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성 갖춘 손해액 기준 산정
경제학·심리학·뇌과학 등 이용
새로운 가이드라인 마련 시급
대구지법 포항지원은 2023년 1월 커피를 사기 위해 드라이브 스루(고객이 차량에 탑승한 상태에서 음식료를 구입하는 방식) 매장의 커피숍에 방문해 커피를 받는 과정에서 뜨거운 커피가 왼쪽 허벅지 쪽으로 쏟아져 엉덩이와 다리에 2도 화상을 입은 A 씨에게 커피숍 측이 580여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2022가단100293). A씨 측은 2200여만 원을 지급하라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으나 재산상 손해액의 80%와 위자료만 인정됐다. 서울동부지법은 2024년 1월 성기 확대 수술을 받다가 절단되는 손상을 입은 남성 B 씨에게 의사가 2400여만 원을 지급하라고 했다. 이중 남성의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는 2000만 원이 인정됐다. 이 사건에서 B씨는 5700여만 원을 지급하라고 주장했다.
유사한 사례에서 미국은 위자료를 더 많이 인정하고 있다. 3월 14일(현지시각) CNN 등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고등법원 배심원단은 스타벅스 직원으로부터 뜨거운 음료를 건네받던 중 음료가 쏟아져 하반신에 화상을 입은 배달기사에게 스타벅스가 5000만 달러(한화 약 727억 원)를 배상하라고 평결했다. 2020년 LA의 한 스타벅스 드라이브 스루를 찾은 배달 기사는 스타벅스 직원에게서 음료를 받던 중 뜨거운 음료가 무릎에 쏟아져 화상을 입었다. 이 사고로 허벅지 안쪽 3도 화상을 입고 성기의 신경이 손상되는 등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재판에서 가르시아 측은 "사고 이후 신체적, 정신적 고통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앓고 있다"고 했다.
위자료, 해외와 100배 이상 차이나
한국의 위자료는 해외 사법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현저히 적다. 유사한 피해를 봐도 미국 법원에서 인정되는 액수와 비교했을 때 많게는 100배 이상 차이를 보인다.
미국에서는 이따금 천문학적 금액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단이 나온다. 미국 기업들은 중대한 과실로 인해 고액의 위자료를 물 수 있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노력을 기울인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미국 스타벅스의 사례는 심한 화상과 성기 손상 등이 고려돼 더 많은 위자료가 인정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사망한 경우 1억 원 정도로 굳어져 있어 그 이상의 금액이 법원에서 인용되기는 어렵다"며 "위자료 액수가 현저하게 적기 때문에 어느 정도 금액이 인정되더라도 당사자의 신체적 손해는 물론, 정신적 손해는 전보(塡補)되지 않고 오히려 정신적 충격이 더해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비재산적 손해배상의 핵심으로 꼽히는 위자료는 민사 사건은 물론 관련 형사 사건에도 영향을 미치지만, 지난 10년 간 추가적인 논의가 사실상 없었다. 교통사고를 예로 들면 2016년 법원행정처에서 마련한 '불법행위 유형별 적정한 위자료 산정 방안'을 참고하면 교통사고의 경우 사망 피해자의 위자료는 1억 원을 기준금액으로 하고, 노동능력상실률을 곱한 뒤 피해자 과실의 80%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위자료를 산정한다. 특별 가중 사유가 존재하면 최대 2억 원까지 기준 금액을 가중할 수 있다. 서울중앙지법 교통·산재실무연구회는 2017년 2월 음주 운전이나 뺑소니 교통사고 사망자에 대한 위자료 기준금액을 1억5000만 원으로 상향했다.
영국, 프랑스 위자료표 활용
박혜진(44·사법연수원 37기) 한양대 로스쿨 교수는 "보건경제학은 사망 위험을 감소시키기 위해 사람들이 얼마나 지불할 의사가 있는지를 측정해 삶의 가치를 추산하는데, 이를 'VSL(Value of Statistical Life)'라고 한다"며 "한 사람이 상해나 질병의 영향을 받은 특정 건강 상태에서 1년을 사는 것의 가치를 수치화한 'QALY(Quality Adjusted Life Years)' 등을 적용해 도출한 위자료와 실제 위자료를 비교해 현재 위자료 액수가 적정한지를 가늠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영국은 법원이 참고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있다. 이 가이드라인은 총 255개의 상해 유형에 대해 손해배상금의 범위를 제공하고, 사법연구위원회(Judicial Studies Board, JSB)가 주기적으로 개정한다. 프랑스 법원은 상해가 안정화되기 전(pre-consolidation), 안정화 시점(consolidation date), 안정화 이후(post-consolidation)로 구분하고, 1~7등급의 상해의 심각도를 기준으로 배상액을 결정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법원, 개선안 연구 착수
법원도 위자료 현실화에 공감하고 적극적으로 개선안 마련에 나섰다. 손해배상소송연구회는 손해배상 수준, 위자료 산정 방안 및 액수 등에 관한 실무적 타당성을 점검·개선하고자 2023년 9월 개설됐다. 당초 법원 내 젊은 판사들 주축의 소규모 연구 모임이었는데, 출범 1년 만에 법원의 정식 연구회로 승격됐다. 사법정책연구원(원장 이승련)도 위자료 산정 방안 등에 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수도권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단발적인 연구 및 개선이 아니라, 물가 변동률과 사회 변화 등을 고려해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개선해야 사법 신뢰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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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현 법률신문 기자
※이 기사는 법률신문에서 제공받은 콘텐츠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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