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경상수지 흑자 990.4억달러 예상 상회
2015년(1051.2억달러) 이후 9년來 최고치
올해 수출 증가세 둔화 우려…800억달러 흑자 예상
지난해 우리나라 경상수지 흑자가 전망치를 웃돌며 990억달러를 돌파, 역대 2위 기록을 세웠다. 반도체 수출 호조에 힘입어 2015년(1051억2000만달러) 이후 9년 만에 최고치를 달성했다. 다만 올해는 글로벌 저성장 기조와 트럼프발 고관세 정책에 수출 증가세가 둔화하면서 작년보다 흑자폭이 줄어들 전망이다.
작년 경상흑자 990.4억달러…수출 역대 최대
6일 한국은행 국제수지(잠정)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연간 경상수지 흑자는 990억4000만달러로 집계됐다. 당초 한은이 예상한 900억달러를 초과 달성했을 뿐 아니라 2016년(979억2000만달러) 기록 역시 뛰어넘었다. 올 초 지난해 11월 국제수지 발표 당시 한은이 연간 흑자 900억달러를 무난히 달성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시장은 그 규모를 2015년, 2016년의 뒤를 잇는 역대 세 번째 수준으로 전망한 바 있다. 직전해인 2023년 328억2000억달러 기록과 비교하면 3배를 넘어섰다.
경상수지 흑자폭이 예상치를 뛰어넘은 것은 인공지능(AI) 관련 반도체 수요 확산에 따른 수출 호조 등의 영향이다. 상품수출은 화공품, 철강, 석유 부진이 지속된 가운데서도 AI 관련 IT 품목을 중심으로 통관 수출이 확대되면서 6962억달러를 돌파,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상품수입은 IT 수입 중심으로 원자재와 소비재가 줄면서 2년 연속 감소했다. 덕분에 지난해 상품수지 흑자는 1001억3000만달러로 대폭 확대, 2018년(1100억8000만달러) 이후 최고치를 나타냈다. 신승철 한은 경제통계1국장은 "본원소득수지가 견조한 흐름을 이어간 가운데 상품수지가 흑자를 기록한 영향"이라며 "IT품목 중심으로 가격과 물량 모두 증가하면서 상품수출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12月 경상흑자 123.7억달러…역대 세 번째
12월 경상수지는 123억7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20개월 연속 흑자 행진이자, 2024년 6월 131억달러, 2016년 6월 124억1000만달러 이후 역대 세 번째 기록이다. 12월 기준 역대 최대 기록이기도 하다. 전년 동기 89억3000만달러 흑자와 비교하면 34만4000만달러 늘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 호조세가 이어진 가운데 배당소득이 늘면서 본원소득수지 흑자폭이 크게 확대된 점이 주효했다.
경상수지 흑자를 이끈 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상품수지다. 지난해 12월 상품수지는 104억3000만달러로 전월(563억달러)보다 흑자 규모가 확대됐다. 상품수지는 2023년 3월 이후 22개월 연속 흑자 기록을 쓰고 있다. 이 기간 수출은 633억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6.6% 증가했다. 반도체 중심으로 증가세가 이어졌다. 지난해 12월 반도체 수출 규모(통관기준)는 146억20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30.6% 늘었다. 정보통신기기 역시 38억5000만달러로 37.0% 증가했다. 석유제품(-11.9%), 기계류·정밀기기(-6.3%), 승용차(-5.8%) 등은 감소세가 줄었다.
수입은 548억8000만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3.3% 증가했다. 원자재(-9.6%) 감소세가 지속됐으나 반도체제조장비 등 자본재(24.4%)의 증가세가 확대되고 소비재(1.2%)가 증가 전환하면서다. 에너지류(-18.2%)를 제외하면 전년 동월 대비 12.2%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서비스수지는 여행, 기타사업서비스 등을 중심으로 21억1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연말·겨울방학을 맞아 해외여행이 성수기에 접어들면서 여행수지(-9억5000만달러)가 전월(-7억6000만달러)과 비교해 적자폭을 키웠다. 본원소득수지는 증권투자 배당소득을 중심으로 47억6000만달러 흑자를 나타냈다. 2022년 12월(5613억2000만달러) 이후 최대치다. 이전소득수지는 7억1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자산에서 부채를 뺀 금융계정 순자산은 93억8000만달러 늘었다. 직접투자는 내국인 해외투자가 69억5000만달러 증가했고 외국인 국내투자는 12억3000만달러 늘었다. 증권투자는 내국인 해외투자가 주식을 중심으로 8억6000만달러 증가한 반면 외국인 국내투자는 주식을 중심으로 38억달러 줄었다.
올해 수출 증가세 둔화 영향…800억달러 흑자 예상
문제는 수출 전선에 먹구름이 낀 올해다. 글로벌 저성장 기조와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발 관세 폭탄에 대한 우려가 여전한 상황이다. 수출 증가세가 둔화한 상황에서 원자재와 소비재 수입이 함께 줄어들며 나타나는 '불황형 흑자'라는 점 역시 우려되는 대목이다. 한은이 전망하는 올해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800억달러다. 지난해보다 규모는 줄었으나 여전히 높은 수준을 기록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신 국장은 "경상수지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상품수지 내 수출이 15개월 연속으로 증가세를 유지하면서 수출규모 자체가 높은 수준이라 기술적으로 낮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경상수지 흐름에서 가장 큰 리스크 요인은 미국 트럼프 정부의 통상정책으로, 여기에 주요국이 어떻게 반응하느냐도 중요하다. 신 국장은 "시기와 강도를 계속 점검해야 한다"며 "미국의 통상 압력이 커지면 대응 차원에서 에너지 수입을 늘릴 가능성도 있어 이 역시 경상수지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와 IT의 경기 상황, 미·중 무역 정책, 최대 수출국인 중국의 경기 상황, 내수 상황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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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역시 올해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지난해에 비해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에는 반도체나 선박 등에서 수출 호조를 보이며 경상수지 흑자를 끌어왔으나 올해는 상황이 녹록지 않다"며 "트럼프발 관세 영향도 있고 환율 문제도 있어 수출 쪽에서 감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흑자기조는 이어가겠지만 흑자폭은 줄어들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역시 "올해는 수출이 지난해보다 줄어들 가능성이 크고, 경기가 침체하면서 수입도 줄어들 수 있다. 흑자는 유지하겠지만 흑자폭은 지난해보다 소폭 감소할 수 있다"고 봤다.
김유리 기자 yr61@asiae.co.kr
김혜민 기자 hm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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