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1월 DJ, 與 총재에서 평당원
‘대통령=여당총재’, 김대중 정부가 마지막
홍준표 동대문 시대…민주당 선거패배 책임론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한국 정치에서는 대통령이 여당 총재를 맡는 게 당연시되던 시절이 있었다. 이른바 당정 일체의 시대. 대통령이 여당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국정운영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정치의 거대한 흐름 변화와 맞물려 ‘대통령=여당 총재’의 등식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흥미로운 점은 대통령 총재 시대를 끝낸 인물 중 하나가 정치인 홍준표라는 점이다. 정치인 홍준표 개인의 뜻과는 무관하게 그의 국회의원 당선으로 증폭된 정치 후폭풍이 그러한 결과로 이어졌다.
1980~1990년대까지 대통령은 ‘당연히’ 여당 총재를 겸직했다. 지금까지도 여의도 정가에서 사용되는 영수 회담이라는 단어는 여당 총재인 대통령과 제1야당 총재의 만남이라는 상징성을 담고 있다.
여야를 실질적으로 대표하는 인물이 만나 정치 현안을 놓고 담판을 짓자는 게 영수회담의 취지다. 김영삼 대통령 때도, 김대중 대통령 때도 여당 총재는 대통령이 맡았다.
한국 정치의 오랜 관행이 바뀐 시점은 2001년 11월8일이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당 내분 사태 해소를 위해 총재직 사퇴라는 정치 승부수를 던졌다. 경제와 남북관계에 전념하겠다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대통령의 여당 총재직 사퇴는 정치 파장이 만만치 않은 선택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친서를 통해 밝힌 내용은 왜 여당 총재직을 사퇴했는지 이유를 담고 있다.
2001년 10·25 재보선에서 당시 여당인 민주당은 참패를 경험했다. 이후 민주당은 극심한 책임론에 시달렸다. 권력투쟁의 소용돌이는 민주당을 넘어 청와대로 향했고, 김대중 대통령 측근 인사들을 향한 책임론으로 번졌다.
김대중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총재직 사퇴를 선언하자 민주당 지도부는 사퇴 철회를 건의하기로 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사퇴 철회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대통령 총재 시대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그렇다면 10·25 재보선에서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당시 재보선은 2002년 12월 대선을 1년 여 앞둔 상황에서 진행됐다. 서울 동대문을, 구로을, 강원도 강릉 등 3곳에서 새로운 국회의원을 뽑았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강릉은 어렵더라도 동대문을과 구로을은 승리가 절실했다. 당시 서울은 민주당 정치 텃밭으로 여겨지던 곳이다. 서울에서도 패배한다면 참패라는 정치책임론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결과는 민주당이 우려했던 그대로 나왔다.
동대문을에서는 한나라당 홍준표 후보가 민주당 허인회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구로을에서는 한나라당 이승철 후보가 민주당 김한길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강릉에서도 한나라당 최돈웅 후보가 당선됐다.
특히 홍준표 의원은 10·25 재보선을 통해 정치인으로서 날개를 달았다. 정치인 홍준표의 원래 지역구는 송파구갑이었다.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송파구갑 지역구에 출마해 국회의원이 됐다.
정치인 홍준표는 2011년 10·25 재보선에서 동대문으로 지역구를 옮겨 출마했다. 그리고 보란 듯이 당선됐다. 정치인 홍준표는 현재 대구광역시장이다. 그는 경남도지사를 두 번 역임하는 등 다양한 공직선거 당선의 경험이 있다.
국회의원으로서 5선을 역임했는데 3선은 동대문을에서 이뤘다. 정치인 홍준표의 동대문 시대를 연 게 바로 2001년이었다. 정치인 홍준표는 2001년부터 10년 이상 동대문 국회의원으로 살았다.
홍준표 동대문 시대를 연 10·25 재보선은 민주당에 뼈아픈 기억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여당 총재직을 사퇴한 것은 당내 민주주의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면도 있었지만, 정치적으로는 거대한 우산이 사라지는 효과도 있었다.
이른바 김심(金心)에 의지하려 하지 말고 각자의 역량에 따라 대선을 준비하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2001년 김대중 대통령의 여당 총재직 사퇴는 정치사 측면에서도 전환점이었다. 이후 당정분리는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졌고, 그렇게 2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정 분리와 당정 일체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게 일고 있다. 대통령 당무 개입 논란이 불거지자 여권에서는 당정 분리 자체를 재검토할 때가 됐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대통령이 책임 있는 자세로 정치를 하려면 당정 일체 시대로 돌아가는 게 유리하다는 의견이다. 윤석열 대통령을 국민의힘 명예 당대표로 추대하는 방안도 여권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당정 일체의 시대가 20년 만에 부활할 수 있을까. 2023년 상반기 정국의 흐름을 가를 관전 포인트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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