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자본시장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장외파생상품 신규 인가, 증권사의 자산운용사 겸영 등을 당분간 보류하기로 했다. 증권업 신규 진출도 사실상 어려워진다.
이처럼 자본시장법의 기본 취지인 ‘영업의 자유 확대’과 배치될 수도 있는 결정을 내린 이유는 증권업계가 글로벌 경기침체로 수익기반이 악화된 상황에서 심각한 '레드오션' 단계로 들어섰다는 판단에서 비롯된다. 지금과 같은 영업환경에서 무분별한 시장 진입이 이뤄지면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는 업체까지 연쇄 도태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증권업계 스스로 인수합병(M&A)을 통한 자율 정화 능력을 기대하기도 어렵다는 시각도 반영돼 있다. 당국이 '수질 관리'를 해줄테니 증권업에 관심 있는 곳은 M&A를 통해 들어오라는 의미도 읽을 수 있다.
홍영만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정책관은 "미증유의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맞아 금융기관들의 생존자체가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시장 진입의 문을 활짝 열고, 어떤 업무든 다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 금융산업에 좋은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1단계, 위험 낮은 업무만 인가
2007년 7월 제정돼 지난달 4일부터 시행된 자본시장법은 증권·선물·자산운용·신탁 등 금융투자업 간에 겸영을 허용, '규모의 경제'를 통한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것이 기본 취지이다.
금융당국은 그러나 법 제정 당시와 달리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자본시장이 침체되고 업계 수익기반이 악화된 점을 감안해 신규 업무 인가를 단계적으로 구분해 실시키로 했다. 우선 1단계에서는 기존 업무와의 연관이 높고 시장리스크가 낮은 업무만 승인해준다.
증권사나 선물사가 위험도 낮은 장내파생상품 매매·중개업을 추가하거나, 자산운용사가 취급대상 상품을 늘리는 것이 여기에 해당된다. 펀드를 설계하는 자산운용사가 직접 판매를 하기 위해서 투자매매업을 신청하는 경우도 승인 가능성이 높다.
증권사가 퇴직연금 업무를 위해 신탁업을 추가하는 등 정책적으로 허용할 필요가 있는 경우도 포함된다.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전문 운용사 등 특화된 회사의 신설하는 것도 긍정적으로 검토된다.
◆고위험 업무는 연내 승인 어려워
금융위는 이같은 1단계 인가 작업이 시장에서 정착되고 금융위기가 호전되는 상황을 보면서 2단계 인가에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2단계 인가 대상은 장외파생상품 취급 같은 고위험 분야, 증권·선물사와 자산운용사간 겸영 신청 등 이해상충 문제가 발생할 수 분야 등이다.
금융지주회사 내에서 이미 갖추고 있는 업무를 추가하는 경우에도 2단계 인가 대상으로 분류된다. 예를들어 우리투자증권·한국투자증권·하나대투증권 등이 자산운용 겸영을 신청할 경우, 같은 지주회사내에 이미 운용사가 있는 만큼 우선 순위에서 제외시킨다는 얘기이다. 1단계 인가대상에 해당되지 않는 업무나 신설 허용 등도 2단계로 분류돼 후순위로 밀린다.
홍영만 정책관은 "2단계 인가 방향은 하반기 중에 구체적인 방향을 마련해 발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따라 예비인가·본인가 등 심사기간을 감안하면 2단계 인가 대상은 사실상 연내 승인을 받기 어려울 전망이다.
금융위는 다만 현재 자산운용업 신규 인가를 신청하고 예비인가를 받은 6개사는 예정대로 심사를 진행키로 했다.
홍 정책관은 “질적 심사를 엄격하게 해서 진짜 들어올 만한 자격을 가진 회사가 들어와서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해 나갈 것”이라며 “신설을 추진하면서 당국의 심사를 받는 것이 부담스러우면 경영판단에 따라 M&A를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수익 기자 sipar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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