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하는 게 이렇게 행복하구나, 라는 걸 비로소 알았습니다.” 최종경연을 끝낸 임재범 씨가 말했죠. 저는 ‘노래를 듣는 게 이렇게 행복하구나’라는 걸 알게 해줘서 고맙다고 화답하고 싶어요. 언제부터였을까요? 꽤 오랜 기간 노래에 온전히 몰입하지를 못했습니다. 적어도 TV 앞에서는 그랬어요. 현란한 볼거리에 눈이 팔려서일 수도 있고, 가사가 잘 들리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어요. 새로운 노래를 들어도 어느 한 부분이 익숙하면 또 표절 아닌가 싶어 귀를 쫑긋하기도 했고요. 어디까지가 MR인지 어디까지가 라이브인지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죠. 노래에 젖어들기 보다는 트집을 잡아보려는 마음이 앞섰던 것 같아요. 그리고 고백하자면 MBC <우리들의 일밤> ‘나는 가수다’가 처음 시작될 때의 마음도 엇비슷했습니다. 일곱 명의 가수 중 제 취향이 아닌 가수가 더 많아서 시간 내내 집중하고 볼 수 있을지, 그도 의문이었어요. ‘어디 얼마나 잘하는지 한번 보자’ 뭐 이런 태도였을 거예요. 그런데, 결론은 이미 말씀드렸죠? 최종경연이 끝난 지금 저는 노래를 듣는 재미를 알게 되었답니다. 아니 예전의, 아련하도록 오래 전의 감성이 되살아났다는 표현이 더 맞겠네요. 라디오 심야방송을 몰래몰래 듣던 어린 시절,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노래가, 노랫말이 너무 좋아서 노트에 깨알같이 받아 적던 그 때의 감성이 고스란히 살아 돌아온 느낌입니다. <H3>이 좁은 땅에 이렇게나 명가수가 많았다니요</H3>
1등을 한 임재범 씨부터 7등을 한 박정현 씨까지 누구 하나 훌륭하지 않은 무대가 없었습니다.
몰입을 방해한다는 반응도 있지만 청중평가단의 표정을 감상하는 것도 ‘나는 가수다’를 보는 재미의 하나인데요. 그분들 중에 저와 같은 공감대가 이루어졌지 싶은 분들이 많으시더군요. 세상에나, 노래를 통해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기분이 들다니요. 소통은 신기하게도 적막강산 같았던 우리 집에서도 이루어졌습니다. 우리 집 사정을 말씀드리자면 아이들이 다 커놓으니 온 식구가 TV를 함께 본다는 개념 자체가 사라져버린 집이에요. 애당초 같은 시간에 다들 집에 있는 경우도 드문데다가 워낙 뚱한 성격들인지라 집에 있다 해도 각기 흩어져 제 볼일 보느라 얼굴 보기가 어렵거든요. 그런데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진 겁니다. 모두가 함께 TV 앞에 앉은 건 2002년 월드컵 이래 처음이었어요. 누구는 추리물이며 스포츠 중계에 집착하고, 누구는 아예 TV에 관심이 없고, 누구는 컴퓨터 모니터로 TV를 봐서 모일 일이 통 없던 식구들이 ‘나는 가수다’를 보겠다고 TV 앞에 함께 앉았습니다. 그게 바로 지난 1차 경연 때였어요. 선호도 조사 공연을 각자 다른 루트로 시청한 후 감동을 받아 본방 사수를 위해 모였던 거죠. 하도 역사적인 날이라서 주전부리용 간식도 넉넉히 준비했던 것 같은데요. 막상 경연이 시작되고 나니 입에 뭘 넣게 되지가 않더군요. 무언가를 먹는다는 게 불경스럽게 느껴질 정도의 감동이었으니까요. 그뿐인가요. TV의 음향모드를 음악모드로 바꾸라는 안내가 나온 게 기억나 리모컨을 건드렸다가 순간 채널이 돌아갔는데 어찌나 다들 도끼눈을 뜨고 아우성인지 서운할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디 서운할 겨를이 있나요. 이 좁은 땅덩어리에 이렇게 노래 잘하는 가수들이 많다니, 애국심까지 샘솟더군요. <H3>그리고 김연우 씨, 그대는 정녕 최고의 가수이십니다!</H3>
제 마음에 가장 와닿았던 이소라 씨, 그리고 이제 떠나는 김연우 씨까지 모두 최고의 가수입니다.
이소라 씨가 등장하자 식구 하나가 그랬어요. 만날 똑 같이 부르는 거 이젠 지겹다고. 그 말에 누군가도 동조했던 것 같고요. 그런데 이소라 씨의 ‘No. 1’이 시작되자 모두가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죠. 이소라 씨는 이미 시청자의 마음을 꿰뚫고 있었던 걸까요? 그리고 이번 최종경연에서는 다른 가수들과 달리 힘을 뺀 편곡을 택한 이소라 씨. 송창식 씨라면 아마 노래를 그냥 노래했을 것이라서 자신도 그냥 노래를 부르기로 마음먹었다는데, 편곡이 청중평가단의 선택을 좌우 한다는 걸 너무나 잘 아는 이소라 씨로서는 큰 용기였을 거예요. 그런데 저에게는 지금까지의 어느 곡보다 ‘사랑이야’가 좋았습니다. “당신은 누구시길래 이렇게 내 마음 깊은 거기에 찾아와 어느새 시냇물 하나 이렇게 흘려 놓으셨나요. 어느 빛 어느 바람이 이렇게 당신이 흘려 넣으신 물처럼 조용히 속삭이듯 이렇게 영원할 수 있나요” 이 노랫말이 그대로 살아서 제 가슴 속으로 스며들더군요. 노래에는 박자, 음정, 고음, 그 이상의 가치 있는 뭔가가 있다는 걸 여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첫 순서 이소라 씨부터 마지막의 임재범 씨까지, 일곱 분 모두 진심을 담은 열창이었기에 사실 1등도 없고 꼴찌도 있을 수 없겠죠. 그런데 왜 그 훌륭한 노래에 굳이 순위를 매겨야 하느냐, 왜 굳이 퇴장이 필요하냐는 여론도 있지만 그런 다소 잔인한 장치들이 더 몰입하게 만들고 더 긴장하게, 더 노력하게 만드는 걸 거예요. 사실 같은 가수들이 KBS <열린 음악회>를 비롯한 각종 음악 프로그램에 모습을 보여 왔지만 지금 같은 뜨거운 반응은 아니었으니까요. 회가 거듭되며 고음에 지친다, 편곡에 지친다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고 또 다른 불협화음이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대를 초월한 공감대를 만들어줬다는 점만으로도 ‘나는 가수다’의 존재 가치는 충분하다고 봐요.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김영희 PD님 이하 제작진 여러분, 그리고 결점들을 보완해 좀 더 공고히 한 신정수 PD님, 미중년 장기호 교수님을 비롯한 자문위원 여러분, 무대감독 정지찬 씨와 스텝 여러분,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그리고 특히나 처음으로 목숨을 걸고 노래했다는 김연우 씨, 그대는 정녕 최고의 가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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