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검찰 총수 사퇴 카드를 만지작 거리다 사흘 만에 꺼내들었다.
명목상으로는 사표 반려였지만 잠재적 사퇴를 예고했기 때문에 민심을 잠재우기 위한 국면전환용 1차카드라는 분석이다.
전국적으로 몰려드는 추모 인파와 불 붙은 민심에 화들짝 놀란 정부가 이번 카드로 사태를 수습할 수 있을 것인지 주목된다.
◆林총장 사표 사흘만에 반려돼 = 26일 법무부와 검찰에 따르면 임채진 검찰총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일인 지난 23일 오전 대검 청사에 출근한 뒤 바로 사표를 작성해 법무부에 제출했다.
임 총장은 노 전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서거했다는 소식을 접한 뒤 인간적인 고뇌를 느껴 사표를 작성해 법무부에 전달했으나, 김경한 법무장관은 "사태 수습이 우선"이라며 25일 오후 반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 총장이 사표를 제출하고 사흘이 지나서야 반려됐다는 점에서 청와대가 이번 정국을 관망하다 1차로 검찰총장 사퇴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명목상으로는 사표가 반려됐지만 '박연차 리스트' 수사가 마무리되는 6월 중순께 임 총장에 대한 사표가 수리될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하기 때문에, 사실상 민심을 잠재우기 위한 잠재적 총장 사퇴 카드를 내놓은 것이라는 해석이다.
대검과 법무부는 이례적으로 이 같은 내용을 동시에 보도자료를 통해 발표했다. 검찰은 임 총장이 자진 사퇴하려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사태에 책임지는 듯한 모습을 보였고, 정부도 '일단 보류'라는 전제를 걸어 놓아 경질에 여운을 남겨뒀다.
이에 따라 임 총장 사퇴에 반대하는 검찰 내부의 강경파와 보수진영의 반발을 누그러 뜨리면서도 여론을 수렴하는 듯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성공적인 '총장 사표 반려' 시나리오가 그려졌다.
◆불 붙은 민심 가라앉을까 =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불 붙은 민심이 임 총장이 자진 사퇴한다고 해서 수그러들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미 여론에서는 검찰 수사에 대한 '특검론'이 제기되고 있으며, 정부가 노 전 대통령의 장의(葬儀)를 국민장으로 치르기로 하면서도 서울광장과 청계광장의 민간 분향소 설치를 막아 시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경찰은 지난 23일부터 이 지역에 경찰버스를 줄지어 배치해 인공장벽을 구축해 놓은 상태다. 경찰은 시민들의 추모 행사가 불법 시위로 변질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원천적으로 서울광장 등을 봉쇄했다.
이에 더해 주상용 서울경찰청장은 "경찰 버스가 분향소 주변을 막아주니 아늑하다고 말하는 분도 있다"고 말하는 등 정부는 분노하고 있는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현 정부가 노 전 대통령 서거에 아파하고 있는 민심을 보듬지 않고 억제하려고만 한다면 지난해 6월 쇠고기 파동으로 촉발된 '촛불정국'이 올해 6월에도 재개될 수 있다는 전망이 속속 제기되고 있다.
한국진보연대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로 구성된 '민생민주국민회의'는 "경찰이 분향소 주변을 압박하는 것은 명백한 추모 방해이며,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극단적인 결례"라고 주장했다.
김진우 기자 bongo7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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