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학생도, 아저씨도, 노인도 같이 사는 ‘칸칸모리’
갓난아기부터 81세 할머니까지 함께 살며 공동육아
진짜 가족 아니지만 서로 돌보며 주말 식사
중산층 입주 가능, 도쿄 중심으로 7군데
지난달 20일, 도쿄 다이산닛포리 초등학교 건너편에 있는 하얀색 건물의 2층 식당에는 20명이 넘는 대가족이 모였다. 머리가 하얗게 센 70대 노부부와 턱받이를 한 아기, 곁에서 먹는 걸 도와주는 젊은 엄마와 아빠, 갓 취직해 사회 생활을 시작한 20대 청년까지 한 식탁에 둘러앉았다. 시끌벅적한 가운데 어린아이들에게 젓가락질을 가르쳐주는 할아버지와 "생선과 야채를 많이 먹어야 키가 쑥쑥 큰다"고 일러주는 할머니의 표정이 정겨웠다. "저녁 먹고 보드게임을 하자"라는 한 아이의 제안에 모두 "좋은 생각"이라고 답하며 즐거워했다.
언뜻 보면 대가족의 저녁 식사가 떠오른다. 그런데 이들은 피가 섞인 가족이 아니다. 여러 형태의 가구가 한 지붕 밑에 모여 사는 집합주택(collective house)인 ‘칸칸모리’의 거주민들이다. 이들은 한 건물에서 살면서 개인적인 주거 공간은 독립적으로 사용하지만, 부엌·세탁실·정원 등은 다른 거주민들과 공유하고 있다.
노인주택에서 젊은이들과 공동육아
칸칸모리가 위치한 12층짜리 건물은 원래 노인주택이다. 이 중 2층과 3층 입주자들이 자체 협동조합을 만들어 살고 있다. 모두 28가구, 총 40명이 사는데 그중 32명이 성인이고, 8명이 어린아이다. 65세 이상 고령자는 총 6명이다. 가장 나이가 많은 81세 어르신은 20년 전부터 이곳에 살던 터줏대감이다. 그를 비롯해 서로 속사정을 훤히 알기에 이곳에서는 ‘공동육아’가 가능하다.
여기에 사는 70대 할아버지는 "옆집에 사는 맞벌이 부부가 퇴근이 늦어질 때는 초등학생 아이들이 학교 마치고 우리 집으로 와서 간식도 먹고 숙제도 하면서 엄마, 아빠를 기다린다"며 "우리 부부뿐 아니라 80세가 넘는 어르신도 아이들을 함께 돌봐 주고, 젊은 사람들이랑 어울려 사니까 훨씬 젊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2년 전 친구의 추천으로 이곳을 알게 돼 이사 온 30대 부부는 "아파트에서는 늘 우리끼리만 덩그러니 사는 것 같았는데, 이곳에 오니 어르신들이 격려도 많이 해주시고 아이들까지 봐주셔서 훨씬 여유 있는 삶을 살게 됐다"며 "어머니날에 옆집 어르신들과 온천 여행도 계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로 11살이 된 어린이는 "여기서 살다가 엄마가 병에 걸려서 할머니랑 병원으로 간 이후부터 아빠랑 둘이서 지냈는데, 엄마의 빈자리를 옆집 할머니와 아줌마들이 보살펴줬다"며 "칸칸모리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라고 했다.
칸칸모리도 중산층 사는 곳
월 생활비로 보면 칸칸모리는 중산층의 거주지라고 할 수 있다. 각 가구는 방 크기에 따라 한 달에 7만3000~15만3000엔(한화 약 64만~134만원)을 내고 있다. 관리비까지 모두 포함한 금액이다. 노인들은 가장 큰 방을 선택해도 매달 받는 연금 수준이라 월세를 내는 데 무리가 없다.
도쿄에 칸칸모리가 생긴 것은 2003년이었다. 한 비영리법인이 이런 형태의 노인주택을 기획하고 살 사람들을 미리 모아 공간 설계부터 같이했다. 또래끼리만 사는 것보다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즐거움을 찾으려는 노인들,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곳을 찾는 맞벌이 부부들, 공동생활로 생활비를 아끼고 싶은 청년들에게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칸칸모리 같은 집합주택은 현재 도쿄에만 네 군데가 더 있고, 도쿄 근교에도 두 군데가 있다.
입주자인 에미코 우라씨(71·가명)는 "코로나19 때 전부 방에 격리돼 있었는데 그땐 공동생활을 못 하니까 서로 다른 방에서 안부 전화를 하며 우울증도 달래고 건강도 살펴줄 만큼 공동체 의식이 자리 잡은 곳"이라며 "여기는 노후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젊은이들과 상생할 수 있는 거주형태"라고 말했다.
<도쿄(일본)=특별취재팀>
[16]학생도, 아저씨도, 노인도 같이 사는 ‘칸칸모리’
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
심나영 기자 sny@asiae.co.kr
강진형 기자 aymsdre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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