐 킬 더 데드(I even kill the dead)'가 문학계간지에 실리면서부터였다. 스투 소설이 아닌 만화를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최훈 어렸을 때부터 만화를 좋아했다. 소설보다 더 많은 매력을 느꼈다. 일본의 만화작가들처럼 되고 싶다는 일념 아래 무작정 비행기에 올랐다. 그런데 그림을 가르쳐주는 사람은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최의민 일본어를 잘 하나보다. 최훈 대학 3학년 때부터 유학을 준비했다. 일본어 관련 과목으로 교양수업을 들으며 1년 남짓 공부했다.

최의민

최의민 3개 국어에 능통한 건가. 부럽다. 최훈 영어 실력은 많이 부족하다(웃음). 스투 야구를 그리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최훈 일본에서 야구 만화를 많이 접했다. 그 곳의 야구 인기는 엄청났다. 공중파 채널에서 매일 생중계를 해줬다. 사람들은 일과를 마치면 맥주를 마시며 경기를 즐겼다. 주말이면 인근 야구장으로 나가 직접 뛰기도 했고. 관련된 만화가 다양할 수밖에 없었다. ‘왜 국내에는 이런 만화가 없을까’라는 생각에 야구를 그리게 됐다. 최의민 처음부터 야구를 그린 건 아닌데. 최훈 처음 만화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악성댓글과 거리가 먼 작가였다. ‘일간스포츠’에 만화를 연재한 작가들(양영순, 김성모, 정연식) 가운데 가장 욕을 덜 먹었다. 악성댓글에 시달린 건 ‘하대리’에서 고시생의 실패한 사랑을 그리면서부터다. 심각한 스트레스를 겪었다. 뿌리칠 방법을 모색했지만 쉽지 않았다. 좋아하는 걸 다루면 그나마 나아질 것 같아 고심 끝에 찾은 것이 야구였다. 최의민 일본에도 웹 카툰이 있나. 최훈 유학 당시만 해도 전무했다. 인터넷 환경이 우리나라에 비해 크게 떨어졌으니까. 지금은 많이 생겼을 거다. 최의민 일본 웹 카툰 시장에 도전해볼 생각은 없나. 최훈 어려울 것 같다. 현지인들의 생각을 잘 모르니까. (잠시 생각하다)일본프로야구는 최의민 작가가 먼저 다루지 않았나.

최의민(왼쪽), 최훈

최의민 ‘이블승엽’ 말인가(웃음). 최근 시즌 2를 준비했는데 이승엽(오릭스)의 성적 부진으로 보류했다. 삼성 라이온즈로 복귀하면 그 때쯤 그려볼 계획이다. 최훈 ‘이블승엽’을 보며 최의민 작가를 처음 알게 됐다. 꽤 재미있게 읽었다. 최의민 감사하다. 1년 넘게 투자한 대작이다(웃음). 돈을 받고 그린 게 아니라서 편하게 작업했다. 최훈 어쩐지 아이디어가 신선하더라. 최의민 사실 줄거리는 단순했다. 그림에 녹인 소재가 많아 인기를 얻은 것 같다. 물론 지금은 아이디어 고갈에 시달린다. 최훈 최근 소재를 아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최의민 아이디어가 많이 떠오르는 날이 있다. 문제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독자에게 웃음을 줄 수 있을지 늘 고민이 된다. 답을 찾지 못하면 모두 구겨 넣어버린다. 그 때마다 얼마나 불편하게 잠을 청하는지 모른다. 최훈 나도 그렇다. 같은 이유로 작업시간이 꽤 오래 걸리는 편이다. 그런 측면에서 동갑내기 작가 곽백수가 무척 부럽다. 자신의 생각을 믿고 바로 그려낸다. 나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최의민 만화작가라면 두둑한 배짱이 필수인가 보다.

