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지능화된 불법 다단계
스마트폰 앱에 찍히는 수익
피해자 현혹…투기 심리 자극도
불법 다단계 범죄 수법은 최근 한단계 더 지능화됐다. 투자자들이 다른 판매원을 데려오면 수당을 지급하고, 사업설명회로 수익구조를 홍보하던 기존 수법에 IT기술이 접목됐다. 복잡한 수익구조를 설명하지 않아도 수익금이 표시된 스마트폰 하나에 투자자들이 현혹됐다.
사기를 의심하던 중·장년층은 블록체인과 모바일 페이 등 신기술에 의심을 누그러뜨렸다. 모집책들이 최신 IT기술을 사기에 적극적으로 접목하면서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하는 실정이다.
눈앞에서 늘어나는 수익률…신종페이 결합 현혹
모바일 페이 애플리케이션(앱)은 모집책들이 중·장년층 피해자들을 현혹하기 위해 활용한 대표적인 수법이다. 여러 유사수신 업체들은 2010년대 중반부터 자체 모바일 결제 시스템을 도입해 기존의 다단계 사업 모델과 차이점을 두려 했다.
모집책들은 수익금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피해자들이 페이 앱에 돈을 충전하도록 유도했다. 모바일상에 숫자로 표시된 투자금은 매일 업체가 지급한 이자가 더해지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앱을 통해 비현실적인 수익률을 목도한 투자자들은 더 많은 투자금을 입금하기 시작했다. 페이 앱이 피해자들의 투기 심리를 자극하는 일종의 미끼가 된 셈이다.
이후 업체는 피해자들이 투자금을 한 번에 빼내지 못하도록 제약을 건다. 4000억원대 피해를 양산한 유사수신 업체 아도인터내셔널의 경우 투자자들은 40일을 기다려야 매일 2.5%씩 이자가 붙은 투자금을 출금할 수 있었다.
최근 피해자들이 사기 혐의로 경찰에 고소한 영농조합법인 H사 역시 비슷한 수법을 활용했다. H사들은 투자자에게 이른바 '데이터값'을 지불하겠다며 투자금의 2.6배를 가상 자산으로 돌려줬다. 1억원을 투자할 경우 2.6억원을 돌려주는 방식이다. 2.6배 불어난 이들의 투자금은 H사가 자체 개발한 페이 앱에 '디지털 자산'이라는 형태로 입금됐다. 디지털 자산은 다시 8대2 비율로 자체 가맹점에서 사용할 수 있는 '쇼핑캐시'와 현금으로 출금 가능한 '해피캐시' 형태로 전환됐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이 해피캐시를 한 번에 빼낼 수 없었다. 한 달에 출금 가능 횟수에 제한이 있는 데다 업체 측이 투자금 액수가 많을수록 출금 가능 액수를 적게 설정해뒀기 때문이다. 이러한 페이 앱은 대표가 구속되거나 사기 의혹이 불거지기 시작한 시점부터 먹통이 됐다. 투자자들이 여러 번 출금 버튼을 눌러도 현금이 입금되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아직도 껍데기로 전락한 앱을 지우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고 있다.
투자자 모이면…가상화폐로 투기 심리 자극
투자자들이 일정 부분 모인 시점부터는 가상화폐를 새로운 사업 모델로 제시한다는 특징도 갖고 있다. 가상화폐가 거래소에 상장될 경우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며 이른바 '상장 대박'을 약속하며 투기 욕구를 자극한 것이다.
실제로 일부 업체들은 가상화폐를 발행하기도 했다. H사는 3곳의 거래소에 가상화폐를 상장했다. 이중 거래소 한 곳은 문을 닫았다. 아도인터내셔널도 3곳의 거래소에 EML코인을 상장한 뒤 대형 거래소에도 추가 상장이 예정돼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이후 아도인터내셔널의 이모 대표가 기소되고 H사는 사기 의혹에 휘말렸다. 현재 피해자들은 해당 업체가 발행한 가상화폐들이 사실상 투자 가치를 잃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전문가는 해당 업체들이 수익의 실현 가능성을 입증하기 위해 가상화폐를 악용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기동 한국금융범죄예방연구센터 소장은 "모집책들이 가상화폐 거래소와 페이 앱을 통해 수익금이 불어났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려 한 것으로 보인다"며 "스마트폰 상에 기재된 숫자를 보면 실제 현물이 보이는 것처럼 느껴지기에 투자자들이 현혹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소율 11% 남짓…피해액 커도 입증 쉽지 않아
이처럼 불법 다단계 업체가 비슷한 수법을 통해 투자자들을 현혹하고 있지만, 실제 수사와 처벌로 이어지기까지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유사수신행위법 위반 혐의로 검거된 건수는 총 2518건이다. 이 가운데 구속된 인원은 201명(7.98%)에 불과하다. 기소율도 10% 남짓에 그쳤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수사기관에 접수된 유사수신 범죄는 총 1만2652건인데, 기소된 사건은 전체의 10.8%(1368건)뿐이다.
유사수신 범죄가 실제 기소까지 이어지기 어려운 이유는 기망 행위가 있었다는 정황을 입증하기 쉽지 않아서다. 불법 다단계 특성상 먼저 유입된 투자가가 다른 투자자를 끌어오는 구조다 보니 상위 모집책을 제외하고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경우도 많다.
이 소장은 "중간단계의 모집책들은 업체가 투자자들을 속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다른 투자자들을 끌어들였을 확률도 있다"며 "중간 모집책들의 경우 기소되는 경우가 적다 보니 처음엔 피해자였던 이들이 추후 비슷한 수법으로 다른 범죄를 저지르는 사례도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이지은 기자 jelee04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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