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랑, 아티스트 그룹 잇은 기획전 'inter-'
홍정욱·김효정 협업 기반 시각예술 그룹
언어적 소통 없이 시각적 소통 만으로 작업
철저한 협업을 지향하되, 상황과 우연성에 따르는 두 작가의 공동 작업. 입체와 평면의 조화로 시각적 리듬을 만들어내는 아티스트 듀오 잇은(itt-eun)이 예술을 모색하고 행하는 과정 속 '사이'에 기반한 탐구와 철학을 관객과 공유한다.
서울 종로구 관훈동 노화랑(대표 노세환)은 아티스트 그룹 ‘잇은(itt-eun)’의 기획전 'inter-'를 9월 14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잇은’의 세 번째 전시로 신작 18점을 선보인다.
‘잇은’은 설치 작업을 하는 홍정욱 작가와 평면 작업을 하는 김효정 작가의 협업을 기반으로 한 시각예술 그룹이다. 시각예술에 있어 개념과 담론의 이해보다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조형미를 추구하는 이들은 2015년부터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룹명 ‘잇은’은 연결을 의미하는 단어 ‘잇다’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는 김효정과 홍정욱 두 작가 간의 연결, 공간과 작품의 연결, 작품과 관객의 연결 등 '이어짐'을 추구하는 작가의 철학을 반영한다.
‘사이’를 의미하는 이번 전시 제목 'inter-'는 두 작가의 협업 방식 속 시각예술을 실현하는 작업 방식과 실험정신을 투영하고 있다.
두 사람의 협업은 '언어적 소통' 없이 오로지 '시각적 관찰'만으로 진행된다. 김효정의 페인팅에 홍정욱의 구조물이 더해지거나, 그 반대의 과정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어떠한 설명도 없이, 상대방이 건네는 조형에 자신의 색을 더하거나 입체적 요소를 더해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한다. 서로의 작업물을 보고 곧바로 조형이 연상될 때도 있지만, 며칠, 몇 주, 심지어 몇 달이 지나서야 문득 영감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럼에도 서로의 작업에 관여하지 않는 이유는 각자의 세계를 존중하며, 개인의 시각성을 최대한으로 발현하기 위함이다. 상대의 의도를 알 수 없는 일방적 의사소통 방식이지만, 서로의 시간과 안목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두 사람 간 거리를 유지하며 예측 불가능한 요소들을 영감 삼아 작업을 확장해 나간다.
이 독특한 협업을 통해 ‘잇은’의 작품은 정형화된 캔버스 틀을 벗어나 있다. 다양하게 확장된 구조의 틀을 바탕으로 점, 선, 면과 같은 도형의 기본 요소들이 교차 배치되고, 틀 밖으로 예민하게 뻗어나간다. 평면적, 입체적 요소들이 상응하며 새로운 조형미를 구성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모빌은 가느다란 선에 매달린 오브제들이 각자 균형을 이루며 공간적, 시간적 요소를 동시에 경험하게 한다. 작품의 와이어와 우드볼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 보면, 입체와 평면이 빚어낸 섬세한 시각적 움직임 속 '잇은'만의 섬세한 디테일을 발견할 수 있다.
홍정욱 작가는 "작품에 대한 마침표는 작업실이 아니라 그것이 연출되는 공간"이라며 환경(situation)과 작품의 연결성에 대해 강조한다. 전시 공간 벽면에 드리워진 그림자와의 조화, 작품 간 거리감, 작품과 관객 사이 교감을 통해 변화하는 상호작용까지 반영한 것이다.
‘잇은’은 시각예술의 본질을 시각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탐구하며, 시각화된 조형미만으로 관객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새로운 작품들을 통해 관객은 ‘잇은’의 조형 언어와 연결되는 경험을 체험하게 된다.
작가와의 일문일답(홍정욱 작가)
Q.'잇은'은 어떤 그룹인가.
A. 입체와 평면의 조화로 시각적 리듬을 만들어내는 아티스트 그룹이다. 설치작가 홍정욱과 평면작가 김효정의 협업을 기반으로 한 시각예술 그룹이다. 개념과 담론의 이해보다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조형미를 추구한다.
Q. 두 작가가 작품 제작 과정에서 협업은 어떻게 하나.
A. 김효정 작가와 저는 작품에 대해 전혀 상의하지 않는다. 작품 안의 캔버스 작업은 거의 대부분 김효정 작가가 진행을 한다. 제가 캔버스를 직접 짜서 갖다 준다. 작업시에는 “하고 싶은 대로 해” 정도로 얘기하고 아무런 조언도, 제약도 없다. 김효정 작가가 작업을 다 끝낸 후 저는 그 작품에 어울리게 프레임을 만들거나 구조를 붙이는 작업을 해서 하나의 작품을 끝낸다. 김효정 작가는 단 한번도 본인이 예상했던 대로 작품이 완결된 적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기대 이상의 뭔가 대단히 재미난 것이 나온다고 얘기한다. 사실 대화나 의논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대에 대한 ‘신뢰’이자 ‘존중’이다.
Q. 그룹명 ‘잇은’은 어떻게 짓게 됐나.
A. ‘잇은’은 연결을 의미하는 단어 ‘잇다’에서 비롯됐다. 작가들간의 연결, 공간과 작품의 연결, 작품과 관객의 연결 등 이어짐을 추구하는 우리의 철학을 반영한다. 또 한편으로는 아들 이름이 ‘이든’이어서 그리 지은 것도 있다.
Q. ‘잇은’을 어떻게 하게 됐고, 개인 활동과 함께 앞으로 계속하나
A. 김효정 작가와 저는 서로 개인전도 하지만,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코로나를 겪으면서 뭔가 자꾸 연결되는 것이 증가하는 것을 느끼게 됐다. 김효정 작가는 내게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반자이다. 그 친구랑 이야기하면서 “나는 2인전은 안지 않는다. 그런 건 재미없고, 한다면 프로젝트성으로 같이 하나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라는 대화를 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거다. 이미 2015년 노르웨이에서 둘이 ‘inter-’라는 프로젝트를 함께 한 것이 코로나 이후 ‘잇은’ 결성의 밑받침이 되었다.
각자 개별 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서로의 미감을 존중하는 선을 지키며 릴레이 형식으로 ‘잇은’을 계속하고자 한다. ‘잇은’ 프로젝트는 온전히 시각만으로 인지할 수 있는 조형을 탐구하는 프로젝트로 구체적 형상과 서사를 버리고 조형의 관계를 실험하고 완성해 나가려 한다.
Q. ‘잇은’의 두 작가가 부부 사이인지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은데, 굳이 내세우지 않은 이유는.
A. ‘부부 작가 2인전’이라는 편견을 가질까봐 조심스러웠다. 보통 ‘부부 작가 2인전’은 서로 각자의 작품을 한 전시에서 보여주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러나 ‘잇은’은 서로 작업에 대해 터치하지 않으면서 완성도 높은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아티스트 그룹이기에 혹여 생길 ‘선입견’을 조금이나마 줄이고자 했다. 또 관객들이 작가의 배경이나 사람 보다는 작품을 오롯이 감상해 주길 원하는 마음이 컸다.
Q. 앞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
A. 아들 이든이 자라서 세사람이 함께 ‘잇은’ 프로젝트를 하면 참 좋을 것 같다(웃음)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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