최훈 MLB 카툰 中

최훈 ‘끝내야지’ 하면서도 결국엔 손을 떼지 못한다. 의자에 앉아 멍하니 컴퓨터만 바라보는 게 다반사다. 마지막 한 컷을 남겨 두고 그럴 땐 거의 미쳐버린다. 최의민 나는 스토리가 있어 그나마 다행인 것 같다. 아이디어를 구겨 넣다보면 운 좋게 다발적인 웃음으로 연결될 때가 있다. 그 때가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너무 길다는 지적을 받긴 하지만(웃음). 최훈 만화작가로 먹고 살려면 꾸준히 그릴 줄 알아야 한다. 취미로 만든다면 언제든 웃음 포인트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둘에게 만화는 생업이다. 내 경우에는 아내와 딸 둘을 먹여 살릴 도구이기도 하고. 아이디어가 계속 나와야 한다는 딜레마를 극복해야 더 발전할 수 있다. 그런데 큰일이다. 오늘도 마감을 늦을 것 같다(웃음).스투 최근 주 1회에서 데일리로 연재 방법을 변경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최훈 아이디어 고갈 탓이다. 만화에 녹일 소재를 찾는데 많은 애를 먹었다. 답답한 마음에 지난해 말 ‘네이버’ 스포츠 팀에 사직 의사를 밝혔다. 그 뒤 한동안 어떠한 통보도 받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정리가 된 줄 알았다. 지난 시즌 뒤 구단별 정리를 연재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따로 다른 카툰을 그릴 계획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음을 다잡은 찰나 갑자기 연락이 왔다. ‘다시 해보자’고 했다. 고사를 거듭하다 짧게 그려도 된다는 제안에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지금의 형태를 마련하게 된 건 그 때문이다. 막상 해보니 결코 쉽진 않다. 최의민 아무리 한두 컷이라도 매일 송고해야 한다는 게 적지 않게 부담일 것 같다. 최훈 이전보단 나아졌다. 프로야구를 일주일 단위로 다뤘을 땐 8개 구단 정리에만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한 컷으로 바뀌며 이 같은 어려움은 사라졌다. 가령 장성호(한화)가 4타수 4안타를 쳤다고 가정해보자. 그 현상은 데일리 카툰의 소재로 충분한 매력적이다. 그러나 일주일 단위로는 아니다. 그 조명조차 무의미해질 수 있다. 장성호가 다른 경기에서도 4타수 4안타를 계속 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스투 최의민 작가에게 에로사항은 무엇인가. 최의민 캐릭터를 두 명 이상 그려야 하는 점이다. ‘불암콩콩코믹스’는 스토리에 맞춰 전개된다. 캐릭터들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모두 세밀하게 그리려다 보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잠시 말을 멈춘 뒤)한 주간의 이슈 가운데 빠진 게 있을 때도 불안하다. 시간 부족 탓이다. 1년 전만 해도 따로 콘티를 준비했다. 어떻게 컷을 연결할지 충분히 계산하고 작업에 돌입했다. 처음에는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그러나 작업을 거듭할수록 그것이 무리수임을 알게 됐다. 자연스럽게 마비가 찾아오더라. 결국 마감 시일을 지키지 못해 애를 먹었다.스투 시간을 어겼을 때 어떻게 대처하나.최의민 ‘늦을 것 같다’고 통보한 적은 없다. ‘네이트’ 스포츠 팀이 독촉을 하지 않는 편이라서(웃음). ‘계약이 파기된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로 연락이 뜸하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어느 순간 문자 메시지가 날아온다. ‘쉬실 만큼 쉬셨나요?’라고. 그러면 눈치가 보여서라도 저절로 펜을 잡게 된다.

최의민 불암콩콩코믹스 中

최훈 충분히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누구나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기 마련이니까. 한동안 ‘불암콩콩코믹스’가 나오지 않았을 때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 같다는 짐작을 한 적이 있다(웃음). 최의민 만화를 시작하며 많이 뻔뻔해진 것 같다. 한 번 푹 쉰 적이 있는데 당시 네티즌 반응을 잊을 수가 없다. 로또 당첨부터 수술까지 다양한 설을 제시했다. 글들을 보며 차라리 아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밤새 앉아 작업한 탓에 허리, 어깨가 매번 쑤셨다. 그래서 1년만 하고 그만두려 했다. 그 놈의 돈이 원수다. 기어코 다시 펜을 잡게 만든다.최훈 계속 해야 한다. 어느 정도 유명세를 얻었으니 조만간 작업하기 좋은 조건이 마련될 거다. 최의민 흔치 않은 기회를 잡은 건 맞다. ‘꼭 해야 한다’고 마음속으로 몇 번을 다짐하는 나를 볼 때 그걸 느낀다. 최훈 작가는 마감 시일을 어겼을 때 어떻게 대처하나. 최훈 독촉 메일을 받으면 ‘다음 주에는 기한을 어기지 않겠습니다’라고 회신한다. 그 이상은 쓰지 않는다(웃음).최의민 웹 카툰을 그리며 어느 순간부터 ‘죄송하다’라는 말을 잊은 것 같다. 하도 많이 썼더니 안 하게 됐다.최훈 나 역시 마찬가지다. 데뷔 때만 해도 ‘죄송하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최근에는 그런 말을 꺼낸 적이 없다.
최의민 궁금한 점이 있다. 프로야구는 모든 경기를 챙겨보나. 최훈 모두 섭렵하진 못한다. 주로 LG의 경기를 시청하다 흐름이 바뀔 때쯤 채널을 돌린다. 왜 정체되는 타이밍이 잊지 않는가. 긴박감이 멈출 때. 그 때가 다른 경기로 넘어가는 전환점이다. 최의민 나 역시 채널을 돌려가며 본다. 경기가 너무 많아 고민이다. 저녁 6시의 황금시간대에 봐야 하는 것도 곤욕이고. 하이라이트만 챙겨보고 아이디어를 구상한 적도 있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잠시 말을 멈춘 뒤)독자들이 이런 고충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한 구단에서 하루에 한 개씩 이슈만 터져도 일주일에 48개다. 이를 모두 그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왜 이건 빠졌고 저건 다루지 않느냐’는 등의 댓글은 삼가해줬으면 좋겠다. 지금도 많은 희생을 감수하고 작업에 임하고 있다.최훈 원래 웹 카둔이 중노동이다(웃음). 사람들은 재밌는 사건이 발생하면 무조건 그걸 표현해야 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에서 재밌는 것이지, 만화로도 그런 게 아니다. 독자들이 꼭 그 부분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최의민 맞다. 어떻게 요리를 할지 막막한 소재인데 무작정 요청을 받을 때마다 당혹스럽다. 지금까진 울며 겨자를 먹는 심정으로 그렸지만 앞으로는 지양하겠다. 이 자리를 통해 양해를 구한다. 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 leemean@<ⓒ아시아경제 & 재밌는 뉴스, 즐거운 하루 "스포츠투데이(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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