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의 선택, 박지원의 훈수

[김대원의 여의도프리즘] # 민주당 비대위 박지원 대표는 몇년 전 서울농대 출신 지인으로부터 김태호 경남지사를 소개받았다. 서로 배짱이 맞았는지 곧 ‘형님·동생’ 사이가 됐다.박 대표가 보기에 김 지사는 ‘큰 꿈’을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야망의 사나이였다. 과연 그는 지사직 3선을 포기하고 불출마를 선언한다. 그는 이후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 자신의 뜻을 열어보였고, 한나라당 친이계 의원들과의 교분도 착실히 쌓아나갔다.지난 지방선거에서 대통령은 여권의 참패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집무실에서 개표상황을 티브이로 지켜보다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그만큼 큰 충격을 받았다는 얘기다.MB는 그 후 측근들에게 “왜 우리에겐 안희정, 이광재가 없느냐”고 탄식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이 지방선거를 거치며 가장 뼈아프게 생각한 대목이 바로 ‘젊고 패기있는 차세대 주자’였음을 시사하는 일화다.이런 맥락에서 농고와 농대를 나온 젊은 도백은 집권 후반기를 산뜻하게 출발하려는 MB에게 최상의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오죽하면 야당과 박근혜 전 대표를 두루 고려한 다목적 카드라는 분석까지 나왔을까.‘소장수 아들로 태어나 이 자리까지 오게 한 대한민국에 감사드린다’는 그의 일성은 보수주의자들의 구미에도 딱 맞는 레토릭이다.# 바로 이 시기 어느 날, 박지원 대표는 김 전 지사에게 다음과 같은 충고를 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 사이에 잘못 끼어들면 박 모 전의원처럼 될 가능성이 높으니 조심하라”정치적 희생양이 될 가능성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김 전 지사는 ‘파워게임’은 커녕 그 근처까지 가보지도 못하고 스스로 무너졌다.‘박연차 게이트’ 연루 의혹과 ‘스폰서’ 의혹, 선거비용 10억원 대출, 불투명한 금전 거래와 재산관리 문제는 야당은 물론 여당 의원들마저 고개를 돌리게 했다.그의 낙마의 직접적 원인은 계속된 말바꾸기에 따른 신뢰상실이다. 청문회에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을 만난 시점에 대해 날마다 말을 바꿨고, 급기야 청문회 답변보다 이른 2006년 2월에 박 전 사장과 같이 찍은 사진이 공개되고 말았다.그의 친 서민 이미지의 굴절도 여론의 민감한 심층을 건드렸다. 그는 “서울 출장 때 하루 97만원짜리 고급호텔에도 머물지 않았느냐”는 추궁에 “도지사가 여관에서 잘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서울에서 혼자 자취하다 계란프라이를 태운 ‘안타까운’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던 그는 이 한 마디로 그간의 이미지를 상당부분 무너뜨렸다. 같은 연배에다, 같은 ‘박연차 건’ 등으로 직무가 정지 돼 춘천의 ‘찜질방’을 전전했던 이광재 강원지사와 극적으로 비교됐던 것이다.‘누구는 관사에도 못 들어가는데, 누구는 총리가 된다는 것이냐’는 국민감정은 천만표의 위력을 갖는다. 생각해 보면 지금 대통령이 강조하는 이른바 ‘공정사회’의 원칙이기도 하다.# 박지원 대표는 29일 김태호 후보자의 사의 표명 직후, “이런 결정이 안 나왔다면 오후 2시에 하려던 기자간담회에서 더 큰 의혹을 제기하려 했다”고 귀뜸했다. 박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오늘 (사퇴를) 결정할테니 그 이상 언급하지 말아 달라’는 얘기가 전해지더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사실 청문회 직전 ‘형님, 잘 부탁한다’는 전화가 걸려 와 ‘청문회를 만만하게 보면 안된다, 혼 좀 날 것’이라고 말했다”며 “그땐 나도 사태가 여기까지 발전할 줄은 몰랐다”고 씁쓸히 돌아봤다.박 대표는 “개인적으로 참으로 좋은 관계였던 만큼 다시 형님 동생 사이로 돌아가 언젠가 한 번 만나 회포를 풀 것”라고 강조했다.그는 이어 “아직 젊으니까 많은 기회가 있을테니 절망하거나 좌절할 필요는 없다”며 “김 후보자 스스로 말했듯 국민을 위해 더 큰 노력을 해 줄 것”이라고 벌써 ‘형님입장’으로 돌아갔다. 비감한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심정으로 청문회를 이끌어 결국 그의 사퇴를 관철시킨 박 대표는 “정치인은 ‘퇴수일기’(退修日記)를 잘 써야한다”며 또 한번의 ‘훈수’를 뒀다.광남일보 국장 dwkim@<ⓒ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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