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산업·한솔제지 연달아 사망사고
李 강경 대응 하루 만에 한솔제지 압수수색
중처법 적용 제지 업계 첫 사례될 수도
이재명 대통령이 산업재해 사망사고를 '미필적 고의'로 규정하며 산업현장의 안전관리 문제가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가운데 제지 공장에서도 잇따라 사망사고가 발생하며 업계의 긴장이 고조되는 분위기다.
3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고용노동부와 경찰은 최근 제일산업 안성공장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에 대한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제일산업은 아세아제지 계열사 중 한 곳으로 골판지 상자를 제조·가공하는 업체다.
수사 당국에 따르면 지난 22일 이 공장에서 근무하던 30대 원청 소속 근로자가 골판지 원지를 운반하는 설비에 오류가 생긴 것을 인지하고 인근으로 다가갔다가, 급작스레 움직인 설비와 벽 사이에 상반신이 끼여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숨졌다. 경기고용노동청은 해당 업체가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을 위반했는지 등을 살펴 추가 조처를 할 방침이다.
이런 가운데 전날 오전에는 대전경찰청 등 수사당국이 한솔제지 대전 신탄진공장과 서울 본사를 대상으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지난 16일 한솔제지 대전 공장에선 원청 소속 30대 근로자가 폐지를 나르던 과정에서 폐지 파쇄 설비 위에 있던 개폐기 구멍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채 추락해 사망했다.
수사 결과, 해당 개구부에는 근로자 추락을 방지할 안전망이 설치돼 있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수사당국 관계자는 "사고가 발생한 기계에 추락 방지 장치가 없었을 뿐 아니라, 안전장치가 일부 미흡했던 점들을 발견하고 수사 중"이라며 "사안이 심각한 만큼 엄중하게 살피겠다"고 말했다.
제지 업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한솔제지가 중대재해처벌법 및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날 경우, 수사 결과에 따라 안전 책임자뿐 아니라 대표 및 회장 등 다른 임직원들까지 줄줄이 사법처리될 가능성이 있어서다. 한솔제지가 중처법으로 사법처리 된다면 업계 내 중처법 적용의 첫 사례가 된다.

한솔제지가 업계를 대표하는 기업인 만큼 향후 수사 등의 경과에 따라 제지 업계 전반이 크게 경직될 수 있단 전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한솔제지는 제지업계에서도 작업자 안전 교육과 수칙 준수가 우수한 기업에 해당한다"며 "이보다 규모가 작은 중소 업체의 경우 아무리 안전 관리에 만전을 기한다고 해도, 불시에 발생할 수 있는 사고에 대해 우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이 반복적인 산업재해를 강하게 질타한 뒤 하루 만에 이뤄진 고강도 수사라는 점도 주목받는다. 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산업재해가 반복적으로 발생한 기업에 징벌적 배상, 대출 규제 강화 등의 고강도 제재를 예고한 바 있다.
제지산업은 대형 설비가 많아 끼임과 추락사 등 산재 발생 위험이 높은 산업으로 분류된다. 지난해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목재 및 종이 제품 제조업'의 재해 발생률과 사망 만인율(인구 1만명 당 사망자 수의 비율)은 각각 1.32%, 1.53%로 전체 제조업 평균(0.6%, 0.46%)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제일산업·한솔제지 사고 외에도 올해 제지 공장에선 대형 사고가 잇따랐다. 지난 5월엔 전주 한 종이 공장의 맨홀에서 작업하던 근로자 2명이 질식해 숨졌고, 같은 달 전주페이퍼 공장에선 근로자 3명이 종이 찌꺼기(슬러지)를 건조하던 중 뿜어져 나온 재에 전신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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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제지 업계에서 상당히 규모가 큰 기업조차 후진국형 중대 재해를 피하지 못했다는 건 다른 기업들의 경우 상황이 더 안 좋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며 "안전 관리자뿐 아니라 현장 근로자들에게까지 안전 의식이 고취되고 이를 위한 교육을 강화해야 하며, 무엇보다 기업이 근로자 안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서희 기자 daw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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