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파월에 "당장 금리 내려라" 또 압박
관세 불확실성에 통화정책 독립성 침해 우려
美 주식·국채·달러 '트리플 하락'
트럼프 리스크에 美 경제 신뢰 흔들
미국 주식과 국채, 달러 등 3대 자산이 동반 하락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폭격에 이어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을 향해 거듭 금리 인하를 압박하며 통화정책 독립성을 흔들자, 투자자들이 세계 최고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미 국채와 달러까지 팔아치우며 '셀 아메리카(Sell America)'가 가속화되는 양상이다. 미국 경제에 대한 굳건한 신뢰가 흔들리면서 미 경제만 호황을 누릴 것이란 '미국 예외주의' 전망 역시 빠르게 자취를 감추고 있다.
트럼프, 파월에 "패배자" 맹비난…"당장 금리 안 내리면 경기 둔화"
트럼프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파월 의장을 '패배자' '미스터 투 레이트(Mr. Too Late·너무 늦는 남자)'라고 공격하며 선제적인 금리 인하를 또다시 압박했다. 그는 이날 자신이 만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사실상 인플레이션은 발생하지 않고 있다"며 "에너지 비용이 내리고, 바이든(조 바이든 전 대통령)의 계란 재앙을 비롯해 식품 가격도 상당히 낮아졌다. 다른 대부분의 것들도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주요 패배자인 미스터 투 레이트가 지금 당장 금리를 인하하지 않는다면 경제가 둔화될 수 있다"며 "유럽은 이미 7번이나 금리를 인하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파월은 선거 기간 '졸린 조 바이든(훗날 카멀라 해리스)' 당선을 돕기 위해 금리를 인하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언제나 늦었다"며 "그 결과는 어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지난 17일 Fed에 금리 인하를 요구하며 "내가 그(파월 의장)를 아웃(out)시키고 싶다면 그는 정말로 빨리 쫓겨날 것"이라고 해임을 언급한 뒤 나흘 만에 또다시 파월 의장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파월 의장을 향한 공세 수위를 높이면서 시장에선 관세발(發)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금리 인하를 압박하는 동시에 경기 침체가 현실이 될 경우 파월 의장에게 책임을 돌리려는 포석이 깔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뿐 아니라 참모진도 파월 의장 해임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있다.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지난 18일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팀은 그 문제를 계속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초까지 파월 의장 해임을 논의했으며 케빈 워시 전 Fed 위원을 후임으로 선임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으로 Fed는 통화정책 경로를 놓고 딜레마에 놓였다. 관세 충격으로 스태그플레이션(물가 상승 속 경기 둔화) 전망이 고개를 들면서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에 동시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금리 인하를 압박하지만 관세 인상으로 수입 물가가 치솟고, 소비자 가격이 인상될 경우 Fed는 물가 안정을 위해 금리를 동결하거나 심지어 올려야 할 수도 있다.
美 주식·국채·달러 '트리플 하락'…셀 아메리카 러시
트럼프 대통령이 연일 '파월 때리기'에 나서자 이날 미국 금융시장에서는 주식, 국채, 달러 등 3대 자산이 일제히 급락하는 트리플 약세 현상이 가속됐다. 위험자산인 주식과 안전자산인 미 국채와 달러의 동반 하락은 이례적이다.
이날 글로벌 채권 시장에 따르면 미국 동부시간 오후 5시5분 기준으로 미 국채 30년물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9bp(1bp=0.01%포인트) 뛴 4.9%를 기록 중이다. 글로벌 채권 금리 벤치마크로 여겨지는 미 국채 10년물 금리 또한 전일 대비 9bp 급등한 4.41%선에서 오가고 있다. 국채 금리는 가격과 반대로 움직인다. 장기물을 중심으로 한 국채 금리 상승은 투자자들이 만기가 긴 국채를 팔아치우고 있다는 의미다. 미 경제에 대한 투자자들의 중장기 전망과 신뢰가 흔들린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달러도 하락해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전 거래일보다 1.01% 내린 98.13을 기록 중이다. 3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뉴욕증시도 일제히 급락 마감했다.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다우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2.48% 내렸고, S&P500지수와 나스닥지수는 각각 2.36%, 2.55% 미끄러졌다.
반면 안전자산인 금 수요가 확대되면서 금 선물 가격은 온스당 3400달러를 돌파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관세 정책 불확실성 속에 무역 협상에서는 뚜렷한 진전이 없고, 통화정책 독립성 침해 우려까지 증폭되면서 투자자들이 달러 표시 자산에서 일제히 이탈하는 셀 아메리카 현상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를 공식 발표한 2일 이후로 미 국채 30년물과 10년물 금리는 각각 40bp, 30bp가량 뛰었고 달러 인덱스는 5% 넘게 하락했다. S&P500지수는 9% 넘게 빠졌다. 특히 최후의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는 미 국채에서 투자자들이 이탈한 것은 미 경제에 대한 신뢰, 기축통화국으로서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노무라 증권의 고토 유지로 외환 전략가는 "미국과 같은 주요 기축통화국에서 국채 매도와 통화 가치 하락이 동시에 나타나는 건 이례적"이라며 "미국 경제에 대한 스태그플레이션 우려와 미국 자산에 대한 불신이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월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통화당국의 독립성을 지속적으로 침해하면 미 국채와 달러, 주식 투매가 가속화되고 금융 시장 혼란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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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코어 ISI의 크리슈나 구하 글로벌 정책·중앙은행 전략팀 총괄은 "만약 실제로 Fed 의장을 해임하려 한다면 채권 금리 상승, 달러 하락, 주식 매도 등 시장에서 심각한 반발이 예상된다"며 "정부가 실제로 그런 일을 하려고 한다는 걸 믿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Fed의 독립성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Fed가 금리를 인하할 수 있는 기준을 높이는 일이 된다"고 언급해 트럼프 대통령의 공개적인 금리 인하 압박은 오히려 Fed를 금리 인하에 소극적으로 나서게 할 수 있다고 봤다.
뉴욕(미국)=권해영 특파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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