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 실적 늘었지만…"일시적 성과" 자평
회계규율·상생경영 등 감독당국 리스크 여전
유럽·북미 사업도전…모멘텀 확보 '안간힘'
지난해 역대 최대 순이익을 기록한 손해보험사들의 표정이 밝지 않다. 이 같은 실적이 새로운 회계제도안 IFRS17의 영향인 데다, 올해는 금융 감독당국의 가이드라인이 달라져 보험사들의 실적 하락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건전성 지표 관리 부담도 커졌고, 주력 사업인 자동차 보험 손해율도 높아져 수익성 유지도 어려워졌다. 손보사들은 보험서비스계약마진(CSM) 판매실적을 늘리고 아시아·북미·유럽 관리 조직을 강화하는 등 성장 동력(모멘텀) 강화에 사활을 걸었다.
24일 손보업계에 따르면 5대 손보사(삼성화재·DB손해보험·메리츠화재·현대해상·KB손해보험) 모두 지난해 역대 최대 순이익을 기록하고도 올해 경영 환경이 좋지 않아 바짝 긴장한 상태다. 5대 손보사 지난해 순이익은 7조4297억원으로 전년(6조4523억원) 대비 1조원가량 증가했다. 5대 손보사 순이익이 7조원을 넘은 것은 처음이고 5개사 모두 역대 최대 순이익을 경신했다.
손보사 대부분 지난해 호실적에 대해 장기 보험 손익을 늘린 결과라고 했다. 장기 보험 손익을 1년 새 3.5배(250%)가량 늘린 현대해상 관계자는 "실손보험 요율 인상 효과 등으로 손실부담 계약 관련 비용이 감소했다"고 말했다. 업계 1위 삼성화재 관계자도 "상품 경쟁력 강화와 적극적 채널 대응 전략을 통해 1년 새 CSM을 14조739억원으로 5.8%(7711억원) 늘렸다"고 했다. CSM은 보험사 미래 수익성을 가늠하는 지표다. 쉽게 말해 영업을 잘해서 주력 상품을 잘 팔았다는 이야기다.
다만 업계에서는 "의미 없는 실적"이라고 평가한다. 회계 착시에 따른 단기 성과일 뿐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회계 규율이 강해지면서 회사 수익성을 좌우하는 CSM 실적 위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2023년 도입한 새 회계기준(IFRS17)에서는 보험사 재무 성과가 계리(보험사의 회계)적 가정에 따라 달라진다. IFRS17 제도하에서는 무·저해지 보험의 경우 보험사가 해지율을 높게 잡는다. 미래에 나갈 보험금이 줄어든다는 가정을 깔고 회계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보험사의 실적이 상승하게 된다. 이 같은 고무줄 통계 논란으로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11월 보험사들의 자의적 회계 관행을 규율하기 위해 무·저해지 보험 해지율 가이드라인 카드를 꺼냈다. 이에 올해 손보사들이 해지율을 보수적으로 가정하면 CSM 실적, 건전성 지표 등이 나빠질 것이란 우려가 큰 상황이다.
실제로 5대 손보사 지난해 건전성 지표는 낮아졌다. 지난해 5대 손보사 지급여력비율(KICS·킥스)을 보면 메리츠화재만 전년 대비 5.4%포인트 오른 247.6%를 기록했다. DB손해보험 -31.6%포인트(201.5%), KB손해보험 -27.8%포인트(188.1%), 현대해상 -17.3%포인트(155.8%), 삼성화재 -8%포인트(265%) 등은 줄줄이 하락했다. 킥스는 보험사가 고객에게 보험금을 제때 줄 수 있는 수준을 측정한 수치로, 주요 건전성 지표다.
현대해상 관계자는 "보험부채 할인율 인하 및 시장금리 하락에 따라 자본이 감소한 데다 무·저해지보험 해지율 가정을 강화하면서 킥스가 낮아졌다"며 "자산 잔존만기(듀레이션) 확대, 자본성 증권 발행, 출재 추진 등을 통해 킥스 관리를 강화할 예정"이라고 했다.
차 보험 손해율이 높아진 것도 근심거리다. 지난해 5대 손보사 차 보험 누적 손해율은 83.18%로 전년 대비 3.16%포인트 상승했다. 손해율은 보험사가 받은 보험료 대비 지급한 보험금 비율로 업계는 80~82%를 적정손해율로 본다. 82%를 넘기면 적자라는 뜻이다. 한파·폭설 등으로 사고가 늘면서 고객에게 지급할 보험금은 느는데 4년 연속 차 보험료율을 낮추면서 손해율이 나빠졌다는 설명이다. 손보사들이 손해율이 오를 걸 알면서도 일제히 차 보험료율을 낮춘 데 대해 업계에서는 감독당국의 상생금융 정책 기조에 발을 맞추기 위한 제스처로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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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경영 악재에도 손보사들은 건강·암보험 등 보장성보험 판매를 늘리면서 CSM 수익성을 보전하고 해외 사업 조직을 개편하며 중장기 모멘텀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삼성화재는 이문화 최고경영자(CEO)가 지난달 22일 '초격차 2.0' 전략을 제시하며 북미·유럽 시장에 도전해 보겠다고 출사표를 던져 주목을 받았다.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일부 국가에서 사업 중인 경쟁사들을 해외 영업에서 확실하게 앞서나가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북미·유럽은 삼성화재 투자사인 영국 손해보험사 로이즈를 중심으로 사업한다. 아시아는 싱가포르 재보험법인 '삼성리(삼성Re)' 중심으로 시장 공략 속도를 높인다. '투트랙' 전략을 통해 글로벌 비즈니스 밸류체인을 본격적으로 만든다는 방침이다. 업계 2위 DB손보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DB손보는 지난해 말 기존 해외전략파트와 해외관리파트의 상위 조직 해외전략본부를 신설하고 미국 영업과 베트남·중국 사업을 강화했다.
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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