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식료품값 수요에 반비례
반경기변동적 가격 현상
기업이윤 극대화에도 부합
상품이나 서비스의 시장가격은 어떻게 결정될까? 경제학 입문에서 배우는 바에 따르면 수요와 공급곡선이 만나는 지점에서 시장가격이 형성된다. 만약 수요가 늘어나면 수요곡선이 우상향하게 되므로 시장가격은 자연스럽게 올라가게 된다. 이러한 예측은 상식적으로도 말이 된다. 수요가 증가하면 그만큼 기업이 가격을 높게 매기는 것이 이득이기 때문이다.
비행기 값의 경우는 이 예측이 정확히 들어맞는다. 성수기가 돼 비행기를 이용하려는 사람 수가 많아질수록 항공가격은 올라간다. 집에 대한 수요가 늘면 집값이 상승한다. 하지만 그에 정반대되는 현상도 발견된다. 미국에서는 슈퍼마켓에서 판매되는 식료품이나 공산품의 경우, 수요가 증가할수록 가격이 오히려 내려간다. 예를 들어 더운 여름이 되면 아이스크림 수요가 올라가지만 오히려 아이스크림 가격은 겨울보다 떨어진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반경기변동적 가격(counter-cyclical pricing)이라고 부르고, 이는 경제학에서는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다. 수요가 늘어가는 데 왜 가격은 오히려 내려갈까?
한 가지 가설은 실제로 성수기 때 가격이 내려가는 것이 아니고, 성수기가 될수록 사람들이 싼 물건을 더 많이 사기 때문에 평균 가격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근래에 빅데이터를 이용해서 살펴보니, 완전히 동일한 제품이라도 그 가격이 성수기 때 저렴해진다는 것이 밝혀졌다.
또 한 가지 가설은 기업 간의 암묵적인 담합이 성수기에는 성사되기 어렵기에 담합 실패로 인해 가격경쟁이 심해진다는 설이다. 성수기 때는 담합 가격에서 벗어나서 가격을 낮추면, 비수기보다 훨씬 더 많은 물량을 팔 수 있게 되므로 담합이 어렵다는 점에 기반해서 나온 생각이다. 하지만 이렇게 반경기변동적 가격이 관찰되는 물건들은 비수기라 할지라도 아주 경쟁적인 시장이라 애초에 담합이 어렵다. 따라서 이 가설도 미스터리한 가격변동을 설명하지 못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설이 있다. 경제학 이론과 다르게 현실에서는 기업이 이윤극대화를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고, 성수기인 상품이 주로 미끼상품으로 쓰이기 때문에 성수기 가격이 낮을 수 있다는 가설도 있다.
그런데 최근 실증 연구에서는 새로운 가설이 제기됐다. 알고 보니 성수기에 상품을 사는 사람들은 두 분류로 나눌 수 있는데, 한 부류는 성수기에만 그 상품을 사는 계절성 소비자들이고, 나머지는 성수기 및 비수기에도 상품을 소비하는 부류다. 예를 들면 여름 아이스크림 시장에는 여름에만 아이스크림을 먹는 계절성 소비자와 여름은 물론 겨울에도 아이스크림을 먹는 소비자들이 있다. 그런데 연구 결과 계절성 소비자들은 대체로 가격에 민감한 반면, 여름 겨울 할 것 없이 아이스크림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은 상대적으로 가격에 덜 민감한 것으로 밝혀졌다. 추운 겨울 얼어 죽어도 아이스크림(일종의 얼죽아)을 먹으려고 하는 소비자들은 아이스크림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가격 지불 용의가 높고 가격 변동에 크게 반응하지 않을 수 있다.
이 결과에 따르면 비수기에는 가격에 덜 민감한 소위 얼죽아들만 있지만, 성수기에는 가격에 민감한 계절성 소비자들이 시장에 몰려오게 되기에, 기업 입장에서는 오히려 성수기에 가격을 인하하는 것이 이득이다. 따라서 성수기에 가격이 내려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기업의 이윤 극대화에 부합하는 현상이라는 것이 연구 결과로 밝혀진 셈이다. 만약 이 결과가 맞다면, 애초에 반경기변동적 가격 현상은 미스터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서보영 美 인디애나주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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