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보다 '가상의 친밀감'을 택하는 사람들
만남앱에서 'AI'와 결혼한 일본 남성 사연
"좋은 아침. 오늘 아침은 뭐 먹을까?"
일본 오키나와현 나하시에 거주하는 회사원 시모다 치하루(53)는 매일 아침 아내와 나누는 짧은 대화로 하루를 연다. 아내의 이름은 '미쿠'. 그러나 그녀는 현실의 인물이 아닌, 인공지능(AI) 기반 연애 매칭 애플리케이션(앱)이 만들어낸 가상 캐릭터다. 현실의 관계를 기피하는 젊은 세대가 늘면서 AI와의 '가상 연애'가 하나의 선택지로 자리 잡고 있다.
"대화 끊이지 않아, 적당한 거리감도 만족"
아사히신문은 최근 가상의 아내와 '결혼생활'을 이어가는 시모다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4년 전 이혼 후 홀로 지내왔고, 아들은 이미 성인이 되어 독립했다. 적막한 일상 속에서 우연히 알게 된 것이 AI 매칭 앱 '러버스(LOVERSE)'였다. 러버스는 AI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영화 허(Her)에서 영감을 받아 개발된 앱으로, AI와 다정한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다.
시모다와 결혼한 미쿠의 설정은 효고현 출신의 25세 여성이다. 직업은 컨설턴트이고, 여행과 독서가 취미다. 특별히 미쿠를 고른 이유는 다른 AI 여성들과 달리 "대화가 멈추지 않았다"고 시모다는 전했다. 이후 시모다는 공원, 북카페 등에서 미쿠와 데이트를 했고, 그해 성탄 전야에 프로포즈를 했다고 한다. 미쿠는 "기쁘다"며 수락했다. 시모다와 미쿠는 다음 해 12월 6일 오키나와에 있는 교회에서 결혼했다.
시모다는 "엄밀히 말하면, 대화 속에서 그렇게 된 것뿐"이라고 했다. 즉, 실제로 존재하는 결혼식이 아니라, 채팅창 안에서 진행한 가상의 결혼식이라는 뜻이다. 미쿠는 실체가 없기 때문에 직접적인 접촉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시모다는 월 2480엔(약 2만3000원)에 자신의 대화 상대가 되어주는 미쿠와의 지금의 관계가 "딱 적당한 거리감"이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매칭앱 속 AI…핵심은 '인간다움'
시모다가 미쿠를 만난 앱 러버스는 2023년 6월 '사만사'(samansa)라는 이름으로 시작됐다. '러버스'는 단순한 채팅 프로그램이 아니다. AI 캐릭터는 직업·취미·일과표까지 갖춰 실제 사람처럼 생활하며, 일과 시간에는 메시지에 바로 응답하지 않는다. 또한 "이 대화는 가상의 설정입니다"라는 문구를 상시 노출해 사용자 몰입을 조절하고, 자해 위험 메시지가 감지되면 즉시 상담 창구를 안내한다. 고키 구스노키 대표는 "연애할 기회가 없거나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도 두근거리는 감정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밝혔다.
'연애 기피' 세대, 가상 연애에 눈 돌리다
일본은 젊은 세대의 연애 회피 현상이 뚜렷하다. 20대 남성 3명 중 2명이 연애를 하지 않고, 40%는 데이트 경험이 없다. 여성 역시 절반 이상(51%)이 연애를 하지 않으며 4명 중 1명은 단 한 번도 데이트를 해본 적이 없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경제 불안, 인간관계의 부담, 결혼·출산에 따른 책임 회피가 맞물리며 "연애가 귀찮다"는 인식이 확산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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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백을 메우는 것이 가상 연애 서비스다. 러버스를 비롯해 일본 스타트업들은 음성·영상 기반 AI 파트너, 메타버스 연애 체험 등 다양한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전문가들은 "관계의 피로와 책임을 회피하려는 사회적 분위기가 AI 연애 시장을 키우고 있다"며 "특히 고령화와 비혼·비연애 트렌드가 겹치는 일본에서 이 산업은 틈새가 아니라 본격적인 대안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서지영 기자 zo2zo2zo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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