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 주장한 김정은…한발 물러난 푸틴
'유엔 헌장·러 국내법' 전제 달린 게 차이
러 외무장관 "북·러 조약은 방어적 차원"
북한과 러시아가 새로 체결한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 내용이 공개됐다. 소련 시절 '자동 군사개입 조항으로 여겨지던 내용이 다시 담겼지만 유엔(UN) 헌장과 러시아 국내법이라는 단서 조항이 달렸다. 러시아 측은 이것이 '방어적 차원'이라는 입장을 낸 반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홀로 '동맹'을 주장하고 나섰다는 점에서 양측의 온도차가 분명하다는 평가다.
20일 북한이 공개한 새로운 북·러 조약 전문에서 제4조는 '쌍방 중 어느 일방이 개별적인 국가 또는 여러 국가로부터 무력 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유엔 헌장 제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로씨야련방의 법에 준하여 지체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라고 규정한다. 군사 원조를 명시한 조항 후반부 내용은 1961년 소련 시절 체결된 조·소 우호조약의 '자동 군사개입' 조항과 일치한다.
차이는 유엔 헌장과 러시아 국내법을 전제 조건으로 달았다는 점이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부 장관은 이날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새로운 북·러 조약에 대해 유엔 헌장 51조를 언급하며 "방어적 입장일 뿐"이라고 밝혔다. 51조는 회원국에 무력 공격이 있을 경우 개별적·집단적 자위권을 가질 수 있다고 규정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전날 평양에서 새로운 협정에 서명한 뒤 "당사자 중 한 쪽이 침략당할 경우 상호 지원한다"고 밝혔다. 이것이 '자동 군사개입' 조항을 되살린 것인지를 두고서는 해석이 엇갈렸다. 이후 라브로프 장관이 추가로 낸 러시아 정부의 입장은 이런 방침이 '방어적 차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서방과의 대립으로 부담이 큰 러시아가 일종의 '브레이크'를 걸어둔 셈이다.
양측의 온도차를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오자 북한은 이날 조약 전문을 공개하고 나섰다. 김 위원장은 회담 직후 "두 나라는 동맹 관계라는 새로운 높은 수준에 올라섰다"고 주장했다. 양측의 밀착 수위가 높아지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는 동맹보다 낮은 수준이다. 푸틴 대통령의 입에서는 '동맹'이라는 언급이 일절 나오지 않았다.
정부 관계자는 "과거와의 차이를 보자면 러시아와 북한의 국내법이 조건으로 명시된 점"이라며 "러시아가 왜 이런 조항을 담았는지에 대해서는 분석이 더 필요하겠지만, 당장 러시아와 북한이 내는 입장만 비교해도 톤 차이가 극명하다"고 지적했다.
러시아로선 한반도에 대한 군사개입을 쉽게 결정하기 어렵다. 북한은 올해 들어 남측을 '교전국'으로 규정했다. 러시아가 군사개입을 약속하면 한국을 적대국으로 마주하는 구도가 연출된다. 우리와 동맹인 미국이 남측을 겨냥한 북한의 도발이나 핵 사용 우려에 대해 '김정은 정권의 종말'을 경고하는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수준 차이를 읽을 수 있다.
정부는 이번 북·러 정상회담에 대해 '반서방 연대 과시'라는 평가를 내놨다. 통일부 당국자는 "총평을 해보자면 군사 협력 중심의 양자관계 격상과 반미·반서방 연대를 대내외에 과시한 차원으로 본다"며 "북한 입장에선 한·미·일 협력에 맞서 러시아의 지지를 확보하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북한의) 지원 독려를 유지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