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에서 ‘삼삼(三三)’은 계륵과 다름없었다. 맛이 없지는 않으나 선뜻 손은 안 가는 존재. 삼삼은 바둑판 가로와 세로의 제3선이 교차하는 점이다. 가장 중요한 착점 지점인 네 귀퉁이 화점(花點)보다 한 칸 낮은 자리다. 흑돌과 백돌을 차례로 놓는 바둑은 바로 그 화점을 중심으로 초반 1~4수를 전개하는 게 일반적이다.
정석에서 약간의 변형은 가능하지만 대부분 화점을 차지하는 것으로 대국을 시작한다. 화점은 실리선이자 세력선이다. 귀퉁이 화점에 교두보를 마련하면 비교적 안정적인 상태에서 자기 바둑을 둘 수 있다. 실리를 차지하면서 세력에 관한 기대도 품을 수 있다.
그런데 화점의 대각선 아래 지점인 삼삼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프로 바둑과 동네 바둑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게 삼삼 공략이다. 바둑 초보들은 스스럼없이 초반에 삼삼에 뛰어든다. 기력이 어느 정도 쌓인 상태라면 금기시하는 선택이다.
하물며 프로 바둑의 세계에서 초반 삼삼 공략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이는 소인배(小人輩)의 바둑으로 인식됐다. 광야를 향해 원대한 꿈을 키우는 호방한 바둑이 아니라 자기 텃밭에만 안주하는 협량(狹量) 취급을 받았다.
바둑 역사에서 삼삼이 금기 대상이 된 것은 전략상 좋은 수가 아니라 여겼기 때문이다. 더욱더 중요하고 좋은 수가 있는데 왜 삼삼에 두느냐는 지적을 받아도 할 말이 없었다.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받았던 삼삼은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이해서 백조로 변신했다. 어떤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반전이자 신분 변화다. 바둑 AI 프로그램인 알파고는 초반 삼삼 침입으로 상대인 프로기사를 당황하게 했다.
익숙하지 않은 바둑의 패턴. 인간의 약점인 심리를 흔들기 위한 AI 전략이었을까. 그게 아니었다. 충분히 둘 수 있는 바둑이고, 나름의 장점도 있기에 삼삼 침입이라는 수를 선택한 것이다. 수백 년 이어졌던 바둑의 정석은 AI 시대에 새롭게 쓰이고 있다.
제자를 가르칠 때 초반 삼삼 침입을 금기시했던 수많은 바둑 스승들을 곤혹스럽게 한 장면이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속도는 서로 다르다. 연륜이 깊은 기사들은 여전히 삼삼 공략을 낯설어한다. 반면 AI 시대에 적응도가 높은 젊은 기사들은 삼삼에 관한 ‘터부’를 역이용해 강점으로 활용한다. 이처럼 삼삼에 관한 관점의 차이는 바둑의 승부에 영향을 주고 있다.
바둑 삼삼의 극적인 신분 변화는 우리 삶에 교훈으로 활용할 수 있다. 옳음이 그름으로, 그름이 옳음으로 변모하는 혼돈의 시대. 오랜 세월 굳게 믿었던 ‘인식의 틀’을 다시 점검해야 할 시기다.
고정 관념의 변주(變奏) 없이 혁신의 불씨가 살아나겠는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현실 안주다. 인간은 누구나 익숙함을 추구한다. 편안한 상태로 현재의 부와 명예, 지위가 유지되기를 희망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게 가능하면 좋으련만 세상은 자기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지금껏 쌓아 올린 삶의 성과가 한순간 물거품이 되기도 한다. 단지 변화에 소극적이었다는 이유로 그런 상황을 맞이할 수 있는 게 세상 이치다.
자기가 옳다고 믿었던 것에 관한 확신도 좋지만 때로는 터부라 여겼던 것에서 그토록 염원했던 묘수를 발견할 수도 있다. 어디 바둑의 세계만 그러할까.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해당하는 삶의 교훈이다.
류정민 사회부장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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